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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에서 찾은 아름다움

동원 이홍근실 40주년 기념展 <2021년 가을, 그분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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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근실 입구>
▲<이홍근실 입구>

오래된 것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 필히 세월의 더께에 쌓여 층층이 더해지는 것이라면 고전의 미학이란 단순히 오래전 조상의 지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것을 공들여 보관해 온 이의 정성에서 찾은 아름다움은 나날이 빛을 받지만, 바래지 않는다. 이는 유리관 속에 박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이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욕심 내려 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40년의 세월 동안 고고히 머무는 이곳은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이홍근실 205호이다. 

여러 기증관을 지나 2층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동원(東垣) 이홍근(1900~1980) 선생의 동원 컬렉션이 전시된 205호 상설전시관이 있다. 옛 문화유산을 보존코자 했던 선생의 정성과 열의를 닮아 단정하고 소박한 전시관의 외형은 동원 선생이 생전 수집해 온 한·중·일의 도자, 서화, 금속, 조각을 비롯한 다양한 기증품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한다. 40주년 기념전 <2021년 가을, 그분을 기억하다>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홍근 선생의 기증품들을 특별 전시하고 있어, 선생의 안목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

고려시대 <새와 넝쿨무늬 청돌거울>과 <동물무늬 청동거울>, <복수쌍전이 새겨진 청동거울>을 지나 화장품 원료를 담던 고려 12~13세기 청자 합들 옆에는 도자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보물 1067호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은 조선 15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흑과 백의 적절한 조화 아래 품위를 잃지 않는 연꽃의 아름다움은 오래전 바느질하여 만든 비단 주머니로 도자기를 담은 오동나무 상자를 감싸던 선생의 딸과 며느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꿀과 참기름 등을 보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12~13세기 <청자 상감 풀꽃무늬 매병>은 매끄러운 곡선 아래 피어난 소박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매화 초옥도>
▲<매화 초옥도>

서화(書) 컬렉션은 대부분 고려와 조선시대 작품,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간간이 중국과 일본의 서화를 발견할 수 있다. 특별 전시에 포함된 <정수영 필 해산첩>은 정양사에서 바라본 내금강의 장관을 보여주며, 문인 화가 정수영(1743~1831)의 금강산에 대한 애정을 빼곡히 드러낸다. 한편, ‘겨울 산속의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이라 불리는 <매화 초옥도>는 조선 후기 중인 계급의 약재상이었던 전기(1825~1854)의 작품으로 겨울 산속 꽃피운 매화를 눈처럼 하얗게 그려내 작가의 고결함을 느낄 수 있다. 예술품을 수집할 때, 작가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던 선생의 모습과도 닮은 구석이 있어 특별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강세황(1713~ 1791)의 <박연도>는 개성 주변을 답사하다 그린 송도 기행첩 16점 중 한 점으로, 날카롭게 자리한 산 굴곡을 올곧게 헤쳐 나오는 박연폭포의 기세를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개성 출신의 동원 선생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정을 쏟았을 서화들 하나하나에는 선생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또한, 이번 특별 전시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조선 후기 문인 화가 조영석(1686~1761)의 <말 징박기>는 아픔을 호소하는 말과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지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물체를 잘 그리려면, 남의 그린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살아있는 것을 그려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이 함께 쓰여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종합물산 회사 등을 운영하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동원 선생이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품에 대한 조예를 쌓아가며 남겼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누구의 감정도 받지 않고, 내 눈으로 보고 샀다. 그래야만 감식안이 생긴다.” 

앞서 언급한 도자와 서화 컬렉션 이외에도, 고려 14세기 전반 <대방광불화엄경 제 27권>은 쪽으로 물들인 갈색 종이에 금으로 새긴 사경으로 경전의 위엄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요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40주년 기념전 <2021년 가을, 그분을 기억하다>는 제작 시기와 작가의 국적, 기법 등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64건 141점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출구 옆에는 이것들을 하나로 엮어낸 또 한 명의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것은 박제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이지만, 서둘러 나가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잠시 머물게 한다. 1980년 작고한 이홍근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들은 1981년 10월 31일 국립 중앙 박물관에 수집품들을 기증했고, 이는 처음으로 개인 기증관이 생기게 된 계기였다. 선생과 그의 가족들의 문화재와 예술품에 대한 숭고한 정신은 아름다움을 보전코자 하는 아름다움으로써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가보는 길에 마음 한구석에 슬며시 남은 그것은 쌀쌀해진 가을 날씨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데워놓는 따듯함이며 푸근함이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추위를 견뎌낼 따듯함과 겨울을 대비하는 맑고, 푸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이홍근실 내부>
▲<이홍근실 내부>

 

박치영 기자(homme623@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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