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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작가와 서점에서 나눠보는 책에 관한 이야기

라디오 작가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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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학교에 가는 버스에서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 토스트집에서도 라디오는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또한 우연히 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한다. 정현주 작가는 20년간 라디오 작가로 활동했으며 책도 쓰고 특별한 서점도 운영한다. 글로 사랑을 전달하는 정현주 작가를 만나 라디오와 책, 그리고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홍진경의 가요광장(2007~2010)’ ‘이현우의 음악 앨범(2007~)’ ‘최강희의 야간비행(2011~2012)’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2012~2014)’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2015~2018)’ 등 라디오 작가로 20년 동안 활동했다. 라디오 작가가 된 계기와 오랜 시간 라디오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A. 라디오 작가는 얼떨결에 하게 됐다. 대학원생 때 친구의 고모가 아르바이트로 방송 일을 소개해주셔서 용돈벌이로 간단한 원고 몇 개 쓰는 일을 했다. 하루는 학사 논문을 끝내고 쉬는 기간에, 끈기 있는 성격이 아닌 내가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신 분이 갑자기 이력서를 써오라고 하셨고 그 이력서를 그대로 방송국에 전달해주셨다. 마침 방송국에서도 일손이 필요해서 바로 출근하게 됐다. 원래 방송에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순발력 있는 나의 성격과 잘 맞았고 너무 재미있었다. 오래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자신 있는 나의 성격은 성실하고 근면한 것이다. 잠을 줄여가며 남들이 하지 않는 일까지 도맡아했다. 그 결과로 청취율이 높게 나왔고 ‘1등 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Q. 라디오를 20년 동안 진행하면서 수많은 사연을 받았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사연에는 보통 DJ에 관한 칭찬은 많지만, 작가에 대한 칭찬은 별로 없다. 인기 아이돌이 DJ로 나오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할 때였다. 라디오 오프닝에 ‘콘크리트 사이에 올라온 들풀을 보면서 그래도 살려고 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고, 힘들어도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너무 죽고싶어서 내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이 오프닝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사연을 보냈다. 당시 왜 내가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는가, 남을 화려하게 해주고 나는 어디 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면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을 때였는데, 이 사연을 받고 슬럼프를 극복하게 됐다. 

‘이현우’씨가 DJ를 맡고 있었을 때 스타성이 아닌 프로그램의 품질로 1등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정말 많은 기부를 받았고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고 기억에 남는다.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

Q.  저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2015), 『다시, 사랑』(2014), 『그래도, 사랑』(2020)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책을 쓰는 것과 라디오 대본을 작성하는 것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각각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A. 라디오는 사라진다. 그날 사람들이 한 번 듣고 지나가게 된다. 반면 책은 스스로 돌아다니며 일을 한다. 독자와 만나서 그 안에서 화학 작용이 일어나니까 다음이 있다. 책은 내가 죽어도 영원히 남아있다. 따라서 책을 쓸 때 조금 더 조심스럽다. 원래 책을 쓸 마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라디오 대본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 출판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책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지 않을 때 출판사에서 화가 ‘김환기’와 그의 아내 ‘김향안’의 삶을 담은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를 써보자는 제안이 왔다.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의 아내가 아니라 김환기를 만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을 좀 더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그 책을 통해서 ‘의미가 있어야 책을 쓸 수 있구나. 세상에 의미 있는 글들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Q.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그래도, 사랑』 『다시, 사랑』처럼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저술했다.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책마다 다르다. 『그래도 사랑』을 발간했을 당시 이별 후 많이 아프고 난 다음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뇌혈관이 터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사랑에서 승자라고 할 건 없지만 가장 많은 걸 얻은 사람은 나였다.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아서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를  바보가 될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함을 보여줬고 그때 한창 유행하던 ‘밀당’이라는 것도 안 했다. 당시 ‘밀당 안 하고 사랑하면 서로 편하고 좋은데 왜 자꾸 피곤하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그냥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는 주제로 책을 썼다.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책을 준비하면서 김향안 여사의 ‘사랑은 지성이다’라는 말이 확 와닿았다. 이때까지 열정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불꽃같이 타오르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숙한 사랑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랑이 지성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였으면 좋겠다.

 

▲연남동에 위치한 리스본 본점
▲연남동에 위치한 리스본 본점
▲연남동에 위치한 리스본 포르투 2호점
▲연남동에 위치한 리스본 포르투 2호점

Q. 마포구에서 서점 리스본을 운영하고 있는데, 리스본 서점을 차리게 된 계기와 서점에서 운영하는 모임의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A. 라디오를 하다가 번아웃이 왔을 때 세계 일주를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한 피디님이 전화해서 ‘꼭 오셔야 한다. 마지막 남은 걸 다 태우게 해드리겠다’라고 해서 라디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을 하는데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 때문에 공황 증세까지 나타났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기에 작업실에서 책도 쓰며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소개하기 위해 서점 리스본의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했고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하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해보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왔다. 작업실로 쓸 공간과 책을 둘 공간도 없어서 2호점까지 내게 됐다. 

서점에서는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뿐만 아니라 달리기 모임, 재즈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진행한다. 모임은 책을 중심으로 연다. 달리기 모임의 경우 달리기에 관한 책 발간 예정인 김성우 마인드풀 러닝 코치가 진행한다. 재즈 모임도 재즈 칼럼리스트가 진행한다. 이 외에도 단골손님 중에 서점과 결이 맞는 분들에게 모임 몇 개를 맡겼다. 

 

Q. 최근 온라인 매체의 발달과 바쁜 현대생활로 독서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작가로서, 또 서점 대표로서 어떤 심정인지 궁금하다. 또한 독서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독서율을 왜 증가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된다. 책은 좋은 거니까, 우리는 당위적으로 독서율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걸 인정하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난 아이들이 과연 책을 읽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책을 안 읽어서 무식하다’, ‘머리가 나쁘다’라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인 것 같다. 아이들은 그냥 그런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책 안 읽어도 돼. 읽지 마. 괜찮아. 재밌는 거 많잖아. 그런데 책은 되게 재밌는 거야. 책의 재미를 아직 모를 뿐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을 안 읽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주고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거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는 마당에 모여서 와인을 마시고 책 읽고 수다 떨며 파티를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 하니까 온라인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갖는다. 현재 본점을 없애고 2호점으로 이사 중이다. 규모를 줄여서 내실을 다지고 앞으로 더 흥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한다.

 

Q. 작가를 꿈꾸는 홍익대학교 학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A. 넷플릭스에 <더 체어>(2021~)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는데, 미국 대학교에 한국인이 영문과 학과장이 된 내용이다. 어느 날, 교수들이 학생들이 너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한 교수가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쓰는 거지 읽는 게 아니다’ 요즘 추세를 잘 반영한 것 같다. 쓰기 모임을 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읽기 모임을 하면 겨우 정원 채우는 정도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꼭 했으면 좋겠다.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왕 쓸 거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좋은 글이 뭔지, 내 글이 세상에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냥 글 쓰는 게 좋다면 왜 좋은지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너무 내 안에만 갇혀서 자기 얘기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 글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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