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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한글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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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문자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 고유한 문자를 지닌 나라는 몇 없다. 그중에서도 한글은 창작자가 명시되어있고 과학적인 글자임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자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한글이 순탄하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아니다. 〈나랏말싸미〉(2019), 〈말모이〉(2019), 〈시인 할매〉(2019)를 통해 한글의 제작부터 한글을 지켜내는 과정, 그리고 아직도 한글이 전해지지 않은 이들의 모습까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자와 지식으로 권력을 독점했던 시기, ‘세종’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득권층인 신하들은 모두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일에 반대했고 세종도 혼자의 힘으로 더는 만들지 못하겠다며 포기한다. 그때 일본에서 팔만대장경 목판을 요구해왔고 스님 ‘신미’와 ‘학조’ ‘학열’이 일본으로 그들을 돌려보낸다. 세 스님은 세종과 만났고 세종은 학조가 읊는 산스크리트어 불경에 관심을 갖는다. 산스크리트어를 포함한 여러 소리글자를 알고 있는 스님이 문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세종은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그들에게 함께 글자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스님들과 세종, 그리고 세종의 두 아들은 신하들 몰래 글자 만들기에 열중한다. 여러 소리글자의 기본을 토대로 초성, 중성, 종성을 나누고 구강의 조음 위치를 고려하여 자음을 만들었다. 세종이 생각해왔던 점, 선, 면을 바탕으로 모음을 만들고 백성들이 배우기 쉽게 최대한 간략하게 만들었다. 글자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자의 모양을 만드는 일이 어려울뿐더러 세종과 스님들의 의견이 불일치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음 17자, 모음 11자의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일이 가장 큰 고비였다. 몇몇 집현전 학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신하들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했고, 세종이 훈민정음만은 서가에서 썩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만 신하들은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훈민정음이 백성들에게 반포되는 모습까지 영화에 담기지 않았지만, 우리가 지금 한글을 사용하는 것으로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이 직접 한글을 창제했다는 정설 대신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큰 일조를 했다는 가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서 충분히 세종의 애민 정신을 느낄 수 있고, 한글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말모이>에는 일제 강점 하에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대동아극장에서 일하던 ‘판수’는 소매치기 전과자임이 들통나서 해고당한다. 판수는 아들 ‘덕진’의 학교 월사금을 내야 했기에 경성역에서 ‘정환’의 가방을 훔친다. 하지만 판수가 훔친 것은 돈이 아니라 조선어학회에서 만들고 있는 말모이 사전의 원고였다. 이 일을 계기로 판수도 조선어학회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정환은 까막눈에 전과자인 판수를 받아들이기 싫어하지만,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우리말의 사투리를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제가 조선어를 탄압하고 있었을뿐더러 말을 모으는 데 동참해주는 사람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다’가 이끄는 일본제국 경찰들이 쳐들어와 조선어 사전의 원고를 빼앗아 가고 조선어학회 구성원인 ‘조갑윤’을 붙잡아간다. 그 후 갑윤이 출옥한 뒤 사망하자 그의 부인은 정환을 불러 남편이 만일을 대비해 사전 원고를 필사해 두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필사본을 그에게 넘긴다. 조선어학회는 다시 사전을 완성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표준어를 정하기 위한 청문회까지 연다. 이 사실을 안 일본은 청문회가 열린 극장에 난입하고 사전 원고를 가지고 있는 정환과 판수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정환은 큰 부상을 입고 판수에게 부산으로 원고를 가지고 가 인쇄를 맡기라고 한다. 하지만 판수도 일본 경찰에게 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자 우체국에 간신히 사전 원고를 숨긴 후 경찰에게 잡힌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조선어학회도 다시 문을 연다. 그리고 1947년 마침내 조선말 큰사전이 완성된다. 한국어는 현존하는 3천 개의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가지고 있는 단 20여 개의 언어 중 하나이며,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회복한 나라다. 소중한 우리 말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던 선조들의 모습이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 할매>는 어렸을 적 글자를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이 글자를 배우고 시를 쓰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1945년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고 전후 재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성인 대상 문맹 퇴치 교육이 시행된다. 하지만 농촌 지역의 노인 문맹률은 아직도 높고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문맹 퇴치 교육의 기회가 사회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 전남 곡성군에 ‘길 작은 도서관’이라는 마을 도서관이 생겼다. 이 마을 도서관에서 할머니들은 한글 공부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처럼 그림책 교재가 사용되며 미술 공부도 함께 이루어졌다. 비록 글을 읽고 쓰는 게 아직은 어렵지만 7명의 할머니는 서툰 한글로 자신의 삶을 시에 녹여낸다. 한평생 공부도 못해보고 어린 나이에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 아이들을 낳고 가난에 힘들었던 할머니들의 외롭고 모진 삶이 그들의 삐뚤빼뚤한 글씨에 나타나 있는 것만 같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간결한 그들의 시가 죽지 못해 살아왔다는 그 삶을 보여준다. 그렇게 할머니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시는 시집 「시집살이 時집살이」(2016)로 발간됐다. 할머니들은 생전 다녀보지 못한 초등학교에 시집 작가로 초청되어 아이들에게 시 이야기도 해주고 사인도 해준다. 마을 벽에 자신들의 시를 적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들의 그림이 마치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귀여워 보는 이들의 미소, 혹은 눈물을 자아냈다. <시인 할매>는 앞의 두 영화에서 어렵게 만들어지고 지켜진 한글이 아직 닿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글자를 몰라서 서럽고 힘겨웠던 너, 나 할 것 없는 우리 모두의 할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말모이〉에서 정환은 말한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나랏말싸미〉에서 볼 수 있듯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종이 우리 민족의 생명을 만들었고, 선조들의 노력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글을 살려냈다. 이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한글을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매들’처럼 한글이 닿지 못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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