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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찍어나간 프레임을 모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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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많은 것들이 무형의 디지털 데이터로 변해가는 요즘, 영화 제작 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CG(Computer Graphic) 기술의 발전 속에서, 손이 더 많이 가는 것이라도 그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꾸준히 사용되는 영화 기법이 있다. 바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톱 모션은 영화 촬영에서 대상을 연속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닌 촬영 대상의 움직임과 같은 변화를 단일 프레임 마다 촬영한 뒤 그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재생해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카메라를 멈추고(stop) 피사체에 변형을 가한 다음 다시 촬영해 움직임(motion)을 만들어 스톱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각 프레임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스톱모션은 연속되는 프레임들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특징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CG 기술이 없던 영화 산업 초창기, 실사 촬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한 기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을 통해 그 특유의 매력과 가능성을 살펴보자.

 

스톱모션 기술을 활용해 관절 인형인 퍼펫(puppet)의 움직임을 담아낸 애니메이션들은 섬세한 매력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는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판타스틱 Mr.폭스(Fantastic Mr.Fox)>(2009)는 원작인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의 동명 소설 속 매력적인 여우 ‘폭시’의 이야기를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유머로 담아냈다. 임신했다는 아내의 말에 농장에서 동물을 훔치던 과거에서 손을 뗀 폭시는 지역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야생의 본능을 억누르고 안정적인 가정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닭도 안 무는 여우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냐는 생각과 함께 여우로서의 자기 자신이 누군지 의문한다. 이에 그는 스스로 가난하다 느끼던 땅굴을 떠나 나무집에서의 지상 생활과 함께 계곡의 못된 농장주라 불리는 보기스, 번스, 빈의 농장에서 도둑질을 시작한다. 이에 화가 난 농장주들은 그의 집을 포함해 상관없는 다른 동물들의 숲까지 파괴하고, 동물들은 그들을 피해 숨어 들어간 땅굴에 음식과 물도 없이 갇히는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폭시는 농장주들에 맞서 동물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본능으로 인해 도둑질하는 여우와 그를 잡고자 하는 인간의 긴장감 도는 대치를 유머 있게 다루는 영화는 그 내면에 사회 속 다양한 인물에 대한 현실적인 비유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인 폭시가 남편과 아빠이기 이전 포식자인 야생 여우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며 남들에게 ‘판타스틱 Mr.폭스’로 불리기 원하는 장면은 사회 속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의 개성을 잃어간다고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스톱모션 기술을 활용해 현실과 맞닿았지만 실존하지 않는 초현실적 이야기를 다뤄 기묘함과 불안감 느끼게 한다. <더 하우스(The House)>(2022)는 하나의 집을 배경으로 하는 세 편 에피소드를 통해 ‘집’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담아낸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첫 번째 챕터 “1. 거짓의 속삭임(And heard within, a lie is spun)”은 부끄럽다 여기던 자신들의 집을 버리고 멋진 집을 통해 권위를 얻고자 한 가난한 가족의 안타까운 결말을 다룬다. 두 번째 챕터 “2.아무도 모르는 진실(Then lost is truth that can’t be won)”은 집을 팔고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개발업자 앞에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비극을 보여준다. 앞의 에피소드들이 집에 사회적 체면, 경제적 이익과 같은 부가적 가치를 투영하며 맞이한 부정적 결말을 그렸다면, 마지막 에피소드 “3.귀 기울이면 행복해요(Listen again and seek sun)”는 희망적인 새 출발로 그리는 미래를 담았다. 해수면이 올라 모두가 기존의 터전을 떠나가는 미래, 자신의 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주인공 ‘로사’는 집을 삶의 목표와 동일시하며 절대 집을 떠나지 않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집에서 현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세입자들의 도움으로 배가 된 집을 타고 마침내 기존의 집터를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영화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집’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과거에도 사회의 지위를 의미하던 집은 현대에 와 경제적 이윤과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더욱더 변질되며, 삶의 터전과 안정의 공간이라는  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작품은 집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잊어가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다 마지막 에피소드 속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집은 실질적인 건물, 혹은 그 위치나 범위가 아닌 언제든 외형은 변할 수 있지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 영화 <아노말리사(Anomalisa)> (2015)는 아동, 혹은 가족 애니메이션을 위해 많이 사용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권태를 느끼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은,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작품의 주인공 ‘마이클’은 고객서비스에 관한 저서로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실생활에서의 그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보이는데, 그에게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똑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던 마이클은 연설을 위해 출장을 간 호텔에서 유일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는 ‘리사’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리사를 운명적인 상대라 느끼지만 그것도 하룻밤일 뿐, 그녀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변해가는 모습에 결국 그녀를 떠나 지루하다 느끼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똑같게 인식하는 마이클의 모습이 진짜 질병으로 인한 것인지, 그저 마이클의 마음가짐에 따른 비유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하게 여긴 리사를 보며 마이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하나 둘 지적함에 따라 변해가는 리사의 목소리는 그의 증상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삶의 권태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각 장면을 위해 얼굴의 조각을 바꿔나가는 퍼펫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한 인형들, 그 끝없는 동일성의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마이클의 얼굴 조각 일부가 떨어지는 모습 등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에 망가진 현대인의 정신적 피폐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속 퍼펫들은 현실에 실존하는 대상이지만 그와 동시에 살아있지 않다. 인간에 의해 움직여 그 습성을 담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서 현실 속 인간의 목소리와 역할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퍼펫을 일상 속 현실과 비현실,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스톱모션 기술을 통해 담아낸 작품들은 일종의 우화(寓話)라 할 수 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보며 동화만 같은 화면 속 주인공들과 즐거움, 공포 등의 감정을 공유하며 어느새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은 어쩌면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메시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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