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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은 없다

김지선(산업디자인15)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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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년 전에 졸업한 산업디자인학과 15학번 김지선입니다. 워낙 뛰어난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이런 글로 여러분을 만나는 데 부끄러움이 들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신다면 ‘이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이어가 봅니다. 

다소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1, 2학년 때만 해도 저는 꿈이 확고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졸업 전시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며 그 꿈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산업디자인학과는 3가지 전공 중에 1가지를 선택하여 특화 분야를 만들어 나가는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3가지 전공인 제품, 운송, 공간 중 저는 도시디자인과 경관에 관심이 많았기에 공간디자인을 택했습니다.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등장하곤 하는 저명한 건축가분들을 보며 정말 멋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업계 내부를 살펴보니 디자인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격화하는 건축가가 성추행을 저질러도 피해 사실은 묵인되는 것, 노동법 보장을 외치는 행위는 디자인 업계에서 금기시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 인간이 편안함을 느끼는 휴먼스케일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점점 부를 지닌 극소수만의 특권이 되어 버린다는 점 등이 이를 가속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제 꿈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느낍니다. 제 꿈이 정말 탄탄하고 뚜렷했다면 이러한 일이 장애물로 다가왔을까요? 꿈을 위해서라면 이런 불합리함은 버틸 수 있어야 강인한 것 아닐까요? 저는 그 정도로 디자인에 큰 뜻을 두고 있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에 흔들리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현재는 원대한 꿈을 생각하기보다 이러한 혼란을 발판 삼아 궁금한 지점을 하나씩 해소해보자는 쪽으로 도시,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다양한 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의사결정권자의 감은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공공 영역의 디자인이 발전하려면, 디자이너에게 결정 권한을 줘야 하는데 이를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집행해버리곤 합니다. 디자이너는 결정권이 없기에 책임도 없고, 결국 디자인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뛰어나지 않은 감으로 만든 조형물과 설치물은 공무원 개인의 성과가 되어 세금으로 설치되고, 방치되다 철거됩니다. 물론 이를 공무원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을 성과로 증명해야 하고, 1년 치 예산에 맞게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설 자리가 너무나 좁은 현실에 신물이 나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 도시 조직 체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그렇지만 일하다 보니 현실의 벽 앞에서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흐릿한 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치판단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민하면 할수록 제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한다는 말이 크게 공감되는 시점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학부 생활을 하며 생각을 확장해가는 연습을 많이 해봤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근거를 마련하고,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멍도 많이 때려보았던 게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생각 속에서 갈팡질팡할 것 같지만, 그 과정을 묵묵히 밟아가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다는 사실입니다. 도전한 영역이 본인에게 맞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조차 소중한 배움이기에 마음껏 시도해보셨으면 합니다. 지금의 젊은 시기는 흐려졌다가 선명해졌다를 마음껏 반복해볼 수 있는 환상적인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 시기를 즐기고 나면 우리 모두 더 확신에 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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