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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매 순간 변화를 모색하다.

박서보(회화50)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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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회화50)는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역사다. 그는 추락하지 않기 위해 매번 새로운 화풍으로 작품을 제작해왔다. 좋은 술이 되려면 오랜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 예술가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마하며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그는 15일(수)부터 국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질주해 나가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기지 재단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Q.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분야 중에서 미술을 선택하고 작가의 길로 나아간 이유가 궁금하다.

A. 아버지께서는 작가 대신 법률가를 희망하셨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으면서 사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는 것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해본 적이 없기에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나쁘진 않지만, 과거에는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택한 이유는 그냥 좋아서다. 요즘 젊은 세대는 그림을 그리고 좋은 평을 받을지라도 돈을 꽤 버는 일이 생기면 작가를 포기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작가밖에 없었다. 미술을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직업이 교사뿐이었다. 교사를 선호하지 않은 이유는 학교 일 로  작품활동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엔 돈을 못 벌었기 때문에 많이 굶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

 

▲회화(繪畵) No.1-57, 1957, 캔버스에 유채, 95x82cm, 개인소장 /출처: 박서보 스튜디오
▲회화(繪畵) No.1-57, 1957, 캔버스에 유채, 95x82cm, 개인소장 /출처: 박서보 스튜디오

Q. 비정형 추상회화인 *앵포르멜 사조의 흐름을 주도했다. 앵포르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A. 6・25 전쟁은 참혹한 동족 간 전쟁이었으며,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됐다. 전쟁 당시엔 스무 살이었는데, 군인들이 친구들을 징집했고, 많은 친구가 죽었다. 이런 경험으로 고뇌와 반항심 등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올라왔다. 이러한 절망적 시기로 인해 시대에 대한 저항만 있었다. 전쟁 때 폭격으로 서울 시내의 집들이 망가지고, 천장이 무너지면서 작은 철사와 시멘트 덩어리가 떨어졌었다. 요즘처럼 좋은 미술 재료도 없어서 을지로 입구 근처에 있는 화약 약품 가게에 가서 정제되지 않은 린시드 오일을 사용했다. 린시드 오일로 그린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누레지기 때문에 물감을 사서 덫 바르기도 했다. 또한, 미군 부대에서 나오던 에나멜 페인트도 사용했다. 페인트가 빨리 마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미술 재료와 다른 느낌이 들고, 두께를 만들기 어려워서 질질 새는 특징이 있다. 재료의 특징이 폭격을 당했을 당시, 철사와 시멘트 덩어리의 엉켜진 모습을 잘 표현해주었다. 그것밖에 쓸 수 없는 환경과 빈곤이 창조의 어머니 역할을 한 셈이다. 

 

Q. 동문은 당시 목가적인 아카데미 화풍에 반기를 들고 반(反)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 선언에 앞장섰다. 반 국전 선언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A.  학생 시절에 화가로서 등용할 수 있는 방법이 국전이었다. 선생님의 권유로 출품을 했고, 두 점이 입선하고 좋은 평도 받았다. 하지만 전람회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전쟁을 겪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인기 있었던 그림만 있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56년에 문우식(1932~2010), 김충선(1925~1994), 김영환(1928~2011)과 함께 4인전을 하면서 반(反) 국전 선언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회적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빨갱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국가에서 하는 전람회를 반대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도상봉(1902~1977) 선생이 “저 빨갱이, 근데 저놈이 재능이 있거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 국전이 파급되어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 운동이 다음 해인 57년부터 일어났다. 56년의 사건이 폭발의 도화선이 되어 ‘현대미술가협회’나 ‘모던아트협회’ 등이 만들어졌다.

 

▲묘법(描法) No.6-67, 1967,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64.8x64.8cm, 작가소장 /출처: 박서보 스튜디오
▲묘법(描法) No.6-67, 1967,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64.8x64.8cm, 작가소장 /출처: 박서보 스튜디오

Q. 대<묘법> 연작은 작가를 대표하는 단색화 작품이다. 어떤 경험과 영감으로 작품이 탄생했는지 궁금하다. 

A. 부족함이 남보다 많고, 넘치는 것도 남보다 많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은 늘 내면에서 충돌했고,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신(修身)의 힘을 통해 정제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묘법에 영향을 준 두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절에 가서 불공을 한 일이다. 이 일로 불교적 소양이 몸에 자리 잡았다. 두 번째는 김일엽(1896~1971) 스님을 만난 것이다. 나도 스님처럼 목탁을 두드리면서 반복 구절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참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절에 찾아갔다. 스님에게 "당신은 부처를 만납니까?"라고 질문했고, 그녀는 "부처를 만나보니 나 자신이었다"라고 답했다. 그때 '꽈당!'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예술가가 되나요?"라고 질문하니 '관세음보살'을 부처상이나 아름다운 돌 앞에서 하고, 그것이 싫으면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보라고 조언했다. ‘박서보, 넌 누구냐?’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반성을 했다. 그러나 모든 걸 비워내는 일은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그림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둘째 아들이 방안지 밖으로 글씨가 삐져 나가자 화가 나서 빗금을 친 모습을 보고 ‘저게 바로 체념이다’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아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험들이 묘법의 출발이 되었다. 

 

 

Q.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 즉, 자기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라 본다. 또한, ‘어떻게 할 거냐?’라고 계속 물어보는 것이 작가로서 생명을 연장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본다. 나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그런 적이 없지만, 많은 사람은 남의 작품을 곁눈질해서 얻은 것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추락하지 않으려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며칠 전 한 기자회견에서도 나의 스승은 자연이라고 했다. 산, 계곡, 하늘, 바다, 들판 등은 제1 자연이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집과 쇼윈도는 제2 자연이다. 차를 타면서 가는데, 백화점 쇼윈도는 계절마다 바뀐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바로 시대의 색감이라고 깨달았다. 주변을 유심히 보면 많은 걸 깨닫는다. 이를 관찰하는 경험을 통해 예술가의 원동력은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라고 확신했다.

 

 

▲기지재단에 걸려 있는 박서보 작가의 작품
▲기지재단에 걸려 있는 박서보 작가의 작품

Q.본교는 미술로 명성이 있기에 작가 등 예술가를 희망하는 학우들이 많다. 학교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A. 예술가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20세기는 아날로그 시대이며, 21세기는 디지털 시대다. 현재는 아날로그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시대다.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은 철저히 자신을 드러냈다. 캔버스에 자기 생각을 토해내고 그걸 이미지화했다. 그런 작업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에게 화면은 자기 생각을 토해내기보다는 비워내는 장소다. 또한, 21세기는 사람이 변화를 좇아가지 못해서 추락하는 시기다. 현재 전 세계인들은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가까지 이미지를 통해 사람을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잉크로 글을 쓸 때 잉크가 마르지 않으면 흡인지를 사용한다. 이처럼 그림도 흡인지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로 사람을 공격하고 불안하게 만들기보단 안정감을 찾게 해주고 행복해지게 스트레스를 흡인하는 작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에 미쳐야 한다. 진심으로 작가를 희망한다면, 예술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그림에 집중하길 바란다.

 

*앵포르멜: 앵포르멜(Informalism)은 비정형, 부정형이란 의미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

*수신(修身):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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