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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사실, 민음사, 2018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홍인숙 교수가 추천하는 『퇴근길엔 카프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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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찾아 읽을 때가 있다. 예로 앤 패디먼(Anne Fadiman, 1953~)의 『서재 결혼 시키기』(2001), 이토 우지다카(伊藤氏貴, 1968~)의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2012),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 1954~)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2008), 로버트 단턴(Robert Choate Darnton, 1939~)의 『책과 혁명』(2003), 천정환의 『근대의 책 읽기』(2003), 모티머 J. 애들러(Mortimer Jerome Adler, 1902~2001)의 『독서의 기술』(2011) 같은 책들을 들 수 있다. 이런 책들을 통해 남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독서 목록을 엿보기도 하고, 또 책을 ‘어떻게’ 읽는지 독서의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더 나은 방법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독서의 역사가 거대한 문화사가 되는 장면을 목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들의 책 읽기를 엿본다는 건 그 자체가 즐겁다. 이 리스트에 최근 더해진 한 권의 책이 바로 『퇴근길엔 카프카를』(2018)이다. 우선 ‘퇴근길’이라는 일상의 단어에 ‘카프카’라는 작가가 툭 얹힌 제목의 조합이 좋았다. 저녁 지하철 속에서 책을 편다는 단순한 동작 하나로, 과거 먼 나라의 작가들이 바로 내 옆에 서있는 것처럼 접속되는 독서의 내면적 장면을 시각화한 표지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소개되는 책들은 카프카를 비롯해 소포클레스, 체호프,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보르헤스 같은 대가들의 세계 명작이다. 이런 고전들을 무려 ‘만화’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라니!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들이지만 그림과 글씨의 간결함이 그런 무게를 깔끔하게 덜어 내준다. 

열세 권의 명작들을 소개하는 방식도 일관되게 정갈하다. 시작은 카페나 서점, 도서관, 또는 자기 방에서 책을 읽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무심히 보여주는 것이다. 중간 부분은 작품의 간추린 핵심 내용 소개이다. 여기서는 시대적인 배경이나 작품의 당대 분위기, 주인공 캐릭터들을 잘 살린 그림체가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뒷부분은 책에서 뽑은 한 장면을 제법 길게 인용하여 작가의 문체와 작품의 맛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보너스 트랙처럼 작가의 얼굴 일러스트와 그의 생애, 다른 연관 작품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덧붙여져 있다. 중간중간 백팩을 메고 책을 읽거나 작품 속 주인공을 지켜보거나 작가에게 말을 거는 저자의 모습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몇몇 장에서는 옛 독서의 기억을 곱씹게 하는 아련함을 느끼게 된다. 나에겐 『위대한 개츠비』(1925)에서 개츠비와 데이지의 대화 장면, 『오셀로』(1604)에서 오셀로가 이아고로 인해 촉발된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결국 그것에 집어삼켜지는 장면, 버지니아 울프가 죽기 전 남편 레너드에게 남긴 유서의 한 구절과 영화 <디 아워스>(2003)의 포스터 묘사 등이 특히 그러했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흥미로웠던 점은 아직 안 읽은 책들에 대해서도 선명한 인상을 갖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작품 속 주인공을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맛깔나게 보여주는 그림 솜씨 덕분이기도 하고, 그 작품의 눈대목을 정확하게 발췌하는 이해도 높은 인용 솜씨 덕분이기도 하다.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 1862~1937)의 『순수의 시대』(1920)에서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 불륜의 욕망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따끔하게 진실을 말하는 대목, 이탈로 칼비노(Itald Calvino, 1923~1985)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에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경이롭고 신비한 도시들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책을 덮고 나서도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에필로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저자는 ‘고요한 삶’을 꿈꾼다고 말하면서 ‘한 권, 혹은 아주 적은 수의 책을 반복해 읽는 독서를 꿈꾼다’라고 적었다. 그러고 보면 꽤 많은 책을 읽었어도 마음에 남는 책은 단 몇 권뿐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책들은 다시 읽을 때마다 뭔가 다른 느낌을 먹먹하게 전해주곤 했었다. 그런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의 책 소개는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서정적이면서 간결하고 지적인 그림, 그리고 정확한 텍스트 인용이 단단하면서도 정교한 합(合)으로 어우러진, 책에 대한 책. 『퇴근길에 카프카를』은 띄엄띄엄 비워놓은 일상의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사색하는 책 읽기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좋은 (만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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