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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점의 심연 속으로

<김환기, 그.리.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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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이어지는 푸른 점들, 그리고 그 점들이 빚어내는 심연은 관객을 캔버스라는 우주에 빠져들게 만든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자연과 민족의 정서를 서정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상예술로 그려낸 한국의 대표 화가이다. 환기미술관 기획전 <김환기, 그.리.다>展은 김환기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광범위한 예술의 범주에 도전을 거듭했던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색채와 조형에 대한 연구 끝에 궁극적으로 김환기 예술의 정수인 ‘전면점화’에 이르기까지 김환기의 예술에 대한 고심과 모색이 전시를 통해 드러난다. 나아가 환기미술관 달관-김환기기념관 수향산방에는 김환기의 배우자이자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인 김향안(金鄕岸, 1916~2004)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김환기의 예술이 가진 고유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는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의 작품세계, 김환기와 김향안의 예술적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김향안과 김환기가 나란히 걸어가는 사진이 보였다. 그 사진은 단순한 부부의 관계를 넘어 예술적 영혼의 동반자였던 둘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첫 공간인 ‘인트로스페이스(IntroSpace)’에는 그의 작업의 모태가 된 스케치가 그가 뉴욕에서 쓴 편지와 함께 전시돼 있다. 파리에서 작업을 해오던 김환기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결심했고, 뉴욕의 아틀리에로 떠난다. 그는 이곳에서 1964년부터 1969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하며 예술적 지향을 모색했다. 스케치에는 작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연필로 간단히 휘갈긴 듯한 스케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끝없이 고민한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고심이 느껴진다. 직선과 곡선, 원과 점이 주가 된 스케치는 단순하지만, 그가 훗날 그릴 전면점화의 토대를 보여준다.

미술관 2층에는 1960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환기 작품의 백미이자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형 푸른 점화와는 다르게 다양한 색과 형태의 작품들이다. 김환기의 <십자구도>는 화면을 십자로 나누어 구성했는데, 화면 구성이 과감하며 분명하고 강렬한 색채가 사용됐다. 이 작품에서 화면을 사등분하는 선은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확장하는 느낌을 준다. <무제>(1969)를 비롯한 작품에서도 김환기가 부단히 노력한 화면 구성에 대한 시도가 드러난다. 아직 전면점화 화풍이 완성되기 전 과도기의 작품을 전시한 2층은 미술관의 다른 공간보다 자연광이 적게 비치고 어두운 느낌이다. 이러한 미술관의 구조는 김환기 작품의 정서가 한층 더 풍부하게 느껴지게 한다. 환기미술관은 아내인 김향안이 김환기의 사후 설립했는데, 미술관 곳곳에서 김환기의 미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실을 설계한 건축가인 우규승(禹圭昇, 1941~)이 미술관을 설계했는데, 김환기가 서양의 재료를 통해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것처럼 건축 또한 서구적인 수단으로 동양의 정신을 표현한다.

▲<16-Ⅸ-73_318>(1973)/ⓒ환기재단·환기미술관
▲<16-Ⅸ-73_318>(1973)/ⓒ환기재단·환기미술관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 주는 것일까.”(1970. 1. 8)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켠에 적힌 김환기의 말이다. 3층에는 김환기 그림의 정수인 1970년대 대형 전면점화 작품들이 자연광을 맞으며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에서 가장 밝고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공간은 전면점화 작품의 자연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배가시킨다. 김환기는 코튼에 유채라는 서양화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수묵화처럼 한지나 천에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번짐 효과를 이용해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냈다. 대표작 <16-IX-73 #318>(1973)은 265x209cm의 거대한 작품이지만 작품을 이루는 원은 미세한 크기를 하고 있어 세포, 혹은 작은 물방울이 떠오르게 만든다. 김환기는 점을 찍고 그 둘레의 선을 겹쳐 쌓기를 반복해 아스라하게 무한히 확장되는 형이상학적 추상공간을 창조했다. 화면에 끝없이 찍힌 점들은 조화롭게 이어지는 리듬을 만든다. 이는 깊은 심연 속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환기미술관 본관에서 나와 달관을 향하면, 김환기의 아내이자 예술가인 김향안의 작품이 전시된 <김향안, 파리의 추억>展 또한 함께 진행중이다. 김향안은 1974년 김환기 별세 이후 본격적인 회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작품은 파스텔톤의 물감을 뽀얗게 칠한 듯한 느낌으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집트>(1983), <베니스>(1987), <파리의 풍경>(1956)과 같은 작품은 실존하는 장소를 그렸지만 명확하지 않게 그려져 있어 기억 속 공간을 떠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장에는 김향안의 에세이, 김환기와 함께 나눈 편지도 함께 전시돼 있다. 김향안은 김환기의 예술적 안목과 신조를 일찍이 알아보았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덕분에 김환기는 자신의 예술세계와 창작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김환기의 작품은 절대 사진, 혹은 디지털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오직 환기미술관에서만 고요하고 깊은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광활한 캔버스에 끝없이 펼쳐지는 점을 눈으로 따라가면 점을 하나씩 그려내던 작가의 고심의 과정이 느껴지게 만든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작품을 몸소 느끼기를 바란다.

 

전시기간: 2021년 9월 28일(화) ~ 12월 31일(금)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환기미술관 

관람시간: 화~일 10:00 ~ 18:00 (입장마감 오후 5시 10분) 월요일 휴무 

관람요금: 성인 13,000원 / 학생 6,500원 / 경로 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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