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유와 저항을 꿈꾸는 현란한 움직임, 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시대를 반영하는 위대한 낙서, 그래피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날 그래피티는 신사 홍대 어디든 존재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곳곳에 화려한 색과 형태의 그림들이 나를 봐달라며 강력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본래 흑인문화의 한 종류로 시작한 그래피티는 현재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지역에서 등장하며, 하나의 예술로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스프레이의 색 파편들이 이리저리 튀기듯, 그래피티에 대한 잡음 또한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다. 그래피티, 그 속에 담긴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역사의 흔적을 어디 한 번 야금야금 긁어내 보자.

억압과 차별이 낳은 낙서와 예술 사이의 돌연변이, 그래피티

오늘날 주로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와도 같은 문자 혹은 그림을 뜻하는 그래피티(graffiti)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에서 유래하였다. 어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따라 그 역사를 되짚어보면 미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원시미술의 동굴벽화에까지 도달한다. 넓은 의미의 그래피티는 예술의 한 사조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법으로 해석된다. 벽면을 사물 등으로 선각하여 형태를 그려 넣거나, 벽이 긁혀 생긴 틈에 안료를 채워 넣는 등의 방법을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그래피티는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많은 벽화에 적용되어왔다.

보다 좁은 의미의 그래피티는 1970년대 초 할렘 가에서 그 출발을 알리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브롱크스(Bronx)에는 흑인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해왔다. 이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반강제적으로 자신들만의 사회·문화적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들은 1980년대 백인으로부터 행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저항, 분노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일명 ‘힙합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특유의 감성을 통해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정서적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이중 그래피티는 랩·디제잉·브레이크댄스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힙합 4대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의 그래피티는 형태에 따라 유명한 캐릭터나 사진, 인물 등을 따라 그리는 이미테이션(Imitation), 자신의 별명이나 사인(Sign)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여 그리는 태깅(Tagging),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을 은유적으로 혹은 독설, 욕설 등으로 표현하는 소셜 워드(Social Words)로 나눠볼 수 있다. 1970~80년대 당시 흑인들은 휴대가 간편한 스프레이 캔을 가지고 다니며 거리 곳곳에서 넓은 벽을 향해 그들의 불만을 현란하게 분사하였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대신 별명이나 독특한 형태의 사인을 사용했던 것이 오늘날 태깅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소셜 워드라는 형태 또한 당시 그래피티를 통해 사회적 자유를 갈망했던 흑인들의 염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주로 강렬한 색채와 힘 있는 선을 통해 사회적 흐름에 대한 저항을 특유의 유희와 함께 표현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외침은 시대적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낙서로 치부되며 불법 행위로 여겨졌다.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에 자유를 향한 그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억눌러야 했다.

난 더 이상 낙서가 아니에요. 예술로 발돋움한 그래피티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그래피티에는 한 가지가 덧붙는다. ‘아트’ 오늘날의 그래피티는 더 이상 낙서로 여겨지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고 있다. 현대미술이 그래피티에서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공간’이었다. 그래피티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과 달리 하얗게 질려버린 갤러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우리의 일상이 가득 담긴 벽에 그려져 있다. 1980년대 미국 미술 전반을 대변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은 관습화·형식화되어온 이전의 고리타분한 규범들을 깨부수고자 했다. 미술이라면 응당 갤러리에 전시되어야 한다는 규범을 과감하게 깨버린 그래피티가 이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저항과 자유를 대변하는 그래피티의 특성 또한 이를 과거의 것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열에 올리는 데 한몫했다.

특히,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과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는 당시 거리 위의 문제아, 그래피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해링은 검은 수지 잉크, 분필, 아크릴 물감과 같은 간편하고도 일상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경쾌한 색채와 독특한 속도감을 가진 그림을 그렸다. 그는 특히 이러한 아이콘화된 이미지를 통해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에이즈 교육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힘썼다. 바스키아의 경우, 어린아이의 낙서와도 같이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해 보이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집중하였다. 이들은 낙서로 치부되었던 그래피티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며 그래피티를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래피티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뱅크시(Banksy)이다. 대표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알려진 뱅크시는 그의 유명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베일에 한껏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까지 보안상의 이유로 성별은 물론 생년월일, 국적, 이름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갖은 추측이 난무한다. 그는 우리 사회 곳곳에 예고 없이 등장하며 얼굴이 아닌 그래피티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오랜 여운을 선사한다. ‘아트 테러리스트’라고도 불리는 그의 작업은 주로 기존 권위에 대항하며 정치·사회를 때론 재치 있게, 또 때로는 잔인하게 풍자하고 있다. 그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여 화염병 대신 꽃을 투척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 우스꽝스러운 핑크색 리본을 달고 날아가는 전투기의 모습 등을 벽 위에 남기며, 우리 사회에 여러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그는 약간의 유머를 가미하여 무거울 수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재치 있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되새기며 진정한 공공미술로서 그래피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진정으로 ‘공공’을 위하는 미술이 되기 위한 걸음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와 이들이 공유하는 벽을 주 무대로 하는 미술인만큼, 그래피티는 매번 사회적 논란이 잇따른다. 1970~80년대 흑인들의 그래피티는 사회적으로 큰 골칫거리였으며, 규제의 대상이었다. 거리 곳곳을 메운 저항의 목소리에 대한 단속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명분은 무분별한 그래피티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그 당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는 거리를 뒤덮은 그래피티에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당장 홍대 앞의 거리만 보더라도 그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래피티는 벤치, 놀이터 등의 공공기물은 물론이거니와, 엄연히 주인이 있는 상가 건물까지 침입해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래피티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조차도 그래피티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뉴욕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퀸즈의 파이브 포인츠(5Points)를 포함한 몇몇 건물주들은 그래피티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사람들 또한 그래피티의 자유분방한 선과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보며 규율로 가득 찬 건조한 도심 속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시대별 벽화를 보며 역사를 읽어내듯, 그래피티 또한 현란한 스프레이 질로 시대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백인 경찰들에게 쫓겨 다녀야 했지만, 흑인들은 그 공동체 내에서 함께 겪고 있는 문제를 거리로 들고 나섰다. 작가의 인종이 달라졌을지는 모르나, 뉴욕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작가들이 마이크 대신 스프레이를 들고 사회적 현실에 발언하고 있다. 이렇듯 그래피티는 사회적 메시지와 이를 통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래피티의 경우, 공공의 장소라 할 수 있는 거리의 벽을 캔버스로 이용하기 때문에 그 벽을 응시하고 경험하는 수많은 시선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며, 또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시선들과 공유하고 교감할 수 있는 정서가 내재해 있을 때 마냥 불쾌하지만은 않은, 때로는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예술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참고자료:

박지애, 「한국의 그래피티 분류와 특성연구」, 교육대학교 대학원, 2013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