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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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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셌던 지난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씩 외투가 얇아지고 있는 지금, 이번 ‘박물관을 가다’에서 소개할 작품은 박생광의 <누드>이다. 그림 중앙에는 얇은 선묘로 묘사된 누워있는 두 여인의 모습과 활짝 만개한 수선화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또한 화면 사이에 담묵으로 옅게 흐드러진 붓질도 보인다. 그러나 홍익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누드>는 박생광 작품의 대표적인 강한 필치와 원색의 색상과는 다른 결을 보이고 있다.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난 내고(乃古) 박생광은 1920년 그가 다니던 농업학교 일본인 미술선생의 권유로 교토에 있는 니찌가와(立川栖雲) 미술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는 1923년에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전통 일본화 기법과 서구적 표현이 혼합된 신일본화를 연마했다. 일본에서 생활을 하던 박생광은 1937년 부모님의 권유로 가정을 이루고 1944년 말경 귀국하였지만, 해방 이후 한국화단 내 일본식 배척운동이 일어나며 60년대까지 자유롭게 작업 생활을 펼치지 못하였다. 작품 공백 기간 이후 50년대 후반쯤부터 한국화단 내 채색화에 대한 경직된 통념이 조금씩 와해 되기 시작하였고, 1967년에 이르러 작가 천경자의 권유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출강하게 되면서부터 활발한 작품활동과 독특한 화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그는 좌절과 방황의 시기를 지나 70년대 후반부터 불교적 성향과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한 강렬한 원색의 화풍을 정립하였다. 

박생광의 초기 화풍은 그가 일본에서 그림을 수학하며, 일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비평가들은 박생광 작품의 이러한 왜색 비판이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작용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적(赤), 황(黃), 녹(綠), 청색(靑色)의 주요 색상과 후기 작품에 나타나는 주황색 선은 단청의 전통 색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일본화의 섬약한 선에서 벗어나고자 강한 농묵의 수묵화를 제작하였다. 식민지 교육의 문화적 위기를 겪으며 왜색 화가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한국화의 뚜렷한 주제의식을 위해 한국의 전통적 소재나 토착적인 무속, 역사적 인물을 통해 한국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 채색기법에 현대적 조형성을 결합하며 독자적인 채색화의 입지를 쌓은 박생광은 국제적 사조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일본유학시절에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고, 소재 선택에 있어 양화적인 꽃과 화분, 과일 도자기 등을 기하학적인 화면 분할로 구성하기도 하였다. 1957년에 제작된 <누드>는 그리 크지 않은 작품으로 간결한 선묘를 이용하여 여인과 꽃을 그렸다. 척색(斥色)운동과 해방 전 일본화풍에 영향을 받았던 채색화 계열 작가들은 몰선채화(沒線彩畵)의 도안풍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수묵중심의 선묘주의를 지향하였고,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해보아 박생광 또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선묘 중심의 수묵화풍을 그렸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의 나르시시즘을 상징하는 수선화는 추위를 잘 견디는 식물로 3, 4월에 꽃을 피운다. 혹독하고 추운 겨울을 지나 꽃을 피우는 수선화같이 필자는 시대적 조류와 문화적 정체성 혼란 속 그가 그렸던 선묘 작품으로 당시 작가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조심히 숙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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