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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국인 거리』 속 여성의 삶
  • 나채원(국어국문2) 학우
  • 승인 2017.05.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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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 거리』(1979)는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주인공이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존 사회가 여성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 성장소설이다. 『중국인 거리』의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 한창 혼란스럽고 가난하던 시기의 인천이다. 항상 ‘탄가루와 해인초 끓이는 냄새’로 얼룩져 있는 동네에서 거칠게 자라난 주인공은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함을 잃은 억척스러운 아이이다. 주인공은 점차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기언니와 주인공의 엄마, 할머니를 통해 한국 전쟁의 영향 아래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확인하게 된다. 

  소설 초반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 ‘치옥이’는 이웃집 언니 ‘매기언니’의 물건을 가지고 놀면서 그녀의 화려하고 넉넉한 생활에 부러움과 동경심을 갖는다. 하지만 그 환상은 매기언니가 잔인하게 살해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며 깨지게 된다. 매기언니는 전후 미군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살아가던, 소위 ‘양갈보’라고 불리던 창녀였다. 그녀를 살해한 것은 그녀와 동거하던 미군이었다. 술에 취해 매기언니를 창밖으로 던져버린 후 아무런 두려움이나 죄책감 없이 낄낄 웃어대는 그의 모습은 그녀의 죽음이 가진 비극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불행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치옥이가 “나는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말하는 것이나, 장애를 가진 매기언니의 딸 제니가 매기언니가 죽고 난 후 고아원으로 버려지는 것은 전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가 판을 치던 암울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전후 상황 속 힘없는 국가의 여성이 얼마나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한편 주인공은 가정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성이 단지 재생산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것인지에 심각한 의문을 품는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가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또 자신 또한 그리 되리라는 두려움을 품게된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수채에 쭈그리고 앉아 으윽으윽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임신의 징후였다. 이제 제발 동생을 그만 낳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했다. 어머니의 구역질은 비통하고 처절했다.” 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주인공에게 여성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또 다른 인물은 주인공의 할머니이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수십 년 전 본가에서 쫓겨나 자식의 집에 얹혀 사는 이였다. 평소에는 더없이 냉정하고 차가웠던 그녀가 치매에 걸린 뒤 할아버지의 집에 내맡겨지는 장면이 책 중반부에 나온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제정신도 아닌데도 십 수 년 만에 남편의 얼굴을 보자, 저고리를 풀어헤치고 할아버지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는다. 이는 집에서 내쫓겨 평생 남편과 멀리 살 수 밖에 없었던 한(恨)이 할머니의 가슴 속에 매우 크게 응어리져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매기언니,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이 세 여성의 삶은 모두 지극히 비참했다. 각기 다른 세월을 살아온 세 사람이지만 이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불행했다. 끊임없이 불행이 답습되는, 여성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전후 한국사회에서 주인공은 여성으로서 살아가야하는 자신의 미래에 암담함을 느낀다. 주인공은 자신이 ‘엄마’와 같은 여성이 될까 두려워한다. 초경을 두려워하고 가슴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주인공이 흔히들 진정한 여성이 된다는 초경의 순간에, 주인공이 가슴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절망감, 헤쳐 나갈 길 없는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삶에 대한 그녀의 부정적 인식을 보여준다. 성장하고 싶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성장해 한명의 여성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중국인 거리』가 여타 성장 소설과는 다른 아이러니함을 갖게 만든다. 

  현대에 와서 『중국인 거리』에서 묘사된 여성의 불행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미진한 부분도 많지만 여성은 분명 과거에 비해 더 자유로워지고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중국인 거리』는 아직 그 수명을 잃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선천적 조건과 자신의 자아 사이의 괴리감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단순히 여성 문제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중국인 거리』는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의무에 얽매어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이 시대 사람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후 한국사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지금, 우리는 한번쯤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는가?

 

나채원(국어국문2)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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