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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주관성에 관한 이야기 

당신이 믿고 있는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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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진실이라고 믿었던 진실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감각 데이터는 개인의 욕망과 믿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왜곡되어 전달되고, 그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 또한 왜곡된다. 아래 소개할 영화 세 편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어떠한 근거로 진실이라고 판단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에 따라 그 형태를 일부 수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부터 만날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진실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 <어톤먼트>(2007)에서는 왜곡된 진실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주인공의 일생을 보여준다. 열세 살의 소녀 ‘브라이오니’는 부잣집 딸이자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와  집사의 아들 ‘로비’는 어릴 때부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었지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을 몰래 지켜본 브라이오니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로비가 세실리아를 조종하고 있다고 오해한다. 그날 밤, 저택 정원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지고,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일과 자신의 상상력을 덧대어 로비를 피의자로 지목한다. 브라이오니의 오해로 인해 로비는 누명을 쓰게 되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된다. 이후 세실리아는 로비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간호사로 일한다. 이후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종군 간호사 직업을 선택한다.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를 찾아가 잘못을 빌고, 결국 세실리아와 로비는 재회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 사람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브라이오니가 그들의 사후 64년이 지난 1999년에 이르러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재회하는 이 소설의 결말은 완전히 허구이다. 로비는 전쟁에서 퇴각을 하루 앞두고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그가 죽고 난 3개월 뒤, 밸엄 역에 가해진 폭격으로 인해 세실리아도 죽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브라이오니가 자신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한계로 인해 진실을 왜곡하고, 위험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인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브라이오니의 ‘세상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욕망’이 사랑의 정점에 도달한 두 남녀를 갈라놓고 결국 둘은 재회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 결말을 통해, 왜곡된 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톤먼트>에서 세상을 자신의 틀에 맞춰 생각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바시르와 왈츠를>(2008)은 전쟁의 참혹함과 충격으로 인해 진실이 왜곡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 레바논의 팔랑헤 민병대가 샤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감독 ‘아리 폴만’은 20년 전 레바논 전쟁에 같이 참전했던 ‘보아즈’가 전쟁 때 사살했던 수십 마리의 개들이 쫓아오는 악몽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보아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리 폴만은 자신이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장면은 오렌지 빛깔로 뒤덮인 바다에서 나체인 자신과 남자들이 천천히 해변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같이 참전했던 동료들과 정신과 의사를 찾아 나서고,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 7명의 인터뷰이는 전쟁 중 있었던 실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전쟁 중 겪었던 환영을 말하기도 한다. 폴만은 전우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사라진 기억이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과 연관돼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학살을 직접 기록했던 종군기자 ‘론 벤 이샤이’를 인터뷰하며 학살이 자행되던 밤에 자신이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던 당시의 폴만은 다음 날 아침, 마을에서 일어났던 학살의 현장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행위가 학살을 도운 행위였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으로 기억을 지우고 진실을 왜곡한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폴만은 자신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전쟁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은 단 하나의 장면조차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변형한다. 

위의 두 영화가 한 사람이 가진 왜곡된 진실에 대해 보여주었다면 영화 <라쇼몽>(1950)에서는 한 사건에 여러 가지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헤이안쿄 지방에서 나무꾼이 나무를 베러 숲속에 가다가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사건의 목격자인 나무꾼과 사건의 당사자인 도적 ‘다조마루’와 죽은 사무라이의 아내 ‘마사’ 그리고 무사의 영혼이 빙의된 무녀가 법정에 서게 되고 네 명이 재판장에서 진실을 증언한다. 다조마로는 무사와 남자답게 싸운 끝에 사무라이를 쓰러뜨렸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마사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착란을 일으켜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녀의 몸에 빙의된 사무라이는 마사가 다조마로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고 그에 충격을 받아 아내의 단도로 자살했다고 말한다. 도적의 증언은 마사의 증언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나고 또 마사의 증언은 무사의 증언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난다. 시체를 목격한 나무꾼마저 사건 현장에서 단도를 훔쳤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진술을 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하나의 객관적 사건에서 네 가지의 주관적 진실이 나오면서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비를 피하기 위해 라쇼몽 밑으로 모인 세 남자의 대화 장면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재판에 대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은 청자는 “인간은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자기 죄는 잊고 거짓말을 하죠, 그편이 마음이 편하니까”라고 말하며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비판한다. 이에 옆에 있는 승려는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결말에서 도둑질을 하고 거짓 증언을 한 나무꾼이 버려진 아이를 기르려고 하는 인간적인 행동을 통해 그래도 인간을 신뢰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진실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며 객관적 진실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관적 진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모습과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기억을 하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기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속죄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지만,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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