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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있는 생각으로 민화를 재창조하다 

민화 작가 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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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떠올려보면, 제일 먼저 전통적인 풍속을 가진 조선시대의 풍경이 생각날 것이다. 자유분방한 특성을 지닌 민화는 우리에게 그 당시 민중들의 생활 방식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준다. 또한 한국적인 요소를 잘 비춰주는 가장 친근하고도 소박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민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그림이라는 생각이 강해, 현대 민화의 모습은 다소 떠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현대 민화는 요즘 시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여전히 우리 삶 속에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본지는 우리만의 색깔로 현대를 보여주는 지민선 민화 작가를 만나보았다.

 

▲ 지민선_꽃가마1(106x83)
▲ 지민선_꽃가마1(106x83)

Q. 민화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우연한 기회에 ‘자비화’라는 곳을 통해 민화를 채색하는 알바를 시작한 게 시발점이었다. 그때는 민화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단지 예쁜 그림이라는 생각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스승님으로 계신 지산 김상철 선생님을 만나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모사하고 옛것을 그대로 그리는 게 민화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지금 그리는 민화 작가는 요즘의 것을 그리는 지금의 이야기를 하는 창작을 해야지, 예전 것을 답습만 해서는 공부만 하는 격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이 기억에 남아 현대의 민화를 창조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민화를 그리게 됐다. 전통 민화와 다른 새로운 작업도 하고, 민화에 대해 더 깊게 배우게 됐다.

 

Q. 지금껏 해온 작품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고, 작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A. <어변성룡도>(2012)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호랑이 눈동자에 등용문 그림을 표현한 것인데, 처음 창작을 시도했던 작업물이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작업이다 보니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 이 작품은 작품을 그려낸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목을 받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나에게 이런 기쁨을 주는 작업물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편 작가 생활을 하며 보람찼던 순간은 2018년도 헝가리 문화원에서 초대 2인전을 개최했을 때다. 전시 기간에 헝가리인을 대상으로 민화체험수업을 했다. 그때 반응이 너무 좋았고, 외국인들이 우리 민화를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기쁘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 작가로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Q. 창작 민화로 작품 활동을 하며 전통과 현대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현대와 전통의 연결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하다.

A. 사람들은 전통과 현대의 민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전통과 현대는 크게 다르지 않고, 맥이 같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기반으로 해야 현대도 있기 때문이다. 민화의 창작성은 바로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지 않고 동시에 표현하며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뉴욕, 부다페스트 그리고 서울>이라는 전시회에서 슈퍼히어로를 접목시켰을 때도 그러했다. 이미 많은 작가님들께서 민화를 알려왔지만, 민화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민화를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에서 이 전시가 시작되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이 통하는 민화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슈퍼맨, 원더우먼 같은 히어로들을 보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이렇듯 앞으로도 도상의 의미를 알지 못해도 작품만으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민화를 직관적으로 표현해내고 싶다.

 

Q. 그동안 해온 작업들을 보니 유독 호랑이가 많이 보인다. 작품에서 호랑이를 많이 활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호랑이는 내가 민화를 그릴 때 가장 애착을 느끼는 동물이다. 민화는 선을 그려서 도상을 그리고, 도상 안에 채색을 채워 그리는 ‘구륵법’이라는 기법을 주로 쓴다. 하지만 호랑이의 표현방식은 다른 사물과 다르다. 물론 구륵법으로 호랑이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나는 호랑이를 그릴 때 선을 위주로 사용해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이 기법은 거의 선에 의존해 대상을 표현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을 그릴 때보다 털의 모양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가령 그리다 좀 더 통통한 호랑이를 표현하고 싶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습에서 선을 더 그려 통통한 호랑이를 표현할 수 있다. 호랑이를 그릴 때는 모양이 조금 어긋나도 상관없고 내가 고쳐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아 작업하며 자주 호랑이를 그리는 것 같다. 

