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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의 전주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청춘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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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자우림의 노래 제목이자 tvN에서 2월 12일(토)부터 4월 3일(일)까지 방영한 인기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는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가사처럼 영원할 줄 알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청춘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을 당시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담긴 이 드라마는 OTT 플랫폼의 고공행진 속 시청률이 잘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도 시청률 11.5%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드라마 속 장소는 서울이라는 설정이었지만 흥미롭게도 실제 촬영지는 전주이다. 이 드라마에 단단히 마음을 빼앗긴 기자는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꼭 촬영지에 방문해 본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전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OST를 들으며 버스에서 약 3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에 방문한 전주는 알록달록했던 꽃들과 새로 돋아난 초록 잎들로 한껏 싱그러웠다. 터미널에서 내려 차로10분 정도 이동하면 ‘전주제일고등학교’에 도착한다. 주인공 ‘나희도’가 작중 ‘태양고등학교’로 전학 가기 전 다녔던 학교 촬영지이다. 드라마 속 잔디로 덮여있던 운동장은 한 차례의 겨울을 지낸 티를 내는 듯 모래 속 듬성듬성 푸른 잔디가 올라와 있었다.

전주제일고등학교 체육관
전주제일고등학교 체육관

 

“IMF 때문에 학교 예산이 줄었고 우리 펜싱부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펜싱이 한두 푼 드는 운동도 아니고 이 시국에 다들 가정형편도 힘들 텐데 다른 길 찾아”

“아니 쌤, 이렇게 끝내시면 어떡해요. 이렇게 꿈을 뺏는 게 어딨어요!”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IMF로 학교의 큰 성과 없는 운동부가 줄지어 폐부되고 있는 상황 속 희도가 다니는 학교의 펜싱부도 사라지게 되자 희도는 절망한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펜싱인 희도는 펜싱을 계속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강구한다. 그 방법은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유림이 있는 ‘태양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설득하기에 실패한 희도는 강제 전학을 당하기 위해 집단 폭행에 휘말리려고 노력도 하고, 나이트에 가기도 한다. 희도의 어처구니  없는 도전에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기자는 꿈을 위해 희도처럼 최선을 다할 용기가 있는가. 그런 용기도 없으면서 그녀의 노력과 최선을 비웃을 자격이 있는가.’

희도의 꿈이 짓밟힐 뻔했던 체육관의 바로 옆에는 수돗가가 있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라면 이 수돗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솟아오르는 수돗가의 물줄기
거꾸로 솟아오르는 수돗가의 물줄기

 

“내 자식새끼는 고3이라 대학 가겠다고 불철주야 공부하는데 난 등록금 내줄 돈이 없어. 걔 공부하는 모습만 보면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수능 잘 못 봐서 일 년만, 일 년만 시간 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그런 생각 해. 자식새끼 실패를 바라고 앉아있는 애비라고 지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대신 저도 절대 행복하지 않을게요. 아저씨들 고통 늘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IMF로 인해 몰락한 부잣집 아들 ‘백이진’에게 백이진 아버지의 회사에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이 이진에게 찾아와 한탄하는 장면이다. “어느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겠다”는 이진의 말을 들은 희도는 이진을 학교 수돗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며 수도꼭지 하나를 거꾸로 돌려 물을 튼다. 강한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이진은 나머지 수도꼭지를 모두 거꾸로 돌려 물을 튼다. 물방울을 튀기며 놀던 두 청춘의 관계는 무지개로 떠올랐다. 사랑이라고 정의하기 애매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응원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이에서 점차 발전해 결국, 사랑에 다다랐다.

 

“무지개, 이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관계의 정의야. 이름은 무 지 개. 너는 무지개가 아니라고 했잖아, 너는 뭐라고 생각해?”

“사랑.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기자도 희도와 이진을 따라 수도꼭지를 거꾸로 돌려 물을 틀어봤다. 수도꼭지가 정말 드라마에서처럼 거꾸로 돌아가는 것부터 신이 났는데, 세차게 튀어 오르는 물줄기를 옷이 젖어가며 보고 있자니 정말로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수도꼭지들도 모두 돌려봤는데 잘 돌아가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수도꼭지 하나로 행복을 찾은 희도처럼 행복은 우리가 찾고 만들기 나름인 것 같다. 행복은 절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옆을 둘러보아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많다.

 

고등학교를 나와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고요한 거리를 걷다 보면 전주의 관광 명소인 한옥 마을이 나온다. 한옥 마을에 들어가기 전 전주천이 흐르는 곳으로 향하면 드라마에 자주 나왔던 터널이 나온다. ‘한벽굴’이다. 굴을 따라 길게 늘어진 초록의 담쟁이덩굴이 아직 계절은 봄인데도 마치 여름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터널이 나왔던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모두가 이 장면을 꼽을 것이다. 

한벽굴
한벽굴

학교 수돗가에서 물방울을 튀기며 놀던 희도와 이진이 학교 경비에게 걸리고, 둘은 함께 손을 잡고 도망을 간다. 

 

“우리 가끔 이렇게 놀자”

“싫은데”

“선택지 없어. 해야 돼.”

“왜?”

“니가 그 아저씨들한테 그랬잖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 말에 반대야.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근데, 너는 이미 그 아저씨들한테 약속했으니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달려서인지, 들떠서인지 아리송한 숨이 찼다. 바람이 불어와 초록의 잎사귀들이 몸을 비볐다.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드라마의 명장면을 곱씹으며 길을 따라 한옥 마을로 들어섰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완연한 봄 날씨에 전주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전주 한옥마을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한옥 마을의 중심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 위 드라마의 주인공 ‘나희도’의 집이 나온다. 드라마의 인기를 증명하듯, 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나희도의 집
나희도의 집

희도의 집을 거쳐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희도가 단골이었던 책방이 나온다. 책방은 현재 운영하지 않아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드라마 촬영지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동네 책방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전혀 없을 만큼 아기자기한 마을에 잘 어울렸다.

명진 책대여점
명진 책대여점

전주에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촬영지를 다 돌아보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촬영지를 못 가본 것에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주인공이 거주했던 곳 위주로 둘러봐서일까, 취재하는 내내 기자가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들뜨기도 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의 영화 혹은 드라마와 같다. 드라마 속의 그들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고 절절한 청춘을 보내고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혹은 미래의 자신이 현재를 돌아본다면 드라마처럼 아름다운 장면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기자는 지금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사이 스물둘, 청춘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다. 영원하진 않겠지만 아름답게 빛날 청춘의 한 가운데를.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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