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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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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요즘 지독하게 빠져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tvN에서 지난 2월 12일(토)부터 방영하고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이다. 1998년 대한민국이 IMF를 겪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펜싱부 소녀 ‘나희도’와 몰락한 부잣집 도련님 ‘백이진’의 청춘 로맨스를 주축으로 그들 주변인의 이야기를 그려 나가고 있다. 청춘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는 성장통과 그 시련을 이겨나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OTT 플랫폼들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요즘,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시청률 10%를 훌쩍 넘기며 많은 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매력 있는 배우들의 등장도 큰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드라마의 각본과 연출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사랑’ ‘우정’ ‘가족애’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을 녹여내 생각지도 못한 대사들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웃음을 주기도 한다. 기자는 매화마다 내용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며 드라마를 시청한다. 기자가 평소 눈물이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외환 위기가 덮치며 모두에게 어려움이 찾아온 그 시대에, 희도가 다니던 학교의 펜싱부가 사라지게 됐고 그 학교의 펜싱부 코치는 절규하는 희도에게 “네 꿈을 빼앗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펜싱을 계속하고 싶었던 희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낸다. 결국 희도에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시대가 너를 돕는다. 시대가 너를 돕는 건 네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 대사는 지금 이 시기에도 적절한 대사인 것 같다. 난데없이 발병한 코로나19로 인해 경기는 침체하고 사람들의 우울감은 커져만 갔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청년들은 방황하게 됐다. 그들은 자신이 방황하는 이유를 시대에 돌리곤 한다. 물론 이전보다 어려워진 상황에 아무리 노력해도 깨지지 않는 벽들이 있을 것이고 그 벽을 넘어가기엔 이미 너무 지쳐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내는 희도를 보며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인기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수많은 시련을 겪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김난도 작가의 유명한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생각난다. 기자는 항상 이 구절에 의문을 품었다. 왜 아프니까 청춘일까? 청춘이라고 꼭 아파야 하는 법도 없고 청춘이 아님에도 우리는 아프다. 그저 아픔의 크기를 잘 느끼지 못했거나 더 무뎌진 것일 수 있지만, 우리는 늘 아프다. 납득할만한 청춘이 아픈 이유를 꼽자면 아마 성장통 때문일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 의하면 청춘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 도전하는 법도, 포기하는 법도, 휘어지는 법도, 부러지는 법도 배우며 상처 나고 아물어간다. 이렇게 아파하는 청춘들에게 이 드라마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드라마의 대사 중 기자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위로는, 그 어떤 멋진 말들로 치장한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한마디였다. 희도가 펜싱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논란이 생기고 온 국민의 총알받이가 됐을 때,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모르는 아저씨들이 위로를 툭 건넨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어,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지? 나희도 선수, 어제 경기 정말 멋졌어. 금메달 축하해! 얼마나 힘들었어, 남몰래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아팠겠어.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우리 한국 펜싱 잘 부탁해”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봐도 볼 때마다 기자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위로라는 것을 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청춘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독자들에게, 드라마 속 대사를 빌려 위로를 전하고 싶다.

“힘내, 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린 과연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되는 세상을 우리는 아직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 최선은 다해보자. 다만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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