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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적 위로, 라디오헤드(Radio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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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매 순간 다른 친구들을 경쟁자로 생각해야 하며, 시간을 버리지 말라는 피곤한 가르침을 받아오며 살아왔다. ‘잘 살아야 한다’라는 명목 아래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잘 산다는 것’이 언제부터 남들을 제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경쟁’은 다소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스스로 개발하고 발전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남을 이겼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잠시 이 피곤한 생각을 내려놓자고 권유하고 싶다. 지친 마음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에는 심미적인 것을 선호한다. 영화, 그림, 음악 같은 예술 매체들 말이다.

예술 매체 중 음악은 우리의 삶과 매우 맞닿아 있다. 영화나 그림 같은 경우에는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해야 하지만, 음악은 일상과 공유될 수 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음악은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신나는 노래를 들어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도, 혹은 슬픈 노래를 들어 우울을 깊게 느껴볼 수도 있다. 또한, 음악은 산책하거나 장을 보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감성을 불어넣고, 의미를 찾게 도와준다. 음악은 일상을 환기하고, 일상은 음악을 상기시킨다. 이 긴밀한 관계로 인해 우리의 삶에서도 예술을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좋은 작품을 평가하는 심미성 기준은 첫 번째, ‘정성’이다. 어떠한 예술 매체에서도 우선으로 ‘정성’을 추구한다. 필자는 창작자가 무언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과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 두 번째, ‘독창성’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은 작품이 좋든 나쁘든 간에 ‘새롭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의미가 있다. 따라서 위 두 가지 기준과 더불어 체험자를 이해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면 비로소 좋은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피곤한 작업 과정을 항상 거쳐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여러 예술 매체들의 특성을 정리해보니 위와 같은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필자가 깊게 즐기는 음악에는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있다. 이들의 노래는 위 기준을 따질 것도 없이 귀를 거쳐 바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라디오헤드는 90년대 대중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밴드로, 록이 그 기원이지만, 그들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사운드를 듣는다면 단순 ‘록’이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자적인 밴드이다. 록에 전자음, 재즈, 현대음악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시대 현상, 본인의 생각 그리고 삶에 대해 노래하기도 한다.

필자의 라디오헤드 경험은 1집 ≪Pablo Honey≫의 수록곡 <creep>으로 시작하여 모든 앨범으로 확대됐다. 이들의 매력은 앨범을 공개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꾀하기에 각각의 앨범을 각기 다른 밴드의 노래로 착각할 정도로 독창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앨범 장르의 다양성 덕분에 청취자들은 신선하고 새로운 음악을 찾기 위해 오랜 노력을 할 필요 없이 라디오헤드의 다른 앨범에서 좋은 노래를 찾으면 된다. 따라서 모든 앨범마다 그 정성과 독창성이 느껴지므로 라디오헤드가 필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여느 때보다 다양한 음악을 청취할 수 있는 시대다. 매시간 변하는 스트리밍 TOP100 속, 대중성만 겨냥하고 유행을 의식한 일회적인 음악에 지쳤다면, 그것은 예술에 대한 심미적 감각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가벼운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자신의 심미적 기준이 필자와 부합한다면, 밴드 라디오헤드를 들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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