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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이해> 왕혜숙 교수가 추천하는 『니는 내맹쿠로 살지 마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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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다 보면 제일 어려운 주제가 있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인 성(性),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에 대한 내용은 강의자로서 조금 낯뜨거워지는 주제다. 그러다 보니 매우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조심스럽게 그리고 매우 무미건조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강단의 분위기이다. 물론 필자가 ‘옛날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최근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이 주제들을 더욱 다루기 어렵고 민감한 화두로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여검사의 미투 폭로 사건으로 한국사회 전체가 들끓고 있을 때, 여느 때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 TV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빈 그릇을 치우시던 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뱉으신 혼잣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 엉덩이는 무슨 금테 둘렀나”.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과 연대가 아닌, 겨우 엉덩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식의 비아냥과 조롱이라니!

찰나의 무심한 아주머니의 반응은 필자로 하여금 그녀의 삶을 사회학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녀는 더 폭력적인 방식의 성희롱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처음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도움을 구할 곳도, 지식도,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일상적인 폭력에 익숙해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에는 무관심하던 한국사회가 여검사에게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녀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고민해주는 것이 오히려 서운하고 섭섭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바로 이 아주머니와 같이 척박한 한국사회를 살아낸 다양한 여성들의 삶이 담겨있다. ‘사회학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대구 경북 지역의 다양한 여성들에 대한 생애사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연구 결과물을 학술적인 논의로만 끝내지 않고, 이들의 삶을 각색하여 소설화했다. “사회학이 전문가들만의 ‘가두리 잔치’가 되어선 안된다”는 학자로서의 소신 때문이다. 책의 시작 역시 학술대회의 개회사로 시작하고, 학술대회의 주제별 세션 형식으로 책 역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사회학’ 소설답게 중간중간 일반 독자에게 생소한 학술적인 개념과 용어는 물론,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진, 전공서, 문학작품, 심지어 드라마까지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지면 구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는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친밀성의 구조변동』이라는 책에서, 근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외부 세계와 분리된 사적 친밀성의 공간으로 가정이 변모한 과정을 보여준다. 즉, 일과 가정이 분리됨으로써, 가정은 부부만의 사적인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기든스가 설명하는 이러한 변화는 서구 사회의, 그리고 매우 이상화된 이야기일 뿐.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가정은 돌봄(밥)-노동(일)-에로티시즘(사랑)이 뒤엉킨 복합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밥, 일, 사랑을 둘러싼 한국의 삼대(三代) 여성들의 연대기를 다룬다. 책 제목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엄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했고, 모든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할머니-어머니-딸’의 시스템 복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를 저자는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의 주인공들은 사실 대부분 ‘여성’이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더 들어온 존재들은 이야기 속 ‘남성’들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함에도 막강한 전통적 부권을 쥐고 술과 노름, 폭력을 일삼는 할아버지, 무능한 아버지의 공백 속에서 평생 홀로 자식들 뒷바라지한 어머니를 숭고한 존재로 떠받드는 아들.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돌봄을 추구하는 남성. 자기 귀를 파달라는 회사 사장. 어찌 보면 측은하고도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무뚝뚝한 가부장이 되어버린, ‘한남’의 연대기 역시 추적해 볼 수 있다. 이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애처로운 한국사회의 남성들을 이해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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