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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 채스트. 김민수 옮김, 클, 2015

<드로잉2> 노정연 교수가 추천하는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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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며 아마 가장 이상적인 삶은 ‘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그림을 그리는 것’일 것이다. 작가의 삶과 함께 그림도 무르익는 것을 볼 수 있기에 그것이 그만큼 가치 있게 여겨진다. 이런 삶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뉴욕의 여성 카투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라즈 채스트(Roz Chast, 1954~)이다. 

라즈 채스트는 1978년부터 뉴욕커(The New Yorker) 카툰(Cartoon)을 통해 그녀의 풍자가 담긴 탁월한 유머감각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재치가 담긴 인물 묘사와 자유로운 펜화 드로잉 위 밝은 수채화 색감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모두가 사랑하는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우연한 기회에 반갑게도 한국에서 책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며 긴긴 세월 입증된 그녀의 가볍지만은 않은 위트가 어디서부터 파생된 것일까 궁금해지던 찰나, 이 책,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2015)에서 그녀의 유머감각의 원천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브루클린의 ‘너무너무 싫은’ 음울한 분위기의 동네에서 40대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난 라즈는 결혼하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뉴욕에서 가까운 교외 코네티컷에서 살고 있다. 라즈가 혐오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세대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차이가 나는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는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결국 그녀는 열여섯에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독립’과 ‘해방’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시간과 비용, 정신적 피로 때문에 3주에 한 번씩 들르던 부모님 집 가구들에 쌓인 먼지 ‘더께’가 점점 두꺼워짐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과 ‘돈’에 대한 즐겁지 않은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최고로 강하다고 믿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 출신 흑백논리의 완벽주의자 어머니와,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연약하지만 상냥한, 노인성 치매에 걸린 아버지다. 라즈는 이 하기 싫은 이야기들을 위해 부모님의 반감을 무릅쓰고 노인 전문 변호사를 고용한다. 

얼마 후, 계속해서 병치레를 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던 부모님이 결국 정든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가게 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남은 짐 정리는 모두 라즈의 몫이 된다. 요양원에 부모님을 맡기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였지만, 감사하게도 그녀의 부모님은 그 비용을 자신들의 통장에 모두 모아두셨다.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신지 8개월 후, 결국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이년 후 재정이 거의 바닥날 때쯤, 어머니도 떠나보낸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모습을 마지막에 몇 장의 드로잉으로 남겨놓았는데 담담한 그녀의 느낌이 전해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그림들로 보였다. 라즈는 초고령인 아흔을 넘긴 부모님과의 여러 가지 추억과 불만, 좋고 나쁜 느낌 모두를 솔직하게 묘사했고, 외동딸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하기 싫은’ 일을 차근차근 해내는 일화를 보여준다.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픽픽 웃음을 자아내었다. 

부모님은 ‘내 곁의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다 어느 날 갑자기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을 볼 때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이 책은 아직 생각지도 못한, 그러나 언젠가는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을 지구 반대편의 인생 선배가 미리 알려주는 어떻게 보면 매우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만 하는 지겨운 시간’들이 우리가 느끼지 못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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