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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일상으로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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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팬데믹’이란 무려 2년간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전지구적 터널에서 벗어나 2022년 새봄맞이는 드디어 학생들과 교직원 동료들을 바라‘봄’에 대한 기대와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작하는 출구에 서있다. 아직은 방심할 수 없는 단계적 완화와 새로운 긴장의 연속이지만, 다시 뜨겁게 캠퍼스의 낭만보존, 열정불변의 설렘이 새삼스럽고도 너무 반갑다.
지난해 타는 목마름으로 오마주해 본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는 다름 아닌 ‘코로나그네’였다. - ‘한강나루 건너서 홍대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세상은 텅 비었고 거리마다 거리두기. 애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코로나그네.’ ⋯ 그러나 이제는 양성우 시인의 ‘기다림의 시(詩)’로 아련한 캠퍼스 패밀리의 상봉을 축하하고만 싶다. - ‘그대 기우는 그믐달 새벽별 사이로 바람처럼 오는가. 물결처럼 오는가. 무수한 불면의 밤, 떨어져 쌓인 흰 꽃 밟으며 오는 그대 정든 임. 그윽한 목소리로 잠든 새 깨우고, 눈물의 골짜기 가시나무 태우는 불길로 오는가. 그대 지금 어디쯤 가까이 와서 소리 없이 모닥불로 타고 있는가.’
한편, 최근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공장 가동률과 불필요한 차량 이동이 감소하면서, 지구촌 탄소 배출량이 17%나 감소했다고 한다. 앞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가 곧 탄소중립을 앞당기게 하리라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자각의 시대, 우리가 증식하고 지구를 정복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것이나, 소유하고 집착하는 대상들의 수가 불어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진보란 진실을 찾는 수단이요, 평온과 사랑과 생에 대한 외경에 눈 뜨는 방법이요, 영속적인 조화에 동참하는 길이지만, 지식의 전당인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시 거울효과와도 같이 과학적 지식은 생존에 필요한 정보에 불과하다는,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물상의 양식이며 그 본질은 인간을 다시 개혁한다는(?) 학문의 역사는 인간 관념의 진화사로서 우리의 사고 자체를 혁신하려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인류의 공생적 개성에 과연 어떤 스타일을 부여해야 할까? 지난 세기 압축성장의 역기능을 진작이라도 했었는지, 에콜로지스트들은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Dumb 하고 Dull 한 현대인의 일상, 도대체 왜 끊임없이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한 것일까? 문제는 소비의 증가 추세를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덜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의 후손을 위해 자연의 축적물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이 이외의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생태학적 리얼리즘이다.” 이는 작금의 시대정신에 조응하는 ‘인간 행동의 절제된 윤리적 양식화’라는 죽비(竹篦) 소리로도 들린다. ‘지속 가능한 포용적 성장’의 맥락적 이해란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깊은 연관 관계로 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기에 바이러스 팬데믹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급격한 환경적 변화와 생산성 한계, 인구 고령화, 도시 집중화, 출산율 저하, 경제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 등 현대 사회는 예측할 수 없는 빠른 변화와 위협요인이 내재된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따라 세계는 지구환경의 보존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기능의 보존적 개발을 위해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체제 전환과 함께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위한 적정기술, 사회-생태학적 ESG 회복탄력성 등 다차원적인 연구와 실천을 정상적인 일상회복을 위해 요구하고 있다.
非知之難也, 處知則難也 (비지지난야, 처지즉난야) - 한비자(韓非子)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알고 난 다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處知, 지식의 창의적 처리과정)가 관건인 것이다. 다시 뜨겁게 ‘와우굴기어제홍익인간(蝸牛屈起御製弘益人間)’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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