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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한인 입양인들의 아픔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그들의 아픔을 마주하다.

  ‘고아 수출국’이라는 멸시 어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가리키는 듯한 이 호칭은 바로 60년대 한국의 이명(異名)이다. 6·25 전쟁이 끝난 뒤 수많은 아이들이 홀로 남겨졌다. 가난한데다 핏줄을 중시하던 한국은 그 많은 고아들을 돌보아줄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낯선 국가로 떠나갔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도 막연히 ‘선진국에 가면 더 잘 살겠지’하는 마음으로 제 자식을 떠나보냈다. 그렇게 활성화된 입양 시장의 잔재는 2017년인 오늘날까지도 남아있고 대한민국은 해외입양 아동 수 세계 6위에 머물며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해외입양을 막연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입양된 아이들이 별문제 없이 자랄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해외로 입양된 한인들의 외침을 담은 영화를 통해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아보고자 한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Susan Brink’s Arirang)>(1991)은 고작 4살의 나이에 스웨덴으로 입양을 가게 된 한(恨) 많은 여인의 인생 이야기이다. 수잔 브링크, 한국 이름은 신유숙인 그녀의 입양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유년은 양모의 차별과 가혹한 매질, 욕설로 점철되어있다. 무책임하게 입양된 아이에게는 누구 하나 편들어주는 이 없다. 그녀는 어느 정도 자라자마자 제 어렴풋한 기억 속 ‘진짜’ 가족을 찾으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실화를 각색한 영화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낯선 땅에서 입양아가 겪게 되는 고난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영화 중반, 애정을 갈구하던 주인공은 섣불리 남자에게 의지했다가 버림받고 미혼모가 되어 방황하게 된다. 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마치 그녀의 불운한 운명이 끝없이 대물림될 것만 같은 암울함을 안겨준다.


  <피부색깔=꿀색, (Couleur de peau : Miel, Approved for Adoption)>(2012)의 주인공은 벨기에로 입양된 한인 아이 ‘융’이다. 융은 앞의 영화 주인공 수잔 브링크와 달리 정겨운 가정 속에서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융의 입양 생활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의지할 데라고는 양부모 밖에 없는 타지에서 아이는 또다시 버려질까 두려워한다. 누가 봐도 부모와 확연히 차이나는 피부색은 아이의 불안을 더욱 가중 시키며, 한편으로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버릴 수 없게 만든다. 융은 사랑받는 자식이었지만 피부색이 다른 국가에서 자라기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차별과 정체성 혼란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융이 겪는 고통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해외 입양아라면 누구나 겪게 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해외 입양 문제가 몇몇 특수한 사례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피부색깔=꿀색>스틸컷


 앞선 두 영화가 한인 입양아의 아픔과 비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 <프랑스인 김명실, winter garden>(2014)은 한인 입양인의 삶 그 자체를 담은 영화이다. 감독은 프랑스의 한 소도시에서 새로 사귄 친구 ‘세실’이 어린 시절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세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해외로 입양된 한인 입양아가 겪게 되는 고민과 갈등을 신파조로 처절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세실’의 삶을 러닝타임 내내
담담하게 비출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그녀에게 동화되고 그녀가 겪었던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외국에서는 피부색의 차이로, 그들은 어디서나 이방인이다.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17년 현재에도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의 수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경제 선진국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나라는 더 이상 그 옛날의 후진국이 아니지만 해외입양률만큼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이다. 제 핏줄을 이은 아이만을 자신의 아이로 보고 입양을 꺼리는 한국의 정서가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피를 이은 모든 아이를 제 아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의 정서로 발전해 해외로 입양가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기원해본다.

이수현 기자  ng146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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