 

▲ 유디 갤러리에서 열린 <옛날 옛적에> 개인전
▲ 유디 갤러리에서 열린 <옛날 옛적에> 개인전

Q. 3월에 개최된 〈옛날 옛적에〉개인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늘 호랑이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등장하는 호랑이는 산신의 말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귀신을 물리치고, 삿된 것을 해치우고 복을 불러들이는 것으로만 여겨진다. 호랑이 그림을 그리면서 “호랑이는 무서운데 왜 이런 그림을 그리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을 정도로 아직 우리에겐 호랑이가 두려운 존재로 남아있다. 하지만 민화에서 호랑이는 나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이번 개인전에서 복을 부르는 호랑이를 주제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삶은 호랑이를 마주치는 순간처럼 두려움과 공포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넘어서면 그 뒤엔 반드시 복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느낀 그러한 희망을 이번 전시회에 담아보았다.

Q. 이번 전시회에서 작업한 작품들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A. 이번 전시회는 전체적으로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를 바탕으로 작업을 했다. 그중 나는 ‘호랑이의 눈’을 그린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이전 작품에서도 같은 주제로 눈을 강조해 작업을 했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눈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 눈’ 자체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이 ‘눈’에 느끼는 의미가 각별해서 그렇다. 호랑이는 백호, 황호, 흑호 상관없이 귀 뒤에 흰 점이 있다. 그 흰 점을 호랑이 눈으로도 부른다는 재밌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호랑이가 공격성을 띨 때는 어느 쪽에서든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귀 뒤에 흰 점이 눈 역할을 해 공격을 방지한다고들 말한다. 나에게 있어 그 흰 점은 호랑이의 위험한 공격성을 의미한다. 그 위험한 상태에서 ‘인생의 공포감을 느끼는 때가 지나가면 호랑이가 다시 나에게 복을 가져다줄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좋아 호랑이의 눈이라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호랑이 눈이라 하면 보통은 그 눈만 보지만, 사실은 그 귀 뒤에 있는 흰 점이 나는 더 좋다. 그래서 항상 눈을 그릴 때 귀 뒷부분에 있는 점이 보이게 신경 써서 그리고 있다.

 

Q. 전시회에 와서 그림을 보니 몇몇 작품의 종이가 반짝이며 일그러져 있는 것이 독특하다. 의도를 갖고 구김 작업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A. 모든 작품은 한지를 그대로 표현한 작업이다. 특히 호랑이 자체의 이미지를 살릴 때는 구김을 통해서 강렬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또 종이를 구기면서 한지가 얼마나 질긴지를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그 질긴 특성은 끈질기게 작업하는 나와 닮아 있다고도 생각하는 부분이다. 구김 작업을 할 때, 가끔씩 바닥에 굉장히 고귀하고 오랫동안 갖추어진 지혜를 의미하는 금분을 까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지혜를 받고 싶다는 의미로 금분을 깔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털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는 한지 본연의 느낌을 살려 구기지 않을 때도 있다. 이렇듯 몇몇 작품에서는 한지를 일부러 구겨 낡은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Q. 마지막으로 민화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본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처음부터 작가라는 꿈을 결심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꿈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꿈을 적으면 목표가 되고 그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다 보면 꿈이 이뤄진다”라는 말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이건 내가 전에 어떤 분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문구 중 하나이다. 물론 작가로서의 삶은 현실적으로 힘들고 고되다. 또 작업을 이어가면 도전이 계속되고 본인의 한계를 마주하다 보니 실패가 두려워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되는 길이 뭐지?’라고 고민만 하는 것은 막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작업, 혹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고민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일단 시작해보길 바란다. 더불어 꿈을 이루는 것과는 별개로 작가에게 건강은 필수이다. 매번 전시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껴 하고자 하는 표현이 끝까지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평소에 체력 관리를 제대로 못해 놓은 게 후회가 많이 되곤 한다. 그러니 부디 작가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건강 관리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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