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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서, 정치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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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에 있어서 중립 입장이기에 한 귀로 열심히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아닌, 교수님의 이해도가 올라가는 수업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수업 흐름 상 필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어떤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의 시각에서 양 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설명하고, 학문적 관점에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 사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중 교수가 정치적 발언을 했을 때 학우들이 느낀 점이다. 대학 사회에서 정치에 관한 견해는 분분하다. 정치를 대학에서 퇴출하자는 주장도 있으며, 지식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혹은 그 중간쯤의 주장도 존재한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 그리고 그 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정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과거부터 학계와 정계의 관계를 살펴보고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학계를 수단화하다

교육기관의 정치화는 과거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예시가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국내 최초의 서원이라 평가받는 백운동서원의 설립 배경에는 ‘향촌교화(鄕村敎化)’라는 정치적 목적이 내재돼 있다. 주세붕이 풍기의 지방관으로 임명됐을 때 풍기라는 지역은 유향소, 사마소를 중심으로 지방 세력들이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지방관의 통치를 저해하고 있었다. 당시 풍기 지역의 유향소, 사마소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운동서원에서 서원의 유생 자격을 생원과 진사 같은 양반 자제들을 우선으로 선발한 것을 토대로 볼 때, 풍기 사림 세력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주세붕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서원은 이후 당쟁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유생들은 서원에 나가 학문을 연구하는 대신 붕당(朋黨)에 가담하여 당쟁에 골몰하기도 했다.

더 가까운 과거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은 본인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학계의 말을 끌어들인다. 대한민국 헌정사 희대의 사건, 사사오입 개헌에서도 이 같은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이 속한 자유당은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 203석 중 114석을 석권해 다수당이 됐다. 당해 9월 6일 무소속 의원의 자유당 가입과 무소속 의원의 도움으로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라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한다. 표결은 같은 해 11월 27일 진행됐다. 결과는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재적의원 203명 중 2/3에 미치지 못해 개헌안은 부결된다. 하지만 반전은 일어났다. 11월 28일 자유당 의원 총회는 203의 2/3미만인 135가 2/3 이상이라고 결정하고, 다음 날 국회는 부결된 개헌안을 가결로 선포한다. 자유당은 계산 근거로 수학계 권위자인 최윤식(1899~1959) 교수가 203의 2/3는 135.333의 내림인 135라고 했다는 점을 언론에 발표한다. 최윤식 교수의 제자였던 박세희(1935~) 교수에 따르면 최윤식 교수는 정치권에 이용당했다. 최윤식 교수는 당시 자유당 관계자이자 과거 본인의 제자였던 이익흥(1905~1993)과 손도심(1920~1979)이 203의 2/3가 얼마냐는 산술문제를 받았고, 사사오입을 하면 얼마인지에 대한 답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어찌 됐든 이 사건은 정치계에서 학계 권위자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지식인인 교수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학계가 정치에 놀아날 때 교수자들이 힘을 합쳐 유의미한 업적을 남긴 일도 있다. 같은 정권이 권력을 집권한 시기에 일어난 ‘대학 교수단 데모’이다. 1960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가 벌어졌으며,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한 4·19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대학 교수단도 이러한 행렬에 동참했다. 1960년 4월 25일, 전국 대학교수 대표들이 선언문을 발표하며 시위에 참여했다. 25일 오후 3시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인 27개 대학교수 258명은 ‘대통령을 위시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대법관 등은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동시에 재선거를 실시하라’는 요지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4백여 교수들은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계엄 하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했다. 4·25교수단 데모는 시민과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불러일으켜 그날 밤부터 다시 시민·학생들이 궐기했으며, 26일 또다시 대대적인 데모를 불러 마침내 이승만의 하야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교수자의 사전적 의미와 교육기관에서의 대학교수의 지위

사전적 의미에서 교수자란 학습자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 즉 전수자를 일컫는다. 이는 기술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 전반을 통칭하는 교육의 기능 하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교수자의 면모를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러닝(E-learning)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학습이 대두되며, 교육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학습 주도권의 귀속이 다양한 주체 즉, 교수자, 학습자, 운영자 등으로 분산되며, 학습 주도권의 결정요인은 다양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시한 「이러닝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정규교육기관별 이러닝도입률은 전체 96.4%였으며, 그중에서도 초등학교는 98.3%, 중학교는 95.0%, 고등학교는 94.3%이며, 4년제 대학교는 92.4%였다. 이는 교육기관별 교수자의 지위 편차를 의미하는 한편, 교수자의 ‘목소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대학교육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폴리페서의 의미와 민주화 전후 해당 단어의 용법 변화

대학교수의 지위가 점차 높아지는 현상은 비단 그 ‘목소리’의 크기에서뿐 아니라, 그것이 담아내고자 하는 ‘다양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단어는 정치를 뜻하는 ‘Politics’와 교수를 의미하는 ‘Professor’의 합성어로,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 교수의 ‘목소리’를 암시한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폴리페서의 개념은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성향에 초점을 둔 정치 지향적 교수, 둘째는 신분에 초점을 맞춰, 정치인의 지위를 겸하고 있는 교수, 마지막으로 행동에 초점을 둔,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포괄적 의미의 정치 참여적 교수이다. 해당 단어의 세분화된 의미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한편, ‘폴리페서’의 용법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그 의미가 위축됨에 따라 극명하게 나타난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변되는 ‘민주화’를 기점으로 이 같은 용법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식인의 사회참여가 장려된 한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서는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학계로부터의 인재 등용 측면에서 대학교수들을 채용하기에 이른다. 국가 주도하에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는 정부의 방향성 전반 및 정책 타당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며 ‘폴리페서’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한시킨다. 이념 및 정치 성향에 따라 해당 단어가 작동하는 원리를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게 적용하는 셈이다. 

