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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으로 정의에 다가가다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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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미스터리한 음악, 그 속의 날카로운 눈빛.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1992~)의 진정한 팬이라면 더욱 익숙하게 그려질 누군가가 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에 ‘그’만 등장하면 화면 속 분위기도 고조된다. 한국의 프로파일링을 언급하려면 빠뜨릴 수 없는, 표창원 소장을 만나보았다.

 

Q. 1세대 프로파일러이자 국내 범죄심리학 전문가로서, 경찰, 교수, 작가, 국회의원 등의 다양한 이력으로 관련 분야의 저변을 넓혀온 바 있다. 최근에는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2020~) 등 방송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간의 방대한 이력 중 스스로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경찰관이다. 물론 당시엔 다른 이들이 잘 알아주지 않기에, 큰 조직 내 일원이기에 느끼게 되었던 답답함이나 억울함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나에게 가장 본질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나 인식들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직 맡은 사건의 진실만을 탐구하면 되니까. 그때 그 모습, 그 초심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로부터 비롯한 힘과 역량, 소양, 그때 생겼던 바람들이 나중에 좀 더 큰 사회에 영향 끼칠 수 있는 모습으로 발전했을 뿐이고, 원래의 맹아, 프로토타입(Prototype)은 역시 경찰관이었다.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Q. 과거 담당했던 많은 사건들 중, 유독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A.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은 ‘전부 다’이다. 왜냐면 모든 사건들의 피해자, 유가족 분들께는 그 사건 하나가 전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끔찍한, 막았어야 했던, 있어선 안되는 사건이니까. 제3자의 입장에서 이를 비교하는 것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왜 사람이 그런 짓을 해야만 할까’가 요점이다. 자연재해나 안타까운 사고들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한 일은 아니지만, 범죄는 의도적인 것이지 않은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그런 잔혹한 행동을 했다는 면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차이가 없다. 물론 범죄자가 전적인 사법 책임은 다 져야겠지만, 우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 왔던 주변인들의 반응, 사회의 처우, 가정에서 겪었을 고통들 등의 것들을 반드시 살펴보고,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를 몰랐던 이전보단 알게 된 후에 좀 더 나아진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꽤 오랜 기간 경찰대 교수로 근무한 바 있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경찰대학에서는 물론 범죄 수사나 범죄 심리, 프로파일링 등의 기술적, 기법적 교육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가급적 그 이면의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원죄의식, 즉 우리가 더 제대로 경찰 활동을 잘했으면 피해자들이 이런 피해를 겪지 않으셨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학생들과 현장도 같이 갔다. 언론 보도는 주로 범죄자에게 집중해서 그가 얼마나 나쁘고 괴물스러운지를 비춘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하려고 했다. 이 피해자는 전혀 이런 공격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 유가족들이 겪고 계신 아픔, 슬픔들을 공감하자는 것을 많이 강조했다. 더불어 경찰이라는 업무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갈등 요소들을 공감할 수 있게끔 얘기했던 것 같다.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Q.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뿐만 아니라 경찰청 제도개선기획단 연구관, 경찰청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 등 여러 연구소 및 학회에서 활동했다. 국내 학회 및 모임에서 스스로 맡았던 주요 역할이나 주로 내던 목소리는 어떤 것이었나?
A. 국내 대규모의 권위 있는 학회에서는 도전적인 비판자 역할을 많이 했다. 특히 검찰, 법조 중심의 형사사법과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현장 경찰 활동의 중요성, 피해자 중심의 시각들을 강조했던 것 같다. 다만 이렇게 학회에서 토론을 진행할 때마다 기존 교수님들로부터 ‘위험하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동 대상 성폭행 범죄의 형량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살인사건의 최저형량이 징역 5년인데, 우리 법상 징역 3년 이하일 때는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이때 감형이란 제도가 있다 보니, 살인죄도 최저형량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감형을 받으면 징역 2년 6개월, 그럼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아동 대상 성폭행은 영혼을 파괴하는, 있어서는 안되는 범죄고, 그 당시만 해도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감형, 집행유예로 처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감형을 해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도록 형량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출처: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Q. 2016년도에는 제20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청/더불어민주당)으로 당선된 바 있다. 의원 활동 전후의 소감이 궁금하다.
A. 4년간의 활동을 통해서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다. 다만 사실 한계를 많이 느꼈다. 내가 꼭 필요하다고 느낀 법안들을 아무리 보좌진들과 바닥부터 시작해 조사·연구하고 기존 법제, 외국 법제와도 비교해 보고, 또 해당 부처 실무자들과 회의해 현실적 타당성도 담보해 내고, 국회 입법조사처랑 협의하는 등, 여러 과정을 통해 발의를 해도 우리 당에서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고 해당 상임위에 상정도 되질 않았다. 여야는 정쟁에 휩싸여 서로가 공격하고 비난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 국회는 툭하면 파행됐다. 그 속의 나 스스로는 계속 한편의 정치적 도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과정을 겪으며 재선, 3선을 하고 당내에서도 힘을 가진다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을 당의 중점법안으로 삼아 통과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선, 그 과정에서 결국 나도 그러한 정치 현실에 적응하고 변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 중에도 처음 정치를 시작할 당시엔 나보다 더 사회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바쳤던 분들도 있는데 말이다. 결국 정치가 나에게 맞는 일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4년간의 경험은 무척 소중했고, 감사했고, 특권이었다고 생각한다. 권한과 힘의 특권이 아니라, 정말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 즉 법을 심의하거나 관련 부처 장차관들에게 질의할 수 있는 일, 그것이 얼마나 특권인가. 이 일을 통해서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를 겪어볼 수 있었고,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에 감사하게 느끼고 있다.

