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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생존주의자로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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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 세대, 헬 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무기력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의 신조어들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활기차고 능동적이어야 할 젊은 청년 세대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친 청춘들을 다루는 담론들이 전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된 자아를 찾기는커녕 세속적인 성공마저도 포기한 젊은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생존주의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이렇듯 성공이나 자아실현을 좇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존재함’, 그 자체로 만족하게 된 것에는 여러 사회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이 글에서는 생존주의 세대가 출현하게 된 사회 구조적 배경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많은 젊은이가 더 이상 원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들지 않는 것은 목표의식의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많은 한국인들은 야망이 있었고 성공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나라였다. 개인이 능력이 있고 노력이 뒤따른다면 충분히 계층 상승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러한 빠른 경제 발전의 시대는 지나갔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발전 속도는 느려졌다. 과거처럼 노력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노력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고해지면서 결국 이 노력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 뿐이라는 회의론적 가치관이 자리 잡은 것이다. 건국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평가 속에서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 이상 경제적 안정과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이들은 더 이상 무사히 인생을 보내는 것, 그 이상의 목표는 염두에 두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목표의식은 비단 경제적 차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의식은 사회정치적 영역에도 존재한다. 1980년대까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여러 독재 정권들을 거치며 민중들의 의식 속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져갔고 실제로 이 민주화라는 목표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단 민주주의가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시기가 있었으며 이는 여전히 시민들로 하여금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목표를 설정해 주는 하나의 방향키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키는 민주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소멸했고 사회정치 측면에 있어서도 젊은이들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나 목표 없이 표류하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과거 세대가 맞서 싸웠던 독재 권력처럼 타도하고 무너트려야 할 대상이 없으며 반대로 보고 배우거나 따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존재들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던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것 또한 생존주의 세대의 등장에 기여했다. 단순히 회사 내 존재했던 집단주의적 관계에 대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더 이상 젊은이들은 회사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회사의 성공이 자신을 출세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것보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대중들을 하나의 집단에 소속시켜주는 어떠한 이념을 의미한다. 예를 든다면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민족주의가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각종 ‘국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하나로 단결될 수 있었다. 학생들은 ‘국민’학교에 다니며 ‘국민’체조로 몸을 풀었고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다. 물론 90년대부터 ‘국민’이라는 프레임은 일재의 잔재라는 반일적 주장이 힘을 얻었고 ‘국민’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사라지면서 이러한 ‘국민’성은 대부분 희석되었다. 비록 그 기원에 결함이 있어 사라지기는 했으나 ‘국민’과 같은 민족주의적 키워드는 한국인들은 결속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와 유사한 예시로 반공주의가 있다. “나는 공산주의가 싫어요”라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한국의 반공주의는 오늘날에는 사실상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한국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결집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즉 젊은이들이 표류하게 된 것은 이들의 의식을 하나로 규합하고 그들을 이끌어왔던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건전한 개인주의가 온전히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져 무엇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렇듯 젊은 청년들이 야망을 잃고 생존에만 관심을 쏟게 된 배경은 단순하게 한두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으며 다수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생산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할 이들이 이렇듯 무기력해지고 안정성에만 과도하게 몰두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구조적 차원에서 단순하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더라도 청년들의 잃어버린 야망을 되찾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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