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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 세계로 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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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2001년 1월 1일 서력 기원후 세 번째 천년을 맞이했다. 20세기 말 세계화는 낙관적인 현재와 미래를 상징했다. 신자유주의 역사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평화롭고 통일된 세상이 만들어지는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알링턴 펜타곤을 습격한 911 테러는 세계화의 낙관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불타는 뉴욕의 마천루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비현실적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고 복수에 성공했지만 알 카에다 집단은 사라지지 않고 IS와 같은 새로운 조직들이 생겨났다.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은 국제적으로 반미 정서를 확산하는 계기가 된 셈이었고 2021년 미국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뮤지컬 시장에도 변화가 오고 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18년간 공연하던<캣츠>가 2000년 10월 막을 내렸다. <오페라의 유령>은 아직도 브로드웨이를 지키고 있지만 20세기 말을 지배하던 유럽식 메가 뮤지컬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MTV 세대인 청년 조나단 라슨의 <렌트>가 도발적인 록 뮤지컬로 젊음을 대표했다면 만화영화로 가족 시장을 장악하던 디즈니사의 브로드웨이 등장은 미국식 메가 뮤지컬 시대를 상징했다. <미녀와 야수>에 이어 <라이온 킹>으로 브로드웨이에 전용 극장을 소유하며 디즈니가 뮤지컬 시장을 강타하자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영화사들이 황금시대 이후 잊혔던 뮤지컬 장르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욱이 1990년대 10년간 브로드웨이는 10%이상 시장규모를 키워왔기에 대기업의 뮤지컬 시장 진출은 가속화되었다. 

2001년 토니상을 휩쓴 미국산 정통 뮤지컬 코미디 <프로듀서스>까지 등장하자 시장의 기대가 한껏 치솟던 브로드웨이 21세기 첫 시즌은 테러로 인하여 관객 수나 매출이 10% 감소하였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는 테러의 충격을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다. 2002년 이후 잠시 주춤했던 브로드웨이 시장 지표는 전체적으로 코로나 19로 브로드웨이가 셧 다운되기 전 2019년까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브로드웨이 리그 소속 41개 극장의 총 관객 수는 1천 2백만명 수준에서 1천 5백만명 수준으로 약 300만명이 늘었고 매출은 6억 6천만 달러로 출발하여 2018-2019년 마지막 시즌에는 18억 2천 9백만 달러를 기록하여 11억 6천 3백만 달러가 늘어났다. 세 배 가까이 매출이 증가한 데에는 티켓 가격의 상승과 함께 장기 흥행작의 선전이 한몫했다. 2019년 시즌까지 <오페라의 유령>이 31년, 리바이벌 <시카고>가 23년, <라이온 킹>이 22년간 공연되고 있으며 <위키드>가 2003년에 시작하여 16년, <북 오브 몰몬> 이 8년, <해밀턴>이 4년째 순항중이다. 21세기 신작 중 막을 내린 장기 공연 뮤지컬은 <맘마미아!>(14년), <저지보이스>(14년), <킹키부츠>(6년), <프로듀서스>(6년) 등을 꼽을 수 있다. 

황금시대 이후 대중문화의 주류에서 멀어졌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영화, 대중음악과의 깊은 연관을 맺으며 대중문화 한복판에 다시 서기 시작했다.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리바이벌, 노스탤지어 열풍은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했다. 브로드웨이가 가진 과거 뮤지컬을 리바이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문화의 인기 콘텐츠는 뮤지컬 제작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뮤지컬 이야기의 근원이던 ‘책’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고 할리우드도 뮤지컬 장르에 관심을 보였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가 2003년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는 부쩍 가까워졌다. 21세기 뮤지컬 이야기의 대부분은 영화에서 왔다. <풀 몬티>를 시작으로 <프로듀서스>, <헤어 스프레이>, <스팸어랏>, <빌리 엘리어트>, <금발이 너무해>, <시스터 액트>, <사랑과 영혼>, <원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비틀 주스>, <미세스 다웃파이어>까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히트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도 상당히 늘어났다.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메가 뮤지컬이 대부분 영화화되었고 <맘마미아>는 영화를 속편까지 제작하며 인기를 확인했다. 브로드웨이 공연 없이 스크린으로만 제작된 <라라랜드>나 <위대한 쇼맨>과 같은 뮤지컬 영화의 인기도 높아졌다. 올해는 할리우드 최고의 뮤지컬 시즌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미 개봉된 <인 더 하이츠>, <디어 에반 핸슨>, <틱틱붐>에 이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다음 달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올드팝을 엮어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인기 역시 식을 줄 모른다. 코로나 19로 늦춰졌던 2020년 토니상 작품상 후보는 모두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작품상을 수상한 <물랑루즈>를 비롯하여 티나 터너의 전기를 다룬 <티나>, 앨러니스 모리셋의 음악으로 만든 <재그드 리틀 필> 등 세 작품이 모두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투자 작품의 20%도 흥행하지 못한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환경은 위험과 실험에 대한 투자에 안정적인 요소를 요구했다. 익숙한 이야기와 음악은 위험 분산 전략이었다. 무비컬과 주크박스의 인기, 매체와의 협업은 시장을 확대했지만 새로운 오리지널 뮤지컬 콘텐츠 생산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뮤지컬<위키드>/출처: 위키드 공식 SNS
▲뮤지컬<위키드>/출처: 위키드 공식 SNS

