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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고 공평한 동아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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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홍대신문 기자 생활을 한 지 1년이 넘어갔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강의에 출석만 하고 취재하러 다니기도 하고, 불타는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을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기사를 맡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사회적 안전망의 중요성이다.

홍대신문은 지난 1302호에 여러 민감한 사안을 기사로 내기로 기획했었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호기롭게 도전해보기로 했지만, 곧 후회했다. 걱정된다는 주변의 우려,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관계는 기자를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기사를 못 채워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선배가 있었던 지난해 2학기에는 선배로부터 질타 받을 두려움, 동기가 대부분이던 올해 1학기에는 동기에게 미안함, 그리고 현재 2학기에는 후배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 동인이었다. 따라서 죽기 살기로 기사 분량을 채웠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출구가 나오지 않자, 결국 기사는 속된 말로 터졌다. 대체 가능했던 단신 기사가 기자를 도왔다. 어릴 적 읽었던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떠올랐다. 호랑이를 피해 구석에 몰린 오누이 앞에 동아줄이 나타난다. 오누이는 동아줄을 타고 위기를 피한다는 결론이다. 기자에게 대체 기사는 오누이 앞에 나타난 동아줄 같았다.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사회에도 동아줄은 있나? 그 동아줄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가?

첫 번째 의문은 쉽게 답할 수 있다. 몇 가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한책임, 파산, 보험 상품 등이 있다. 두 번째 의문은 시각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오겠지만, 기자가 도출한 답은 ‘아니오’다. 입시를 생각해보자. 출신 대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위상은 여전히 대단하다. 한국 입시 중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 평가받는 수능은 다를까? 수능은 수험생 모두 같은 문제를 풀며, 고졸 이상(고등학교졸업예정자 포함) 국민 누구나 언제든지 수험생이 될 수 있어서 공평해보이지만, 완전히 공평하다고 볼 수 없다. 부모의 소득, 학군에 따라 수험생의 기대 성적이 달라진다. 『공정하다는 착각』(2020)에서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1953~)은 심지어 개인이 노력하는 것 자체도 환경과 운에 따른 것으로 본다. 또한 여러 번 볼 수 있는 수능의 특성도 모두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집안은 수험생 자식에게 재수도 쉽게 허가할 수 없다.  비싼 학원비와 학원가의 자취방 세를 대기에는 부담이다. 입시에서 벌어진 차이는 노동으로 이어진다. 여러 좋은 환경에 힘입어 명문대에 진학한 엘리트들은 전문직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고소득을 받게 된다. 여러 값진 경험을 하며 자식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저소득층은 당장 내일을 생존하기 위해 생존노동을 하게 된다. 이 구조는 이후 세대로 대대로 이어지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불공평한 동아줄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양극화 심화 사이클을 부수는 것은 복지다.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의 욕구단계설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며 이를 충족하고자 한다. 하위 단계의 욕구는 다음 단계에서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강하고 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만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된다. 이 말을 풀이하면, 결국 하위 욕구(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상위 욕구(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를 느낄 수도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기본적 욕구 충족이 안 된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라는 훈계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는 복지 제도를 통해 하위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밥그릇을 걱정하며 노동을 하지 않게 되고, 고차원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고부가가치 사업을 구상하거나 걸작을 만들어낼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기자가 대체 가능 기사 덕분에 안도감을 느끼고 어려운 기사에 부담 없이 도전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한 사업가나 예술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누구나 사회 안전망 안에 있다는 확신을 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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