Q. 과거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한다. 처음 경찰관으로 진로를 정하고, 경찰대 입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장래 직업으로 경찰관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고3 수험생으로 학력고사 준비를 한창 해야 할 초가을에, 손가락 3개를 다치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꽤 여러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했는데,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고 당시엔 건강보험도 잘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확히는 몰라도 많은 돈이 들것이라는 생각에 부모님께 죄송했다. 어떻게 이 돈을 갚아야 할까 알아보다가, 대학 등록금이라도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어 돈이 안 드는 대학을 찾아봤다. 사관학교는 그 규율과 엄격성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고, 그때 경찰 대학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그 팸플릿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뛰었다. 학교의 모토가 ‘조국, 정의, 명예’다. 모토가 표지에 딱 박힌 채로, 첫 장엔 캠프파이어 장면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셜록 홈즈』에 푹 빠져 있었기에, 경찰대학이 그 꿈을 실현해 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전을 했고, 다행스럽게 합격을 했다. 그 후엔 졸업 후 경찰관이 된다는 전제가 생기니 경찰대학 4년 동안 더욱 경찰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소명의식이 길러지게 된 것 같다.

Q. 현장 일선에서 수사를 펼치고자 경찰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 혹은 법학 및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직업(Occupation)과 소명(Calling)에는 차이가 있다. 직업은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여러 직업 중 어떤 직업이 더 페이가 좋은가, 처우가 좋은가, 전망이 더 좋은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소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가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Calling’을 받는 것이다. 숙명 같은 것이고,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나 또한 이 길을 스스로 고른 게 아니라 나의 인생의 역경 중에 끌려 들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이 직업은 ‘비교할’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것이고, 정의에 대한 것이기에, 이해관계와 계산이 들어가선 안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분야를 택하고 싶은 학생분들께는, 나중에 혹시 비교적 사회적 처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대우나 존중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꼭 점검해 보길 부탁드리고 싶다. 혹 안정적이라거나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는 등의 이유로 선택하게 된다면, 장담컨대 나중에 실망과 불만, 좌절을 느끼실 가능성이 크다. 현실은 영화, 드라마와 다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부조리 속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혹시 본인이 힘들고 좌절스러울 때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을까’라며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다른 길을 택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다른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꼭 꿈을 이루길 기원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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