코미디와 주크박스의 인기와 함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뮤지컬 플레이도 늘어났다. 여성 문제, 사악함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같은 심각하고 제법 자극적인 주제를 다룬 <위키드>와 같은 작품이 호평을 받으며 롱런하자 진지한 뮤지컬들이 뒤를 이었다. 정신의학을 주제로 다뤘던 <넥스트 투 노멀>이나 청소년의 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스프링 어웨이크닝>, 게이 아버지와 레즈비언 딸 가족의 문제를 다룬 <펀 홈>, 왕따와 사회불안 장애를 가진 청소년 이야기를 다룬 <디어 에반 핸슨> 등 소수자에 대한 톨레랑스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관심은 린 마누엘 미란다의 <해밀턴>에서 정점을 맞았다. 건국 당시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해밀턴의 이야기를 통해 조지 워싱턴 등 유럽계 백인 남성 이민자들이 이루었던 미국 건국사를 아프리카계 미국인부터 히스패닉, 아시안 등 다양한 유색인종이 출연한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의 ‘멜팅 폿’ 신화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힙합과 랩을 중심으로 전개한 뮤지컬의 음악 스타일과 다인종 캐스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게임 체인저’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메시지를 뮤지컬 장르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사례가 되었다.  

21세기 브로드웨이의 새 물결에는 제2의 조나단 라슨을 꿈꾸며 기량을 연마하던 젊은 창작진의 약진이 한 축을 맡고 있다. 브로드웨이가 대형 영화사와 대규모 투자 자본 중심으로 보수적인 생산에 주력하는 동안 퍼블릭 극장을 비롯한 오프 브로드웨이와 프린지 페스티벌 등을 통해 등단한 새 얼굴들이 21세기의 브로드웨이 새 주역으로 떠올랐다. <인 더 하이츠>와 <해밀턴>을 쓰고 작곡했으며 주역까지 맡은 뮤지컬 천재 린 마누엘 미란다, 대작 <위키드>를 누르고 2003년 토니상을 휩쓸었던 도발적인 뮤지컬 <애비뉴 Q>로 주목을 받더니 몰몬교를 유쾌하게 비판한 <북 오브 몰몬>을 쓴 로버트 로페즈는 ‘렛 잇 고’의 <겨울 왕국>을 쓰며 뮤지컬 거장 대열에 올랐다. <라라랜드>와 <디어 에반 핸슨>으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제패한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 역시 주목받는 젊은 거장들이다. 

영어만이 뮤지컬의 유일한 언어라는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로 대표되던 뮤지컬 장르는 20세기 후반부터 유럽, 아시아로 수출되고 번역되면서 이제는 각 지역이 영미 라이선스 뮤지컬을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들의 언어로 오리지널 뮤지컬을 만들게 되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로 대표되는 프랑스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 국제적인 히트작을 낸 오스트리아 뮤지컬이 불어, 독일어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 우리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작품이 쓰여지고 수용되는 것 역시 세계가 만드는 뮤지컬의 주요한 흐름의 하나이다. 뮤지컬은 이제 더 이상 영미권의 독점 장르가 아닌 세계인의 보편적인 음악극으로 확대되고 있다. 왕성한 뮤지컬 생산력을 보여주는 서울은 특별히 브로드웨이가 주목하는 도시중 하나이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K-뮤지컬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참고문헌]

The Broadway Elague, Longest Running Broadway Show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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