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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소설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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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와 기자는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대중은 그들에게 객관성을 기대한다. 연구자의 논문과 기자의 기사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출처로 활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양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몇몇은 책무를 잊곤 한다. 과거 미국에서 주목을 끌었던 데이터 조작 사례인 ‘색칠한 쥐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색칠한 쥐 사건은 1974년 피부암 연구 면역학자인 윌리엄 서머린(William T. Summerlin, 1983~)이 저지른 데이터 조작 사례다. 서머린은 흰 쥐의 피부를 검게 칠해 흰쥐에 이식한 후 배양에 성공한 것처럼 가장했다. 조작을 시인한 그는 “정신적 피로와 연구 결과를 발표하라는 연구소 측의 압력, 힘든 임상과 실험의 부담이 겹쳐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서머린은 해고됐으며, 그의 상사이자 연구소장이던 저명한 면역학자 로버트 굿도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연구보다 호흡이 짧으며 마감이 촉박한 기사는 이보다 더할 것이 자명하다. 최근 기자가 경험한 적도 있다. 동기인 K기자와 함께 본교 미대 A교수와 관련한 기자회견에 갔을 때였다. 당시 홍문관(R동) 앞은 기성 언론 기자들로 붐볐다. 기자회견 시작은 10시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될 때였다. 기자와 동료는 전자출결 번호를 입력한 뒤, 노트북을 회견장 구석에 놓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며칠이 지났는데, 동료는 본인의 노트북 사진이 인터넷 기사에 등재됐다고 알렸다. 기사는 『한겨례』 칼럼 ‘옵스큐라’, 제목은 ‘수업도 중요합니다만’이었다. 하지만 게재된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기사에서는 “한 학생이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펼쳐진 그의 노트북 속에서는 온라인 강의가 한창이다”라며 사진 속 노트북을 기자회견 주최자의 것으로 소개하지만, 그 노트북은 회견에 참관한 K기자의 것이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얘기하면서 K기자는 이전에도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K기자의 경험을 종합한 것.

K기자는 독일에 단기 어학연수를 갔을 때 친구와 길을 걷던 중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남자’는 본인 소개 없이 K기자 일행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 ‘남자’를 보내려는 K기자의 친구는 어학연수에서 만난 북한 학생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북한 학생들이 외국인은 아니잖아요”라고 답변했다. 남자의 정체는 이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기사는 『연합뉴스』의 ‘김일성대 학생들의 베를리너 3주… “북측은 외국인 아니잖아요”’였으며,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실렸다고 한다. ‘“북한 학생들은 외국인이 아니잖아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의 대화에 불편함이 없었느냐는 특파원의 질문에 한 홍익대 여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위 두 사례를 살펴보건대,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특별하게 윤리적 결함을 지닌 것은 아닌 듯하며, 기성 언론에서의 오래된 병폐같다. 그들에게 ‘진짜 사실’은 자칫하면 기사를 망칠,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학보사 기자이지만 기자로서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서머린과 유사하게 정신적 피로와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내라는 언론사 측의 압력, 힘든 취재와 마땅한 인터뷰이가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회사로부터 극적이고 감동적인 기사를 써오라는 압박을 은연중 혹은 직접적으로 받았을 수도 있고, 출세를 위해, 사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기사에 극적 내용을 담았을 수 있다. 인간은 외적 혹은 내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인상적인 기사가 많다. 기사는 글의 힘을 발휘해 사람들의 웃음,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진실을 모른 채 접했으면 위 두 기사도 감동적으로 읽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수업 참석도 포기한 한 학우가 남긴 노트북’, ‘독일에서 펼쳐진 남북 화합의 장, 그리고 같은 한민족인 북한 학생과 허물없이 지내는 한 학우’. 이와 같은 이야기는 감동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라면 기자는 기사에서 이 같은 감동을 줘서는 안 된다. 기자는 더 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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