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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그날의 이야기들 

끝나지 않은 아픔,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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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1,500회차를 맞았다. 수요집회가 계속 열리는 이유는 아직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눈길〉(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허스토리〉(2018)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눈길>(2017)은 위안부 피해자가 강제 징용됐을 당시를 보여준다. 어린 ‘종분’은 가난으로 인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엄마의 심부름과 집안일을 한다. 이와 달리 ‘영애’네 집은 유복한 집안이었다. 영애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지만 영애는 학교에 다니며 일본어를 배우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일본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애의 집에 일본군이 들이닥치고 영애의 오빠 ‘영주’를 끌고 간다. 영주가 끌려가고 며칠 뒤, 영애는 일본 근로단으로 지원해 일본에 유학을 가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위안소에 끌려가게 된다. 종분 또한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갑작스레 위안소로 끌려간다. 위안소 생활은 지옥과도 같았다. 구타는 일상이고 군인들의 성 착취로 인해 임신과 성병으로 몸이 곯았다. 임신을 하게 된 영애는 강제로 낙태를 하게 되자 한밤중에 도망쳐 나와 얼어붙은 강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종분이 그것을 막고 이들은 다시 위안소로 끌려간다. 그날 이후 종분과 영애는 서로 의지하며 꼭 함께 도망쳐 나가자는 포부를 다진다. 그러던 어느 날 군인들은 위안소 여성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며 잔치를 즐기게 한다. 잔치가 끝나고 일본군이 위안소 여성들을 어디론가 데려가자, 불길함을 느낀 영애는 종분에게 도망치자고 한다. 그때 일본군들은 위안소 여성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종분과 영애는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애는 출혈과 체력 고갈로 눈길 위에서 죽고 만다. 광복 이후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으면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 말에 종분은 일본 근로단에 지원한 기록이 있는 영애의 이름을 대고 돈을 받은 후 남은 인생을 ‘강영애’로 살아간다. 영화는 종분이 할머니가 되어 옆집 불량 청소년 ‘은수’에게 당시의 일을 말해주면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아픔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불량 청소년이 된 은수는 종분과 지내며 교화하게 되는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인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아픈 과거 역사의 극복에 필요한 인류애적 태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한편,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는 당시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담고있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구청에 민원을 넣는 탓에 ‘도깨비 할매’라는 별명을 가진 ‘나옥분’ 할머니는 평소처럼 구청에 가 민원을 접수한다. 그때 옥분은 새로 구청에 발령받은 9급 공무원 ‘박민재’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을 계기로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민재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결국 옥분에게 영어 수업을 해준다. 옥분은 어릴 때 헤어졌던 동생이 미국에서 자랐고 그와 통화하고 싶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재가 그녀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자 옥분과 통화하기를 거부했고 그 사실을 차마 알릴 수 없었던 민재는 옥분의 영어 수업을 그만둔다. 한편 옥분의 친한 친구 ‘정심’은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정심은 이전에 자신이 한국어로 청문회에서 얘기한 것을 일본 통역사가 멋대로 오역하여 내보낸 것에 분노하여 영어 공부를 매일같이 했고 옥분 또한 그를 위해 영어 공부를 했다. 자신이 위안부 강제 징용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정심과 달리, 옥분은 그 사실을 비밀로 묻어두며 살아왔다.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신청하지 않은 옥분은 정심 대신 위안부 규명을 위해 참석한 미(美) 의회 청문회에서 피해자라는 신분을 의심받는다. 그때 옥분은 자신의 배에 새겨진 흉터를 청문회에서 보여주며 나 자신이 증거라고 영어로 말하고 성공적으로 청문회를 마치게 된다. 영화는 위안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외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 사실 규명에 발 벗고 나서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그날의 아픔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용기를 보여줌과 동시에 억울함과 분통함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의 내용은 허구지만 과거의 아픔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허스토리>(2018)는 <아이 캔 스피크>보다 더 적극적으로 피해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산의 대형 여행사 대표 ‘문정숙’은 자신이 활동 중인 여성 협회에서 3개월간 명목상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신고 센터를 설립한다. 정숙은 자기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배정길’ 앞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를 보며 인생 한번 잘못 삐끗해서 저렇게 됐다는 모욕적인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정길은 그날로 가정부 일을 그만둔다. 정길은 위안부 피해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길은 정숙의 위안부 신고 센터를 방문한다. 정숙은 정길의 사정을 알고 나서 그녀에게 사죄하고 진심으로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재판에 힘쓴다. 피해 여성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피해자가 증언을 거부했지만, 정길을 포함한 5명의 할머니가 재판 증인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3명의 재일교포 변호사들이 무료로 변호를 맡는다. 일본에서의 재판은 순탄치 않았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판장에서 피해 여성들이 진술할 때마다 일본의 피고 측은 무반응으로 응답했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 시간이 매우 짧게 주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고난에도 끝없이 진술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재판에서 승리한다. 영화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등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청구한 ‘관부재판’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92년부터 6년간 이어진 원고단의 사투는 끝내 재판부의 양심을 흔들었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국가배상을 인정한 처음이자 유일한 일부 승소 사례를 이끌어냈다. 이후 5년에 걸친 항소, 상고 끝에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상고심이 기각되며 판결이 확정됐다. 끝내 일본의 정식 사과는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가 있다. 부당하고 반인륜적인 일을 당했지만, 아직 일본으로부터 그에 관한 공식적인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외면과 회피는 아픈 과거의 회복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또한 우리에게 남은 의무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는 태도이다. 세 작품은 그날의 일들을 보여주며 당부한다. 그날의 아픔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왔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그것이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돕는 첫 발걸음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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