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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다양성의 상징이 되다

물과 빛 그리고 공기가 빚어내는 신의 예술,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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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레 소나기가 우수수 쏟아진다. 미처 비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허겁지겁 건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식물들은 마른 목을 축이며 더욱 푸르게 빛난다. 한바탕 비가 내리자 이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하늘을 수놓는다. 물방울과 빛이 창조해내는 무지개의 웅장함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오묘하고 다채로운 색의향연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무지개에 다른 색을 첨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던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무지개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상 현상이다. 자연이 빚어내는 예술인 무지개는 때로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때로는 다양성의 상징으로 우리의 삶 속 깊이 자리 잡았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천상의 이미지로 희망을 노래하는 무지개의 매력 속에 흠뻑 빠져보자.


‘하늘과 땅의 징검다리 : 무지개’


 고대인들은 무지개란 곧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나운 폭풍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자비로운 신이 있다는 표시로 여겨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아의 방주’이야기 이다. 『구약성서』에서 무지개는 신이 더 이상 홍수로 인류와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등장한다. (『창세기』 9:13) 또한 무지개는 땅과 하늘의 경계에 걸쳐 나타난다는 특성 때문에, 신과 인간의 교류를 의미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 ‘이리스(Iris)‘는 무지개를 상징하는 신이었다. 그녀는 천지(天地)를 왕복하며 신들의 사자(使者) 역할을 하였으며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처럼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무지개를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쓰는 통로라고 보았으며, 브라질 원주민인 움반다(Umbanda)족과 칸돔블레(Condomble)족 또한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보았다. 우리나라의 신화 속 무지개 또한 종종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진지왕은 도화(桃花)라는 유부녀를 사랑했지만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도화에게 거절당한다. 결국 왕은 그녀를 마음에 담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천상에서도 도화를 잊지 못해 무지개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나아가 요즘도 우리는 종종죽음을 말할 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는 무지개의 관념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들의 전령 이리스루카 조르다노, 1686년, 메디치-리카르디 궁의 벽화, 피렌체
신들의 전령 이리스루카 조르다노, 1686년, 메디치-리카르디 궁의 벽화, 피렌체

무지개는 정말 7가지 색일까?

  흔히 무지개를 가리켜 ‘일곱 빛깔 무지개’라고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무지개’를 그릴 때면 자연스럽게 7개의 색연필을 꺼내들곤 했다. 이처럼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7색의 무지개를 처음 규정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2~ 1727)이다. 그는 프리즘을 이용해 빛의 스펙트럼을 분리하였고, 이를 7가지 색으로 표현하였다. 이후 뉴턴이 나눈 7가지의 기준은 무지개의 색깔로 굳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빛의 스펙트럼을 분리해보면 100가지 이상의 색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뉴턴은 그 수많은 색깔을 단순히 7가지로 한정지은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세 유럽기독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뉴턴이 성경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숫자인 ‘7’을 사용하였다는 주장이다.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문화권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영미권에서는 무지개를 기존의 7가지 색에서 ‘남색’을 제외한 6가지 색으로 보며, 민족에 따라 이를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색으로 보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흔히 무지개를 오색(五色)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오색은 글자그대로 다섯 가지 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오색은 음양오행설에 근거하여,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색을 의미하는것이다.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새겨보자. 선녀가 타고 온 무지개는 ‘칠색영롱’한 무지개가 아니었다. ‘오색영롱’한 무지개였다.


무지개, 다양성의 상징이 되다.


▲무지개 깃발의 변천사
 2015년 6월 26일(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과 백악관, 심지어는 페이스북(Facebook)의 프로필 사진까지 전 세계에서 무지개가 찬란하게 빛났다. 이 날 세계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인 것은 바로 미국 대법원의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이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그런데 대체 왜, 사람들은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축하하는 일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일까? 레인보우 플래그(Rainbow Flag)는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로, 1978년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였던 길버트 베이커(GilbertBaker, 1951~2017)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다. 베이커는 옷이나 로고에서는 찾을 수 없는 깃발만의 ‘선언하는 힘’에 주목했다. 그는 굳이 ‘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레인보우 플래그를 제작했다. 고안 초기의 레인보우 플래그는 핫핑크(성정체성), 빨강(삶), 주황(치유), 노랑(햇빛), 초록(자연), 청록(예술), 파랑(조화), 보라(영혼)의 8가지 색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무지개 깃발은 늘어나는 깃발의 수요로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며 한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성정체성을 상징하는 ‘핫핑크’는 상업적으로 널리 이용되지 않는 색이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베이커 역시 ‘핫핑크’를 직물에 구현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무지개 깃발의 대량생산을 맡은 ‘파라마운트 깃발회사(Paramount Flag Company)’는 재고가 충분한 7가지 색으로 무지개 깃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무지개 깃발은 분홍색을 제외한 7가지 색으로 자리 잡게 된다. 7색의 무지개 깃발은1978년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가로등에 수직으로 걸릴 때에도 어색하지 않도록 무지개색의 대칭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에 무지개 깃발은 구성된 색을 짝수로 맞추기 위해 청록색을 제외하였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의 6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지금까지도 성소수자의 상징으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깃발, 세계의 주목을 받다
이렇게 만들어진 베이커의 깃발이 성소수자 사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하비밀크(Harvey Milk, 1930~ 1978)의 죽음 이후였다. 1978년 11월, 동성애자로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의 선출직 공직자가 된 밀크가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성소수자 사회는 크게 분노했고, 그들의 힘과 단결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베이커의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성소수자 퍼레이드 혹은 권리운동에 그의 깃발이 사용되면서 무지개 깃발은 그들의 자부심과 다양성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무지개 깃발은 1989년, 웨스트 할리우드(West Hollywood)에 살던 존스타우트(John Stout)에 의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스타우트는 그가 살던 아파트 발코니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았는데, 이를 본 집주인이 무지개 깃발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부당하다고 여긴 스타우트는 그의 집주인을 고소하였는데, 그의 승소 소식이 알려지면서 레인보우 플래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지개 희망을 노래하다
그러나 무지개색은 단순히 그들을 대변하고, 축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2016년 6월, 올랜도(Orlando, Florida)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으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어김없이 무지개깃발이 등장했다. 무지개 깃발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역사와, 언젠간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무지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무지개에 대한 과거인식과 우리의 무지개 색 관념, 그리고 다양성까지 무지개의 오색 매력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 힘든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오기 마련이다. 위에서 언급한성소수자들은 물론, 그동안 우리들은 많은 일을 겪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시련과 투쟁의 역사가 거친 비바람 이었다면,이제는 다양한 색들이 함께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가 우리의 생활 곳곳에 뜨기를 기원한다.

 

참고자료

M. 그랜트, J. 헤이즐,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

범우사『종교학대사전』,한국사전연구사신라사학회.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 경인문화사


조재형 기자 cjhpmk00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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