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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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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에서 안도감이란 인지 부하가 거의 걸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두뇌의 신경 회로망은 정보처리 과정에서 지름길로만 가도록 내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근거해 인지심리학자들은 정보를 처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려는 두뇌의 기제를 의미하는 ‘인지 경제성’이라든지, 인지는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취지를 가진 ‘인지 구두쇠’라는 용어를 학계 안팎으로 유통시켜왔다. 인지 철학자들은 인지과학자들과 인지심리학자들의 견해에 호응해 인지 작용을 지연시키거나 일시 중단시킴으로써 정보처리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모든 요소를 인지 부하라고 정의하고, 개체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 주변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하는 ‘지향적 자세’의 강도가 높아지면 인지에 걸리는 부하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러 맥락에서 종종 인용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특이한 자기제어 행동, 예컨대 날개가 부러진 시늉을 하는 물떼새, 뒷다리로 일어서서 여우를 빤히 바라보는 산토끼, 사자나 하이에나 앞에서 턱없이 높은 점프를 해대는 가젤의 행동이 바로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를 지닌 제법 고차적인 지향적 자세의 동물적 사례이다. 인지과학의 발견과 성과를 사람의 마음에 적용하고자 시도하는 인지비평가들은 타인을 속이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3차 지향성 이하의 상태를 인지적 안락지대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기분이 바로 인지적 안도감이다. 

안도감을 일상의 조건으로 놓고 보면 생명 유지의 기대감과 다름없을 텐데,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이 안도감이 느껴지는 시점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일 것이다. 아침에 깨어날 수 있다고 믿지 못하면 밤에 잠들 수 없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내과의는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 아무런 불안감 없이 생활하는 이유가 지금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들이 내일 아침에도 계속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자의 관점으로는,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자신이 어제 누웠던 장소와 같은 곳에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게 됨으로써, 어떻게 몸을 위로 일으켜 세워야 하는지, 어떻게 걸어서 화장실 쪽으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문고리를 잡고 돌려야 하는지, 어떻게 거울을 보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등을 즉각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안도감을 생존의 믿음으로 보는 의사의 견해와 안도감을 사유와 반성에 선재하는 직감적 이해로 보는 철학자의 견해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 일상의 순간과 관련되어 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아침에 깨어나는 안도감만큼이나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코로나라는 인지 부하는 우리에게서 인지 경제성을 박탈했고 우리의 운신의 밑천을 너무나 제한시켜 인지 구두쇠의 호사를 더는 누릴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코로나19는 진화의 자리마저 교란시켜 현생인류의 뇌에 걸린 인지 부하가 야생에서 서식하는 물떼새, 산토끼, 가젤의 뇌에 일상으로 걸려있는 인지 부하와 크게 다르지 않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예단이 길목 곳곳에서 무력해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코로나19가 마침내 끝나간다는 큰 안도감 대신, 내 스마트폰 안에 COOV(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 앱을 깔고 나의 코로나19 예방접종 내역을 입증하는 청색 카드 2장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보는 작은 안도감으로 만족하고 있다. 오늘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내일 살아남을 거라는 안도감이 더 강도 높은 안도감이고, 집에 있다는 안도감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극적인 안도감이라면, 지금 우리 손안에 주어진 작은 안도감은 강렬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코로나를 마주하며 드는 안도감이 대학의 내일을 생각하며 드는 안도감과 엇비슷한 것도 같아 마음이 더욱 황막해지는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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