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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정치(2)현대 건축의 이해
  •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7.05.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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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와 건축

  우선 우리가 중학교 교육만 받으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수준의 이야기로 풀어나가 보자. 20세기는 제국주의패권이 팽배했던 전반기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의 후반기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새로운 20세기 후반기를 6.25 한국전쟁으로 시작하였다. 그 때 사상자의 수는 6백만 명으로 작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보기에는 엄청난 사상자 숫자였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는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시대로 접어든다. 유럽의 연합국들은 워낙에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기에 기존 유럽열강이 가지고 있던 권력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미국이 차지하게 된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도 승리로 이끌면서 전무후무하게 대서양과 태평양 두 개의 대양에서 치러진 전쟁에서 승리를 한 국가가 된다. 이로써 아시아 본토를 제외한 지구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게 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의 빈자리는 소련이 차지하게 되면서 두 개의 강대국은 세계의 절반씩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음은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 두 세력은 한반도라는 “무대”에서 심하게 충돌했고, 아직까지도 한반도는 남북분단이라는 상태로 남겨져 있다. 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는 이후에 60년대와 70년대에 베트남을 무대로 두 번째 충돌을 하게 된다. 20세기 후반부 30년 동안 아시아대륙의 두 개의 반도에서 두 번의 전쟁을 하면서 전 세계는 냉전시대의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한 이유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20세기 후반기를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많은 인명의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과거 선사시대나 역사 초기가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석기시대 때가 지금보다도 더 많은 살인이 자행이 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전쟁으로 인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실은 이전의 전쟁과는 달리 언론시스템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뉴스를 통해서 이 전쟁과 인명피해에 대해서 알게 되고 정부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국민들에게 상대방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교육시켰다. 그랬기에 더욱 더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데올로기에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본과 프랑스는 심하게 학생운동을 겪었고, 한국에서도 80년대에 대학생활을 보내신 분들 역시 데모, 최루탄, 주체사상 등의 이야기 속에서 대부분의 대학생활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중 소수의 학생들은 종교적인 이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어떠한 색깔과 종류이건 물질보다는 이념과 사상이 중요한 시대였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중심의 패러다임은 건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서 이 당시의 건축은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철학적 이념으로 건축을 설명하고 “영도”하려고 했던 시대였다. 한마디로 이념이 물질을 압도하던 시대였다.

소련의 붕괴, 컴퓨터 그리고 건축

  이러한 “이념의 시대”가 지배한 20세기 말의 건축은 소련의 붕괴와 PC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80년대 90년대는 이념 즉, 이데올로기의 시대였고 따라서 건축에서도 해체주의 철학을 내세워서 자신의 건축을 포장한 “피터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들이 학생들에게 각광을 받았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건축에 대해서 논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건축을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은 철학과로 편입해서 다시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으며 그런 방식이 올바르게 건축을 공부하는 길이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 패러다임은 1991년도 소련의 붕괴를 기점으로 바뀌게 된다. 이데올로기 양대 산맥의 한쪽인 소련의 몰락은 곧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전 세계 패권 장악을 말한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 미국식 자본주의는 절대적인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레이건 정부 때 자유시장의 극대화를 틈타서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낸 젊은 여피(Yuppie)들이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동안, 사람들의 관점도 바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건축을 이념으로 세워보려는 시대도 함께 저물어 갔다. 바야흐로 시대의 패러다임은 정신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물질중심의 자본주의로 옮겨가고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생활을 시작해서 90년대 초반에 졸업을 한 필자는 이 시대의 변화를 몸으로 절감하면서 다녔다. 신입생시절에는 차를 몰고 학교에 오거나 좋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미안해하던 분위기의 학교였다. 그러던 분위기가 90년대 초반에 학생회장으로 비운동권 학생이 당선이 되고, 부자인 것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분위기로 캠퍼스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는 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서 이루어진 변화이기도 했지만 냉전시대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흐름을 타고 일어난 변화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패러다임 속에서 건축의 흐름도 바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어려운 철학으로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던 아이젠만은 지고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렘 쿨하스”가 사람들의 추앙을 받기 시작했다. 렘 쿨하스는 자신을 자본주의의 파도 위에 서핑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를 한다. 이 같은 비유는 자본주의 시대에 렘 쿨하스 자신을 세일즈하기 위해 잘 만들어진 포장지였다. 

  90년대에 또 다른 움직임은 PC를 통해서 시작된 IT기술혁명이다. PC의 보급으로 건축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축가는 “피터 아이젠만”,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라고 볼수 있다. 아이젠만은 Autodesys와 협업하여 Form Z를 개발하고 이를 자신의 건축에 적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본인의 성향 상 이러한 컴퓨터에 의존한 형태에 대해서도 구구절절이 철학적 설명을 하는 버릇은 고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건축가로 남아있게 된다. 반면 “프랭크 게리”와“자하 하디드”는 이념의 도움 없이 본인이 원하는 형태를 컴퓨터를 도구 삼아 자유스럽게 만들어 내면서 주목받게 된다. 하디드와 아이젠만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신의 건축을 해체주의라는 이념으로 포장해서 팔려고 했을 때는 지어진 건축이 거의 없다. 이념의 건축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과는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디드가 이념을 버리고 IT건축가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했을 때 비로소 그의 건축이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 건축은 이념중심의 건축에서 물질중심의 건축으로의 축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건축이라 함은 쉽게 말해서 “돈이 되는 건축”이라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념중심의 건축에서 물질중심의 건축으로 전환하면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현상은 건축 본연의 모습인 텍토닉 중심의 건축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일 것이다. 건축 재료와 물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있었기에 그 지역에서 채취된 돌을 가지고 만든 “캘리포니아 양조장”을 디자인한 “헤르조그 드 뮤론”이나 단순한 형태이지만 물성을 가지고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피터 줌터”같은 건축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건축가로 부상할 수 있었다.

경제위기와 건축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시작된 자본주의 건축은 2007년 미국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막을 내리고 새로운 건축적 패러다임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건축가들도 함께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의 슈퍼파워로 등극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등장은 미국식 자본주의 독주의 종말을 알리는 듯 했다. 2012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중국 건축가가 받은 것은 이러한 커다란 흐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로 현대에는 친환경과 더불어 일본에서 시작된 공동소유의 개념이 도입된 건축이 나타나면서 확연히 90년대식 자본주의 건축시대와는 다른 시대가 전개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탈자본주의 혹은 신자본주의 시대에 다음 시대의 패러다임은 어떤 것일지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그것이 친환경건축이 될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중간형태의 새로운 개념의 소유가 도입된 건축이 될지 모른다. 소유보다는 접속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 시대에 어떤 건축의 장이 열릴지는 2030년은 되어봐야 뒤돌아보고서 깨닫게 될 것이다.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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