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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그려낸 인류와 문명에 대한 고찰

<Andreas Gursky 안드레아스 거스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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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장 모습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시장 모습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포착한다. 이는 붓과 물감 등을 이용해 작가의 의도를 전하는 그림과 차이가 있다. 오늘날에는 사진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하여 작가의 의도를 전하면서 사진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사진으로 재현되는 현대 문명은 어떠할까? 이번 전시의 작가인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b. 1955~)는 원거리에서 촬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편집해 새로운 장면으로 구축하여 만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순수한 조형 요소로 표현하는 추상 회화나 단순함을 통해 미(美)를 드러내는 미니멀리즘 등을 작품에 참조하는 등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사진을 회화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전시는 거스키의 인류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인다. 거스키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 공장, 아파트, 증권거래소와 같은 장소들을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
▲<파리, 몽파르나스>(1993)

전시실에 들어서면 거스키의 대표작 <파리, 몽파르나스>(1993)를 볼 수 있다.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포착한 것으로,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하였다. 이미지를 이어 붙이고, 디지털 데이터를 조작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소실점을 제거해 모든 창문의 크기가 일정하게 보이도록 연출했다. 건축물 내부의 디테일을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연속적이고 일정한 방들의 겉모습은 우리에게 현기증과 함께 오싹함을 준다. 현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현실과 괴리가 느껴지는 이 작품은 현대적인 건물의 균일한 격자구조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Ⅲ>(2009)
▲<시카고 선물거래소Ⅲ>(2009)

<시카고 선물거래소Ⅲ>(2009)은 여러 이미지를 이어 붙여 원근법을 없애고, 팔각형의 중앙 공간을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으로 화면을 채운 작품이다. 선물거래소의 심장부에서는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장면을 보여준다. 가장자리의 좌석들이 가운데의 팔각형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킨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시장의 조명과 어우러져 어떤 사람의 형태가 나타난다. 그 형태는 깊이 볼수록 되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라져가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작가는 시대에 응답하는 작품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거스키의 신작도 ‘코로나 시대’를 의미하고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거스키가 공개한 신작 2점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 코스 중 하나를 다룬 <스트레이프>(2022)와 뒤셀도르프 근처의 라인강변 목초지에서 얼음 위의 군중들의 모습을 담은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이다. <스트레이프>는 코스 활강로의 엄청난 경사를 깊이감 없는 평면으로 보여준다. 삼차원의 아찔한 절벽을 마치 이차원 단면으로 보여주어 풍경을 왜곡시킨 자신만의 뜻을 펼친 그림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스크린의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된 선수의 모습에서 직접적인 경험과 가상 공간 속 복제된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실제의 경험이 사진을 복제되는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이 사라지면서 서로 다른 두 차원 간의 모호함이 느껴진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 놓인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군중을 직접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군중과 마스크를 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리두기로 인해 분산된 인파의 모습은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며, 규범에 얽매여 있는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인다. <파리, 몽파르나스>나 <시카고 선물거래소Ⅲ>은 숨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람 간에 일정한 간격을 벌리면서 한산한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문명의 복잡한 면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빡빡한 삶이 사라진 사람들의 일상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스키의 작품은 거대함과 그 세부에 나타난 인간과 현대 사회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과거, 인류는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는 대상을 두려워했지만, 현대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급격한 변화, 자본주의, 권력, 글로벌리즘 등으로 변화했다. 현대식 공장, 증권거래소, 대형 건물 등을 촬영한 거스키의 사진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건축적 구조는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을 상징한다. 이를 마주한 관객은 작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인간의 모습에서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우혜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은 “거스키의 작품은 표현 방법과 구성만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중요하다”며 “현대 문명이 이룩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인류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통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현대 문명의 변화를 고찰하고 거스키가 바라보는 세계를 경험해보면 어떨까?

 

전시기간: 2022년 3월 31일(목) ~ 2022년 8월 14일(일)
전시장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7전시실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성인(만 19세~64세): 17,000원
학생(만7~18세), 시니어(만 65세 이상): 13,000원
국가유공자, 장애인(보호자 1명 포함), 어린이 (만 3~6세): 10,000원
36개월 미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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