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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독일어1> 박은숙 교수가 추천하는 『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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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은 하늘길과 뱃길은 물론 인간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기회마저 빼앗아버렸다. 국가는 국민에게 예전과 같은 일상을 돌려주기 위해 개인의 자유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와 개인 간에 균열과 불신이 생겨나고 있다. 서양의 역사를 파헤쳐보면,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가 중심 논제로 다뤄졌던 고대와 중세에서조차도 개인과 공동체는 확고한 유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어 개인과 공동체가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근대 이후에는 공동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의 관심을 끌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며 공동체인 외부와 선택적으로 소통할 뿐, 공동체와 잃어버린 관계를 복원하려고 하지 않게 됐다. 잃어버린 유대에 슬퍼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국가공동체와 개인의 자유를 놓고 사회가 갈등하는 때가 오면 언제나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소포클레스(Sophocles, B.C.496~B.C.406)의 『오이디푸스 왕』(2009)이다. 작가 소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왕』이다. 이 작품에는 예술의 형식적·사상적 특징들이 잘 표출되어 있으며, 결과를 먼저 제시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극대화했다. 그의 작법은 현대 드라마의 큰 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석극의 원형을 보여주는 자산이다. 이 작품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 Sigmund, 1856~1939) 덕분에 대중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가 『시학』(2002) 26장에서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것 외에도 음악과 장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사보다 짧은 시간에 큰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우수한 문학 장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표본으로 삼았을 정도로 극찬한 작품이 바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테베에 큰 역병이 들어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역병을 해소하기 위해 신탁을 받는데, 그가 받게 된 것은 ‘이 땅의 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탁이었다. 선왕 라이오스가 델포이로 가던 중 살해당했을 때, 그 범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게 바로 신탁이 말하는 ‘죄’였다. 이것을 전해 들은 오이디푸스는 선왕을 죽인 이를 잡아 응분의 벌을 내릴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면서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오이디푸스 자신임이 드러났고, 전염병이 창궐하게 된 것이 자신의 ‘죄’인 것을 알게 된 그는 눈이 있되 보지 못한 것을 통탄하며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극단적일지언정 속죄하고 왕권을 내려놓는 행동을 통해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당시 독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희생을 택하는 그에게 감동하고 연민을 느꼈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본받아 마땅한 인물로 여겼던 것이 오이디푸스와 같은 인물상이었고, 이것이 고대 그리스 휴머니즘의 본질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휴머니즘에 따른, 강한 도덕적 의지를 갖춘 품위 있는 한 인간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인간 윤리가 발달하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삼권으로 분산된 작금의 상황에서, 고대 그리스의 사상처럼 극단적일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지도자는 항상 어깨에 막중한 임무를 져야 한다. 현대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은 오이디푸스와 같이 역병을 종식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마침표를 찍는 것을 넘어, 국가에 대한 불신이 넘실거리는 사회의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숙제 또한 안고 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는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처럼 『오이디푸스 왕』을 포함한 다양한 동서양의 고전들이 개인과 공동체의 유대관계 회복을 위한 해결책을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고전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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