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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 <작품 75>, 1975년, 목판화, 70X100cm, 소장번호: 1777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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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번수, <작품 75>, 1975년, 목판화, 70X100cm, 소장번호: 1777
송번수, <작품 75>, 1975년, 목판화, 70X100cm, 소장번호: 1777

작가 송번수는 1965년 홍익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하고 판화(版畵)와 태피스트리(tapestry) 제작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다. 홍익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 <작품 75>는 만개한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병에 꽂혀있는 장면을 목판화로 제작한 작품인데, 빨간 장미색과는 상대적으로 강렬한 검은 배경과 흰 배경의 조화는 명료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는 사실 목판화로 <장미> 시리즈를 여러 번 제작한 바 있다. 일련의 장미 작품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흑백의 배경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미의 모습은 제각각인데, 표현된 장미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 예를 들면 줄기나 꽃이 꺾여있는 것은 기본이고, 관이나 병 안에 꽃이 갇혀 있다던가, 혹은 줄기에 링거액을 맞고 있기도 하다. 또 어떤 작품은 날카로운 도구에 꽃들이 찍혀있기도 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즉, 이러한 표현방식을 보면 그의 장미들은 희생당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그에게 있어 ‘장미’는 과연 무엇일까.

도상학에서 ‘장미’가 상징하는 의미는 종교와 연관 지을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을 연구했던 연구자들은 그의 장미를 시대적 배경과 연관짓고 있다. 이 작품 시리즈가 완성되었던 1970년대 중반, 당시 한국의 사회적 배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몇 가지 단어로도 대변 가능할 것이다. 유신시대, 독재, 저항, 민주주의의 수난 등이 그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그의 장미가 한국 민주주의를 표상한다고 본다. 장미가 여러 상황과 배경 속에서 박해받는 설정을 시도하여 상처를 받으며 갇혀버린 당시 민주주의의 실태를 고발했던 것이다. 

<작품 75> 속에 표현된 장미는 꺾이거나 잘려있는 극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병 속에 외롭게 꽂혀있는 장미와 어두운 실내, 상대적으로 밝은 창은 왠지 모를 불안함과 불길함을 느끼게 한다. 이미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검은 먹구름의 희생양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곧 닥쳐올 수난 앞에 해맑게 피어 있는 한 송이의 꽃이 어떤 식으로든 짓밟히게 될지를 상상해본다면 이처럼 고요하게 공포스러운 그림 또한 없을 듯 하다. 

송번수 작가의 판화 작품들은 그 기법과 표현 방법이 너무나 다양하다. 그는 예술적 미감을 드러내는 작품 외에도 이렇게 시대적 정신을 담은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미술로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사회상을 기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만으로 송번수는 예술가의 정신을 드러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작품을 포함한 그의 <장미> 시리즈는 시대를 반영한 작품으로 눈여겨봐야 할 중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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