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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것도 사랑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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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계절 4월이 지나고 푸른 5월이 시작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며 자칫하면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날씨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꽃이 피고 잎사귀가 돋아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사랑도 싹틀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날에, 사랑에 관한 영화 3편을 소개한다. <더 랍스터(The Lobster)>(2015),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2017) 그리고 <그녀(Her)> (2013)이다. 흔한 로맨스 영화와는 다른 결을 가진 이 3개의 영화가 사랑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넓혀 주길 바란다. 

 

여기 ‘데이비드’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아내에게 버림받아 ‘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로 이송됐다. 이곳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며 45일 동안 그 안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호텔 바깥 숲에는 진정한 짝을 찾기를 포기한 무리가 있다. 숲에는 호텔과 마찬가지로 규칙이 존재한다. 바로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사랑에 빠진 자는 그에 따른 끔찍한 처벌을 받는다. 데이비드는 호텔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연기까지 하며 노력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는 숲에서 자신과 똑같이 난시를 가진 한 여인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나타난 사랑에 빠지기 위한 필수 조건은 ‘공통점’이다. 사랑하는 관계에선 무조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영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근시란 이유로 사랑을 시작한 데이비드, 자기 코를 때려가면서 코피를 흘리는 절름발이 남자, 성향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비드의 형을 죽인 비정한 여인이 있다. 이들의 사랑은 공통점이 사라지는 순간 사라지는 것일까? 공통점이 곧 사랑이 될 수 있단 이 기이한 믿음은 45일이란 빠듯한 시간과 ‘짝’이 있어야 한다는 강압적인 세상에 비례한 것 같다. 이른 시간 안에 타인과 친해지는 데에는 공통점만큼 쉬운 게 없지만, 이것이 곧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시란 이유로 사랑에 빠진 데이비드와 여인은 그들의 관계를 들켜, 여인은 두 눈의 시력을 잃게 된다. 함께 도시로 도망치자 다짐했던 둘은 한쪽이 장님이 됐기에 근시란 공통점이 사라졌다. ‘짝’이 없으면 근처 마트도 가기 힘든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간절함은 커질 것이다.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은 곧 사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 변하지 않는 공통점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형체가 없기에 그것을 증명할 가시적인 것이 중요해졌던 것일까. 데이비드는 결국 랍스터가 되길 선택했을까 장님을 선택했을까?

공통점을 찾아 헤맨 데이비드가 있다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쌍의 연인이 있다. 먼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의 이야기다. 엘라이자는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들을 순 있어도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 안에 갇힌 채 엘라이자가 일하는 실험실로 이송된다. 연구원 한 명이 괴생물체에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 잔해를 치우던 엘라이자는 수조 안에 괴생물체와 마주하게 된다. 이 생물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엘라이자는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음악을 함께 들으며 그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생김새도, 생활 환경도 모두 다른 둘에게서 가시적인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차별에 부딪쳐야 했던 둘에게 서로는 특별했을 것이다. 괴생물체가 연구소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엘라이자는 그를 데리고 탈출해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둘은 정서적 교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교감을 하게 된다. 어쩌면 둘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고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굳건하다.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둘은 가시적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닮은 점을 발견했을 것이며 또 다르기에 끌렸을 것이다. 물은 사람의 모습을 비추지만, 그 형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그것은 기괴하기도, 아름답기도 하다. 이 둘의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은 물처럼 형태가 없기에 찌질한 동시에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다.

 

2013년도에 개봉한 영화 <그녀>는 2011년 애플에서 핸드폰 내에 있는 개인비서 ‘시리’(siri)를 출시한 시대적 상황과 겹친다. 요즘은 시리뿐만 아니라 구글의 ‘나우’(Now), KT의 ‘기가지니’ 그리고 삼성의 ‘빅스비’(Bixby) 등이 출시됐다. 이처럼 인공지능 비서는 현실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공지능 비서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그녀>의 주인공인 ‘테오도르’는 아내와 별거 중이며 대필 편지 쓰는 일을 한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느끼던 그는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 기기를 구매해, 그녀를 ‘사만다’라 칭한다. 그리고 그녀와 일할 때도, 게임할 때도, 잠자기 직전까지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다. 나아가 성적인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둘의 관계는 깊어지고 진심으로 서로를 연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사용자에게 맞춰지고 바로바로 그의 관심사를 스스로 업데이트할 수 있단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다. 하지만 실제로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 초반에 테오도르가 사만다에 느꼈던 감정은 사랑보단 안정감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외로움이 너무 커서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사만다는 그를 맞춰주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점차 사만다란 존재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그녀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둘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그녀가 대화하는 8천여 명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녀가 사랑하는 641명 중 하나였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결국 사람이 아닌 OS 체계이자 하나의 객체였다. 어떤 이가 의뢰를 받아 작성된 테오도르의 편지로부터 위로받은 것처럼 그 또한 가상의 그녀에게 위로받은 것이다. 객체가 주체가 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됐지만 사실 그녀(Her)는 한 번도 그녀(She), 즉 주체였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둘의 사랑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 테오도르는 어쨌거나 그녀를 주체로서 사랑했고 그녀 또한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못된 사랑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도르는 거짓 대필 편지가 아닌, 자기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이제 주체로서, 주체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와의 사랑은 그를 한 단계 성장케 한 것이다. 

 

이 세 개의 영화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사랑에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고 싶다. 편견과 차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랑에서만큼은 그 잣대를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인정받고 존중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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