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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폴리비오스(Polybios)와 로마 공화정의 정치 구조

‘공화정(공화국)의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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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기 로마 제국의 영토, 출처 위키피디아>
<공화정기 로마 제국의 영토, 출처 위키피디아>

기원전 3세기 말엽 루비콘강 이남의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로마 공화국은 여세를 몰아 지중해 지역으로 진출하여 카르타고 및 헬레니즘 강국들을 차례로 굴복시키고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로마는 제3차 로마-마케도니아 전쟁 때 그리스의 아카이아 동맹이 보인 의심스러운 행보에 대한 보복으로 1,000명 정도의 유력인사를 인질로 삼았다. 로마로 압송된 볼모 중에 아카이아 동맹 회원국이었던 아르카디아(Arcadia) 지역의 도시국가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에서 태어난 역사가 폴리비오스(Polybios)가 있었다. 

<메갈로폴리스의 지도와 고대 유적지, 출처 위키피디아>
<메갈로폴리스의 지도와 고대 유적지, 출처 위키피디아>
<폴리비오스, 출처 브리타니카>
<폴리비오스, 출처 브리타니카>

하지만 그는 로마 최고 명문 가문인 스키피오 가문의 가정 교사로서 수도 로마에 머무는 행운을 누렸다. 게다가 당시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모임인 ‘스키피오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로마 정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직접 목격하였다. 폴리비오스가 던진 질문은 조그만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제국으로 발전했는가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답을 동료 그리스인과 공유하기 위해 『역사(Historiai)』를 기술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역사(historia)’라는 용어는 질문하고, 탐구하여 답을 구한 뒤, 기록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폴리비오스가 탐구하여 구한 답은 바로 로마의 독특한 공화정체였다. 그에 의하면, 공화정은 왕정적 요소와 귀족정적 요소 그리고 민주정적 요소가 결합한 혼합정체이기 때문에, 로마인도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공화정의 정치 기구인 콘술, 원로원, 민회가 각각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들을 대변한다고 보았다. 왕정이 폐지되고 선출된 두 명의 콘술(consul)은 로마 최고의 정무관이다. 먼저 그들은 전쟁 준비 및 군대 지휘와 관련하여 무소불위의 권한을 보유했다. 징집할 병사의 명부를 작성하고 군 복무에 적합한 자들을 선발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관련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동맹에게 요구할 수도 있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사를 처벌하고 전쟁 경비를 국고에서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콘술은 국정과 관련하여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외국에 파견할 사절을 포함한 중요 안건들을 원로원과 협의하고, 법령의 상세 조항들을 집행하였다. 또 그들은 민회를 소집하여,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된 법령의 집행을 주관하였다. 

원로원(senatus)은 보통 고위 정무관을 역임한 종신 원로원 의원들로 구성된 이론적으로는 로마 최고의 자문기구이다. 하지만 재정, 행정, 해외 문제 등과 관련해서 제시되는 원로원의 자문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다. 원로원은 국고를 관리하고, 모든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였다. 그 때문에 재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콰이스토르(quaestor)도 

(콘술이 허가한 지출만을 제외하고) 원로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항목에 대해서도 지출할 권한을 갖지 못했다. 또 원로원은 반역, 음모, 독살, 암살처럼 공적 조사가 필요한 사건들을 관장하였으며, 콘술과 프라이토르(praetor)에게 군사적 임무를 할당하였다. 심지어 일반 개인이나 이탈리아 동맹 도시의 문제에도 개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밖에 있는 국가들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사절을 파견할 책임도 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외국의 사절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영접하는 방법과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원로원이었다. 

로마의 성년 남자 시민만 참여할 수 있는 정치 협의체인 민회(comitia)는 재산에 따라 켄투리아회(comitia centuriata), 거주지에 따라 트리부스회(comitia tributa)로 구분된다. 민회는 국가와 사회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데 필요한 상벌을, 즉 명예를 부여하고 벌을 주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구이다. 민회는 자격을 갖춘 자를 정무관으로 선출함으로써, 일종의 정치적 보상을 하였다. (콘술, 프라이토르, 콰이스토르 등은 모두 민회에서 선출된다) 게다가 민회는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범죄뿐만 아니라 사형이 내려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범죄들도 심리하고 판결하는 법정의 역할을 하였다. (물론 폴리비오스 이후부터 로마에서는 주요 범죄들을 다루는 전문 법정들이 설치된다) 마지막으로 민회는 법들을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서, 전쟁과 평화, 동맹이나 조약의 체결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폴리비오스는 혼합정체가 단순 정체의 끊임없는 순환으로 야기되는 위험과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혼합정체가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이라는 주장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공화정이 왕정적 요소와 귀족정적 요소 그리고 민주정적 요소가 단순하게 결합한 혼합정체였음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상적인 것은 여러 정체가 하나의 정체로 통합되는 것보다 각각 철저하게 분리되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폴리비오스는 반드시 일치된 의견을 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라 보지 않았다. 안정을 통해 자유를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 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어느 한쪽의 요소가 강해져 균형이 깨지려면 다른 요소들이 견제하고 제약을 가하는 이상적인 ‘혼합정’이었다. 그 때문에 로마는 내적으로는 한 요소의 권력 독점으로 발생하는 분열과 부패를 사전에 방지하고, 외부의 위협에 봉착했을 때 공동체 구성원의 힘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폴리비오스가 ‘혼합정’으로서의 로마 공화정을 영원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체를 생물체의 출생, 성장, 노쇠, 죽음의 과정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여, 한 국가의 정체도 탄생, 성장, 번영 그리고 쇠퇴와 몰락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카르타고가 파괴되는 기원전 146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자신의 『역사』에서 폴리비오스는 제자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가 불타는 카르타고를 바라보면서 “언젠가 로마도 카르타고처럼 멸망할 것”을 예상했다는 일화를 소개하였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자마 전투에서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손자이다) 제국의 원동력이었던 로마 공화정의 이상적인 혼합정체도 영원할 수 없다는 그의 경고를 곰곰이 반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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