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9.13 월 18:42
상단여백
HOME 사회 시사파수꾼
타인의 마음을 통제하다, ‘가스라이팅’당신은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안전합니까? 

 

▲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우리가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특히 그 말속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면 그것을 불신하기는 힘들다.” 

 

심리전문가 로빈 스턴(Robin Stern)이『그것은 사랑이 아니다』(2018)에서 ‘가스라이팅’을 간단히 설명한 한 구절이다. 가스라이팅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지난 4월 연예계에서 박수홍 씨의 횡령 피해 사건과 관련해 박수홍 씨의 성장 과정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속출했다. 또한 배우 서예지가 배우 김정현을 가스라이팅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추가로 유명 유튜버인 진용진과 이여름의 사생활 폭로전 등 가스라이팅 관련 사건들이 속출하면서, ‘가스라이팅’이 정확히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행해지는 것인가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가스라이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실제 사례와 창작물 속 사례들을 다루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심리학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며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지배력을 행사해 결국 상대방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미국의 심리전문가 로빈 스턴이 2000년대에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개념을 이론화했을 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1960년대부터 사용됐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어의 어원은 이보다 더 앞선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트릭 해밀턴이 1938년 연출한 <가스 라이트(Gas Light)>(1938)에는 한 남녀가 등장한다.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에 사는 ‘엘리스’를 살해한 ‘잭’과, 그의 부인 ‘벨라’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는 가스등을 사용한다. 이 불은 켤 때 다른 집의 불이 어두워진다는 특징이 있어 잭이 보석을 찾기 위해 등을 켜고 윗집을 뒤질 때마다 그들 부부의 집에 있는 가스등이 어두워진다. 벨라는 가스등이 어두워지고 위층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잭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잭이 엘리스의 살인 사건과 연관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나 잭은 오히려 벨라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몰아붙이고, 처음에는 믿지 않던 벨라도 결국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만 의지하게 된다. 바로 이 연극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자신을 의심하고 남편에게만 의지하게 되는 주인공 벨라의 모습에서, 흔히 알려진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스라이팅을 이론화한 로빈 스턴은 가스라이팅을 총 3개의 단계로 나눴다. 첫 번째 단계는 ‘불신’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강한 심리적 압박감을 줘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자기방어’를 시작한다.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피해자가 방어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로빈 스턴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과정 또한 상대방의 인정을 받기 위한 행위로 규정하였다. 또한 이때 가해자는 피해자를 인정할 리 없으므로, 대다수가 결국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세 번째 단계는 ‘억압’이다. 가스라이팅의 최종 단계로, 이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압도되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가해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정신적으로 지배된 상태가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스라이팅

조용하던 가스라이팅 이슈를 수면 위로 이끌었던 것은 지난 4월 12일(월) 인터넷 연예 전문 매체인 ‘디스패치’가 단독으로 개시한 한 기사였다. 배우 김정현은 앞서 2018년, 드라마 <시간>(2018)에서 배우 서현에 대한 무례한 태도와 갑작스러운 하차로 논란이 됐었는데, 기사에서 김씨와 당시 김씨와 연인 관계이던 배우 서예지의 메시지 내용을 공개하면서 김씨의 무례한 언동이 서씨가 사주한 것이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서씨는 김씨에게 여배우와의 애정씬과 스킨십을 빼고 대본을 수정하라고 반복해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서씨는 김씨에게 스태프들에게도 인사를 하지 말라거나 최대한 딱딱하게 대하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씨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헛구역질을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는 증언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서씨와 김씨의 대화 중 드라마 대본을 ‘로맨스 없게 수정하라’고 지시한 다음에 나온 ‘나로 인해 자긴 행복하지. 날 그러니 더 행복하게 만들어'라는 서씨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데이트 폭력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행동 통제 현상의 일종”이라며 “상대방의 사적인 관계까지 통제하면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야’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가스라이팅은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의 피해자들 또한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되곤 한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을 학급 내에서 철저하게 고립시키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주어 피해자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저하시킨다. 피해 학생이 자신 스스로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집단 따돌림 혹은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결국 부조리에 순응하게 되면서 신고를 포기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가스라이팅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과 같은 창작물에서 소재로 차용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상위 0.1%의 대학 입시를 그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 <SKY 캐슬>(2019)에서도 가스라이팅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속 냉혹한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은 명문가 집안 딸인 ‘강예서’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예서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하며, 자신에게만 의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가스라이팅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방송사에 의해 조작된 삶을 살아가는 ‘트루먼’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1998)에서도 가스라이팅이 등장한다. 트루먼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TV쇼를 진행하는 방송사에 의해 통제되고 조작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 트루먼이 도시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려 할 때마다, TV쇼는 집을 떠나 후회하는 내용의 고전을 소개한다. 또한 여행사는 여행을 경고하는 듯한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등 트루먼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가함과 동시에, 트루먼에게 도시를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게끔 만든다.

 

당신은 가스라이팅 피해자입니까?

피해자의 심리를 조작하는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의지를 뺏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신체적으로도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서 시작해 통상 2개월 전후에는 언어 폭력으로 발전하고, 심한 경우 신체 폭력까지 이어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2019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는 한국 국적의 여성 A씨가 남자친구 B씨에게 ‘그냥 죽어라’, ‘네가 사라지는 게 세상에 더 이롭다’ 등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두 달 동안 4만7000통을 보내며 가스라이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B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A씨는 매사추세츠주 검찰에게 B씨의 자살을 종용한 혐의를 받았다. 이는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사회관계가 파탄나는 위험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 누군가와의 관계가 가스라이팅인지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상대방에게 복종하게 되는 가스라이팅의 특성상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정작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해란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은 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 상사와 부하 등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라며, 우리 일상 속의 관계에서도 가스라이팅이 존재하고 있을 수 있음을 언급했다. 현재로서는 흔히 알려진 가스라이팅 자가 진단 질문을 해보거나, 심리 상담사와 상담해보는 것이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만약 자신이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로빈 스턴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의 서문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공동 책임을 진다. 이것이 가스라이팅의 본질이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정서 학대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관계다. 나는 이것은 가스등 탱고(gaslight tango)라 부르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가스라이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가스라이팅은 비단 가해자만의 잘못이 아닌 피해자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의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가스라이팅을 자신의 의지로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해자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그 상대방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의견이나 생각이 나올 수 있고, 그러한 의견이나 생각, 특히 자신의 것들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만약 현재 진행 중인 관계가 가스라이팅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위치에 놓여있다면, 과연 그 관계가 자신을 포기하고 망가뜨릴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잘 생각해보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고, 가스라이팅을 해결할 열쇠는 이미 스스로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취재부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