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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기쁨이야, 커다란 행복이야

이산희(국어교육17)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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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신문의 바깥에서 후배들의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일에만 익숙해져 지면 속에 들어앉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신문 지면을 채우고자 고군분투하던 때가 어느덧 희미한 추억이 되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일과 중에 시간을 내어 나의 경험과 감정들을 열심히 쓰고 그 결과물이 지면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수없이 갈고 닦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나의 상황과 고민과 감정들을 성찰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철없이 사회로 내던져진 저는 여러 방면에서 실수와 실패를 많이도 경험했습니다. 누구도 제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비웃거나 저의 탓이라고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정체 모를 수치심 같은 것을 안고서 수없이 많은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 진정한 ‘어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직접적인 경험과 진심 어린 성찰이 없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깨닫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세상은 공평하다던 오래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대신문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하던 2018년, 2019년에 제가 쓴 글들을 찾아 읽어보면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가 선명하게 보이곤 합니다. 몇 년 전의 저는 밴드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막간의 침묵이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대중가요 한 소절에 깊은 감명을 받아 가사 한 줄만으로 10장짜리 수필을 써내곤 했습니다. 참 밝고, 명랑하고, 솔직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작은 농담에도 웃음을 터뜨리곤 해서 친구들이 “산희 다 웃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얘기하자”라고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철한 사람이 되었나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물론 아니지만, 아무 고민 없이 웃고 장난치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천진난만하고 행복했던 그때의 제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행복을 얻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 <가을 아침>에서 가슴 벅차게 행복한 가을을 만들어주는 것은 효과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약수, 냉수를 찾는 아들의 게으름, 제 기능을 잃고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 등 어딘가 완벽하지 않고 불안정한 것들입니다. 서툴고 미완성이고 모난 것들이 행복한 가을의 정점을 만들어주듯, 불안하고 미숙한 저의 상황 또한 온전한 행복과 기쁨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지난 글을 되돌아보며 “이때 나 순진했구나”라고 생각하듯, 훗날 이때를 되돌아보면 불안하고 위태로웠기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이었구나, 이것도 나름의 커다란 행복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다람쥐가 묻어두고 깜박한 채 가져가지 않은 도토리에서 울창한 상수리나무가 자란다고 합니다. 저는 도토리 하나를 가슴에 안고 막 세상에 걸음마를 뗐습니다. 내 도토리가 어떤 방식으로 멋진 상수리나무를 만들어낼지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저의 행운이자 행복이라고 여기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다람쥐가 두고 간 도토리도 불안정하고 서투른 상황 중에 하나네요. 비록 멋진 성공 신화는 아니지만, 다시금 홍대신문에서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노랫말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여유를 다시 조금은 가지게 되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어 문득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독자 여러분께, 커다란 기쁨과 행복의 정점이 머지 않았다는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저마다의 행복한 이야기, 기쁨 가득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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