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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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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Alechinsky, <Champ clos>, 판화, 136 x 57cm, 1980.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Pierre Alechinsky, <Champ clos>, 판화, 136 x 57cm, 1980.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피에르 알레친스키(Pierre Alechinsky)(1927. 10~)는 그 중요성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벨기에의 스카빅(Schaerbeek)에서 태어난 알레친스키는 브뤼셀의 라 캉브르 국립시각예술학교(l’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chitecture et des Arts decoratifs de La Cambre)에서 수학하며 타이포그라피, 일러스트, 판화, 사진 등을 배웠다. 이 기간에 그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장 뒤뷔페(Jean Dubuffet) 등의 작품을 접하고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49년 카럴 아펠(Karel Appel),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등과 함께 벨기에의 미술 그룹 코브라(COBRA)의 일원으로 활동한 그는, 1951년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주 멤버로 활약했다.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3년간의 코브라 활동 기간 동안 제도권 예술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도한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은 1950년대의 일본, 미국 여행과 함께 그의 자유로운 작품 형식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회화, 판화, 조각, 켈리그라피,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 특히 석판화(lithography)는 그가 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예술적 고민을 풀어온 장르이다. 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활용하는 석판화는 목판화나 동판화보다 훨씬 유연한 형태와 다채로운 색상 활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매체의 융통성은 강렬한 필체와 원색을 바탕으로 자연의 원초적 표현력을 모색한 알레친스키의 예술적 구상과 부합하는 지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석판화 스타일의 전형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은 <샹 끌로(Champ clos)>이다. 작품의 제목부터 살펴보자. 샹 끌로(champ clos)는 프랑스어로 중세시대의 기사들이 토너먼트(tournament) 경기를 펼치던 싸움터를 의미한다. 들판(champ)과 울타리(clos)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경기장은 사각형의 울타리가 둘러진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알레친스키의 작품도 강렬한 초록빛 배경을 바탕으로 안쪽이 파란색의 사각형 울타리로 막혀있는 모습이다. 울타리 안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면 다양한 굵기의 암적색 선들이 잎의 줄기와 같은 기하학적인 커브를 만들고, 그 곁에서 옅은 선홍색 선들이 빽빽하게 들어차며 보조를 이루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일견 판화가 아닌 유화를 보는 착각이 들 만큼의 자유분방한 붓놀림과 선명한 원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서 작가가 석판화라는 매체의 강점을 극도로 끌어올려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유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서구 제도권 미술을 제한했던 이성적 틀에 맞서서 자연 그 자체가 주는 시원적인 상상력과 자유로움을 향해 분투했던 작가의 문제의식은 하나의 싸움터(Champ clos)안에서 선들의 역동적인 얽힘을 통해 집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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