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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베푼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다 

디스토피아 작품들을 통해 본 인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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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현실에서 겪는 공포와 불안을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표출하고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디스토피아 작품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불안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미래사회를 그려내며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디스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유토피아의 반대말이기 때문에, 디스토피아 작품 속 세계를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를 것이다. 디스토피아 역시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디스토피아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년~ 1950년)의 소설 『1984』(1949)는 작가가 집필했던 1948년 당시, 1984년의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핵전쟁 이후 세계는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동아시아, 3개의 국가로 분할됐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는 독재자 ‘빅 브라더’가 지배하고 있는 일당 독재의 전체주의 사회이다.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의 거주지에 텔레스크린을 설치하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신어(新語) 작업을 통해 “자유”나 “평등”과 같은 전체주의 사상에 반하는 단어를 말소하여 반국가적 사상의 싹을 잘라 버린다. 오세아니아 정부의 공무원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 진리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각종 기록물을 당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는 업무를 한다. 윈스턴은 현 체제에 의문을 품으며 당에 대한 불만을 갖는다. 윈스턴은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에게 알 수 없는 호감과 신뢰감을 느끼고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체제 비판 사상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윈스턴은 진리부에서 일하고 있는 ‘줄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당의 감시를 피해 밀회를 즐긴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과 줄리아에게 당에 저항하는 비밀조직인 ‘형제단’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당의 본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금서를 건넨다. 사실 오브라이언은 당의 스파이로, 당 내부의 반역자를 색출하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오브라이언에게서 받은 금서를 읽다가 체포되고 당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다. 고문과 사상 교육 끝에 윈스턴은 당에게 세뇌당한 채 자신이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고 말하며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소설에서 진보된 과학 기술은 사람들의 행동과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체제 아래서 인간성은 말살된다. 또 ‘인쇄술의 발명으로 여론조작이 보다 용이해졌고 영화와 라디오는 이것을 더욱 발전시켰고 텔레비전이 발전하고 같은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가능케 해줌에 따라 사생활은 끝났다’라는 문장은 미래를 내다본 조지 오웰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등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여 개개인의 사생활과 사상을 통제하는 소설 속 유라시아는 cctv, 위치 추적, 구매 내역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신상 정보가 쉽게 노출되는 정보화 시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984』에서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하는 모습을 그려냈다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소설『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는 우리의 즐길 거리들이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멋진 신세계』속 사회는 대전쟁 이후 ‘세계국’이라는 하나의 정부로 통합됐고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을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지능과 직업이 결정된다. 또 '소마'라는 마약이 배급돼 사람들은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버나드’는 상류층에 해당하는 알파 계급이지만 계급에 맞지 않는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열등감을 가진 인물이다. 버나드는 직장 동료 ‘레니나’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야만인들이 모인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간다. 야만인들은 문명인과 다르게 결혼과 출산을 하고 가족을 이루면서 산다. 둘은 그곳에서 ‘린다’와 그의 아들 ‘존’을 만나고 린다는 사실 신세계 출신 사람이며 존과 함께 야만인 보호구역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린다와 존을 신세계로 데리고 온다. 과학적으로 분석된 최적의 노동시간 동안 일을 하고 모든 불쾌하고 불행한 감정은 소마를 이용해 제어하는 신세계 사람들을 보며 존은 처음에는 ‘멋진 신세계’라 부르며 감탄하지만, 이후 인간성이 결여된 사회의 단면을 보며 자신이 살던 세계를 그리워한다. 존은 신세계 문명을 거부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지만, 신세계 사람들의 괴롭힘과 조롱 끝에 등대 꼭대기에서 자살한다.『멋진 신세계』는 과도한 과학의 발달이 가져오게 될 부작용을 예언한 작품이다. 소설 속 사회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과 직업이 정해지고, 행복과 같은 개인의 감정마저 사회가 통제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해 있음에도 오히려 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인해 진정한 자유를 제한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다룬 두 작품이 모두 주인공이 죽음이나 패배를 맞이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데 비해, 영화 <가타카(gattaca)>(1998)의 메시지는 희망적이고 명확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 배양을 통해 부모로부터 우성 유전자를 받은 우수한 아이들만 탄생한다. 하지만 ‘빈센트 프리만’은 인공 배양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아닌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부적격자’이다. 빈센트의 꿈은 우주 비행사이지만 이는 인공 배양을 통해 태어난 ‘적격자’인 사람들도 이루기 힘든 꿈이었다. ‘가타카’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엘리트만이 들어갈 수 있는 우주 비행 전문 회사로, 오로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인재를 색출한다. 빈센트는 가타카에 입사하기 위해 신체장애인이 된 적격자 ‘제롬’의 신분을 산다. 빈센트는 제롬의 머리카락과 신체조직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키 크는 수술까지 감행하며 가타카에 입사한다. 빈센트는 가타카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고 우주비행을 가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빈센트가 우주비행을 가기 일주일 전, 가타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신분이 발각될 위기가 찾아온다. 빈센트는 몇 번의 고비를 이겨내고 노력 끝에 우주선에 오르게 된다. <가타카>는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고 유전자에 의한 계급이 형성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점에서『멋진 신세계』와 비슷하다. 유전학적인 측면에서 영화 속 기술이 어느 정도 현실화됐음을 생각하면, 영화는 관객에게 머지않아 유전자에 의한 또 다른 계급 사회가 생성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또 유전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상황 속에서도 우주비행의 꿈을 이루는 빈센트의 모습은 유전자에 의해 물리적으로 결정된 운명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디스토피아 작품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함으로써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는 위험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세 작품 속 미래 사회는 공통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이루고 있지만, 주인공들은 결정된 것에 저항하며 진정한 자유를 외친다.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가 ‘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베푼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이러한 디스토피아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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