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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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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까지 유럽을 주도하던 오페라와 오페레타의 인기는 영국과 미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대중오락을 만나 뮤지컬 장르를 완성해갔다. 작곡가, 극작가, 배우, 댄서 등은 버라이어티, 벌레스크, 레뷔, 보드빌, 판토마임 그리고 이야기가 탄탄한 오페레타 사이를 손쉽게 넘나들었다. 자유로운 장르의 이동은 새로운 창작을 낳았고 클래식 전통이 없는 미국은 다양한 대중오락을 토대로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음악극을 양식화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두 번의 세계 대전은 변방국 미국을 세계 중심국가로 떠오르게 했다. 유럽이 전쟁의 포화에 시달릴 때 미국은 무한 성장하는 꿈의 나라였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부유한 소수만이 가지던 자가용이 1차 대전 이후에 수백만명의 가구에 보급되었으며 전화기도 중산층 가정에 놓이게 되었다. 마이크의 발명과 전기녹음 기술의 발달은 메가폰을 이용한 어쿠스틱 녹음보다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재현했고 1920년 상업라디오방송국의 설립을 통한 라디오의 보급은 음악 산업에 있어 엄청난 변화의 기회였다.

1920년대 미국은 재즈와 댄스열풍이 대단한 위대한 갯츠비의 시대, 흥청거림의 시대였다. 뉴욕은 그 중심지였다. 흥행사 플로렌스 지그펠드는 ‘지친 회사원들’의 눈요깃거리로 쇼걸들의 보드빌 쇼인 ‘폴리스’ 시리즈를 20년 이상 흥행시키며 브로드웨이를 쇼 비즈니스의 상징으로 만들더니 흑인 노동자가 출연하고 인종문제를 다룬 진지한 뮤지컬까지 제작하며 본격적인 뮤지컬 시대를 열었다. 제롬 컨이 작곡하고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극본과 가사를 쓴 <쇼보트 (1927)>는 미국 뮤지컬 최초의 북 뮤지컬이며 진지한 소재를 다룬 첫 뮤지컬이다. 폴리스 쇼의 상징인 ‘걸들의 합창’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첫 장면부터 목화솜을 짊어진 흑인 노동자들의 리얼한 합창은 충격이었다. 최초의 뮤지컬 형식을 선보이며 흥청거리던 1920년대가 끝나기 무섭게 찾아온 대공황과 경기침체는 거대한 흰 불빛의 거리라고 불리던 브로드웨이에 긴 어둠을 드리웠다. 

유럽이 두 번째 전쟁을 치르는 동안 대공황의 터널을 성공적으로 지나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가 경쟁적으로 뮤지컬을 제작했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주크박스 어디에서든 뮤지컬 히트곡이 들렸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흥행했으며 뮤지컬 장르가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시기, 뮤지컬의 황금시대(golden age)가 온 것이다. 

새 시대의 선언은 1943년 작사가이자 제작자인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작곡가 리차드 로저스가 만든 <오클라호마!>였다.  대공황기 뮤지컬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책이나 희곡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에서 웃음 이상의 진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로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5년간 2천회 장기공연, 80만장의 오리지널 캐스팅 음반 판매 기록은 그 증거였다.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해머스타인과 로저스 팀은 <회전목마>, <남태평양>,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 히트작을 통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뮤지컬의 모습을 완성했다. 음악과 이야기가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뮤지컬 플레이(Musical Play)는 뮤지컬의 ‘정전’이 되었다. 히트곡만 써내면 뮤지컬 성공이 보장되던 시대는 끝났다.  

음악, 문학, 미술, 기술이 통합된 종합예술 뮤지컬 제작의 협업 시스템이 이 시대에 구축되었다. 아름다운 노래와 신나는 춤을 보기 좋게 무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과 춤이라는 뮤지컬의 형식으로 전개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제작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야기가 먼저 구성되면 그에 따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가와 작곡가의 협업은 필수였다.  

황금시대를 만든 주역은 다수의 작가와 작곡가 팀이었다. 미국식 재즈 뮤지컬로 한 획을 그은 <포기와 베스>를 쓴 아이라 거슈윈과 조지 거슈윈 형제, <게릭 명랑시리즈>, <코네티컷 양키>를 쓴 로렌스 하트와 리처드 로저스, <마이 페어 레이디>를 쓴 알란 제이 러너와 프레드릭 로우, <온 더 타운>의 베티 컴든과 아돌프 그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쓴 레너드 번스타인과 아서 로렌츠, 스티븐 손드하임 등 다양한 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0년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쓴 제리 복과 셸던 하닉도 황금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대표적인 작가, 작곡가 팀이었다. 물론 어빙 벌린이나 콜 포터 등 틴 팬 앨리 출신 스타 작곡가들이 단독으로 완성한 <무엇이든 괜찮아>나 <키스 미 케이트>와 같은 뮤지컬도 인기가 대단했지만 문학과 음악 파트의 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음악극의 기초를 단단하게 만든 시기가 전후 미국의 브로드웨이였다. 

또 하나의 협업 파트너는 안무가이다. 이야기 중심의 ‘북’뮤지컬, 진지한 뮤지컬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춤은 스토리와 상관없이 분위기를 돋우고 흥미를 유발하는 ‘쇼 스토퍼’ 이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완결된 이야기와 정서를 전달하는 핵심으로서의 ‘움직임’이라는 뮤지컬 안무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춤으로 줄거리를 전달하고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창작 초반부터 안무가의 참여가 중요했다. <오클라호마!>의 아그네스 드 밀은 춤의 스토리텔링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제롬 로빈스, <스위트 채러티>의 밥 포시로 이어졌다. 이제 뮤지컬에서 춤은 드라마의 부수 효과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핵심요소로서 뮤지컬에서 춤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작품의 주제는 전후 미국 문화를 반영했다. 2차 대전 이후 변화된 미국은 개인주의보다는 국가, 기업, 학교와 같은 조직의 소속감, 소위 애국심이 중요한 가치였다. 참전 군인과 가족, 유럽 이민자들의 친인척을 통한 간접 경험은 국가가 얼마나 소중하며 세계를 리드하는 초강대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를 새삼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다수 미국인들은 행복하다고 믿었고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고 있다고 자부했다. 획일화된 대중사회에서 안전과 소속감을 느끼며 행복했던, 순응의 시대였다. 전후 20년을 아우른 황금시대 뮤지컬이 다루어야 하는 삶의 공식은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가 된 것은 무식한 꽃파는 처녀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변모했기 때문이었고 뉴욕의 부랑아를 다룬 <아가씨와 건달들>은 그들의 불량한 삶의 태도가 우화 속 코믹 캐릭터로 그려지면서 성공했다. 

황금시대의 끝자락으로 가면서 뮤지컬이 다루는 주제와 소재가 변화되었다. 1950년대 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당시 뉴욕 이민자 청소년의 비극적인 스토리로 바꾼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현실 도피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황금시대 뮤지컬이 바뀌고 있음을 예고했으며 제정 러시아 말기 유태인 전통을 지키려는 기성세대와 젊은 이들의 갈등을 그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황금시대 뮤지컬 전통의 종말을 상징한 작품이 되었다.

 

참고문헌 

 

도널드 서순 지음, 오숙은 외 옮김, 『유럽문화사 IV』, 서울:뿌리와이파리, 2012.

 

데이비드 헨슨·키네스 피커링 지음, 고희경·이윤정 옮김, 『뮤지컬 워크북』, 서울:연극과인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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