 

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대의 법률 근거

 ‘폴리페서’의 의미가 그 성향이나 신분에 국한되지 않듯, 현대의 법률 근거는 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교수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대중들의 인식과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헌법」 제31조 4항에 따르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보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의미를 규명하며,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명시하고 있다. 이때, 초등·중등교육기관의 교원과 달리, 국가공무원에 속하지 않는 대학교수는 정치적 중립 의무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교수자 중, 이들 고등교육기관의 교원, 즉 대학교수의 ‘행동’범위를 법률로써 한정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계와 정계는 분리돼야 하는가

 

 

본교 학우들을 대상으로 ‘폴리페서’에 관한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학 수업 중 정치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56.7%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한편 학교나 교내 커뮤니티에서 시행하는 강의 평가 중 강의 중 교수의 정치적 발언 여부를 밝힌 적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86.7%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 같은 사안을 경험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교수자의 정치적 발언 여부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경향이 낮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가르치는 이가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와 함께, 강단에서의 정치적 발언은 학생의 생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견에 미루어 폴리페서 논란은 곧 교수자, 그중에서도 대학교수의 역할과 본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지는 학생 사회의 이러한 의견을 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다루고자 한양대학교 정보사회미디어학과 정준희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교수님이 생각하는 ‘폴리페서’의 정의와 대학 사회에서 폴리페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A. 폴리페서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도 불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교수에 국한한 것인지, 정치적인 꿈을 안고 대학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특정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포괄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도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단순히 정치적 발언 여부의 문제로 ‘폴리페서’라는 단어를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경우라고 본다. 해당 논란이 거세지는 이유는 대학교수의 영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권력에 진출하기 용이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Q. 실제로 강의 중 대학교수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불쾌함을 느꼈다는 학생 사회의 의견을 확인한 한편, 해당 논란이 대학 내에서 시행하는 강의 평가 등을 통해 공론화되는 경우는 비교적 저조했다. 이를 대학 내 학생과 교수 사이의 권력 격차로 빚어진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나?

A. 학생 사회가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맥락이 존재한다. 교수는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학문에 있어 더 앞서 있는 사람이고,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학생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나는 정치적 발언이 싫다’, 그렇다면 의사를 피력하면 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성적에 불이익을 있을 것 같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 같다. 이때 견해가 다르거나, 혹은 그것이 과잉되게 한 쪽으로 편향될 때, 교수와 ‘싸우지’ 못하는 이유에는 분명 권력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문사회, 사회과학의 영역은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대학 강의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정적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Q. 대학 사회에서 정치적 의견이 피력되는 양상에도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A.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강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거나,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 탈정치화된 측면이 있다. 과거, 정치적 견해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던 민주화 이전의 대학 사회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지식인이었다. 성적을 어떻게 받는지와 관계없이, 강의 중 특정한 사안에 대해 여과 없이 발언하고자 하는 대학생의 지적 지위도 자연히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비판적 견해조차 정파적 견해의 하나로 해석되는 현재에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충돌되는 방향과 동시에 그럴 바에는 아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과거와 달리 현재 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을 토론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Q.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으로 특별한 권위자를 매개로 하지 않아도, 지식 공유의 증진이 활성화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 관점과 다른 맥락의서 대학 사회에서 교수자가 맡게 될 역할과 기능에 대해 묻고 싶다.

A. 기성 권위자들을 매개로 하지 않는 것일 뿐, 권위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시대에서 다수자의 견해를 강화하는 검색 엔진이 중립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오히려 현재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권위자들이 더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투명하다는 것은 숨기는 것이 아니다.

견해가 대립되는 논쟁 상황에서, 교수자가 학생과 반대되는 견해를 가질 때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은 방식으로 불이익이나 불편함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교수자의 의무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있을 수 있음을 선보이는 것이다. 공정성의 맥락에서,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을 자신의 강의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면, 그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강의 도중 교수자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학생사회의 의견 표출이 음지에서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함은, 폴리페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방법 중 하나일지 모른다.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강단은 학생이 앉는 좌석보다 약간 위에 있고앞에 있으며, 강단 위 목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멀리 뻗어나간다. 이로 인해 반대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은 도전적이며 때로는 기이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때 해당 논란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은 투쟁과 타협, 갈등과 침묵 그 어디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는 서로가 가진 입장을 공유하며 입장 차이를 확인한다는 데에 있다. 본지가 진행한 학우 설문조사는 홍익대학교 학생 사회를 결코 대변할 수 없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정준희 교수와 대담을 나눴지만, 활자로 표기된 것은 그의 생각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는 외부의 자극이나 내면의 파동을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며, 사유하는 과정을 상기한 상태로 나와 다른 입장을 지닌 ‘권력자’와 직면해야 한다. 공론화하거나, 하지 않거나의 문제라기보다 이를 언제든 ‘의제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준비된 정도인 셈이다. 돌아오는 1학기, 당신이 만약 폴리페서를 경험한다면 적어도 지난 학기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기 전 그때보다 조금은 ‘준비된’ 사람이길 바란다.

 

[참고문헌]

윤희면,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집문당, 2004.

박세희, “최윤식 교수와 사사오입 개헌”, 월간헌정 5월호(2018): pp.90-95

 

 

박찬혁 기자(cksgur158@mail.hongik.ac.kr)

박치영 기자(homme623@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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