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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슴, 아름다운 해방을 외치다

브래지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온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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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손에 들었던 가방을 바닥에 채 내려놓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여는 것이 있다. 이 고리를 열어 재끼는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고리가 내 손을 떠나기가 무섭게 가슴 위로 꽉 막혀 있던 숨이 입 밖으로 나오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지곤 한다. 신진대사마저도 꽉 막아버린 이 무시무시한 것의 정체는 바로 여성들의 속옷, 브래지어이다. 하루 온종일 여성의 가슴을 옥죄고 있는 이 브래지어, 이 속박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욕망에서 피어나 뿌리 내린 속박의 역사, 브래지어

  일반적으로 브래지어의 기원은 속박이 아닌 욕망으로 설명된다. 브래지어 역사의 첫 페이지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아포대즘(Apodesm)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여성들은 긴 천이나 가죽으로 가슴을 두르는 아포대즘을 착용하였으며, 이러한 브래지어의 시원적 형태를 오늘날 학자들은 당시 여성들이 가슴에만 포인트를 줌으로써 남성들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라 해석한다. 시간이 흘러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적인 금욕주의로 성적인 욕망 등이 사회적으로 죄악시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전의 브래지어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여성의 속옷은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신체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중요하게 생각됐으며,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최대한 강조하기 위해 허리를 죄는 코르셋을 착용하였다.
  코르셋보다 단순한 형태를 지닌 오늘날의 브래지어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사람은 바로 당시 사교계 스타였던 메리 펠프스 제이콥(Mary Phelps Jacob, 1891-1970)이다. 1910년 19살이었던 메리는 속이 비치는 실크 드레스를 입기 위해 이와 어울리는 속옷을 직접 제작하게 된다. 그녀는 두 장의 손수건과 분홍색 베이비 리본을 이용해 가슴만을 살짝 가리는 속옷을 만들었으며, 이는 곧 파티장에 있던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메리는 자신의 속옷을 개선하여 1914년 특허받았으며, 1922년 이후에는 위너브라더스 코르셋 회사(Warner Brothers Corset Company)에 특허권을 판매한다.

  이후 여성들은 코르셋보다는 더 간소화된 형태의 속옷인 브래지어를 주로 소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남성들이 전쟁터로 징집되어 나가면서 당시 미국의 노동시장에는 여성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며 여성은 신체적인 여성성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강조하기 위한 코르셋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당시 많은 회사는 착용감과 신축성을 보완하는 등 브래지어 사업에 열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서구 사회에서의 브래지어는 195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여성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내 가슴에 자유를!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다

  2004년 한국의류산업학회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여성 97.7%가 브래지어를 착용한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브래지어는 여성에게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이처럼 당연시되는 브래지어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8일(수)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페미니즘 문화제’에서는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행사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청계광장 한복판에 브래지어 보관소를 차리기도 했다. 보관소를 만든 단체, 언니미티드(Unimited)는 ‘여성이 사랑하는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여성성을 부정한다. 여성의 몸 해방과 진정한 자유를 꿈꾼다.’라는 메시지를 표방하며 이러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이 ‘브래지어 없이 살아보자’, ‘탑리스데이’, ‘#젖꼭지에 자유를’ 등의 각기 다른 이름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추세다.

 <Free The Nipple>(2012) 포스터
 <Free The Nipple>(2012) 포스터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브래지어에 관해 짚어볼 첫 번째는 바로 우리의 신체와 관련된 부분이다.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으로 브래지어를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보인 일부 여성들을 향해 당시 브래지어 사업을 벌이던 로젠탈(William Rosenthal, 1886-1958)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옷을 입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35세가 지나면 여성의 몸은 받침 없이는 선이 무너져 버린다. 시간이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브래지어로 가슴의 모양이 바뀌는 것은 17세 이하 성장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한다는 브래지어가 오히려 여성의 몸을 해친다는 연구 결과 또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브래지어를 장시간 착용할 경우, 림프절이 많이 분포된 겨드랑이 부분을 압박하여 림프 순환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혈액 순환에 장애를 발생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이런 불편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브래지어를 택한 이유라고 여겨지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다. 여성에 관한 많은 것들이 ‘아름다움’, ‘욕망’ 등의 단어로 설명되곤 한다. 우선, 아름다움에 물음표를 던져본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는 누가 정한 아름다움인가. 같은 인간임에도 역사적으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인식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인식 아래 여성에게는 오랜 기간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으며, 또 사회에서 배제되어 왔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남성을 대체하며 신체를 부각하는 코르셋이 점차 없어진 것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사회·역사적으로 여성에게 강조된 것은 다름 아닌 ‘신체적인 여성성’이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사회적 잣대에 맞추어 여성들 또한 이상적으로 아름답다 여겨지는 실루엣에 자신의 신체를 구속해온 것이다.두 번째 물음표는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발생한다. 여태껏 어쩔 수 없는 여성의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브래지어가 생겨난 원인을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 욕망의 주체 또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성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남성은 시선의 주체, 여성은 시선의 타자로 위치시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존재해왔다. 이러한 사고는 곧 여성을 남성의 시선 즉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현대사회에서 브래지어는 단순한 속옷 그 이상을 상징한다. 뉴스에서 여성의 속옷을 훔치는 남성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이처럼 브래지어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이에 따라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기준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에 대한 증거는 여러 매체의 심의 기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매체에서 여성의 가슴은 허용하지만, 그 중심부에 위치한 꼭지만큼은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해괴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준 또한 결국 여성 혹은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시선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랜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의 브래지어에서 또 하나 짚어야 하는 것은 실질적인 기능의 변화이다. 현대 여성에게 브래지어는 그 이전의 의미가 대부분 퇴색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위해 브래지어를 착용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그래야 하기 때문에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젖꼭지는 괜찮으나, 여성의 젖꼭지가 드러난 게시물은 심의에 따라 삭제한다는 모순적인 SNS 상의 심의 기준에 반발하여, 남성의 젖꼭지를 제공하니 부적합한 여성의 젖꼭지 위에 붙여 사용하라는 말을 담은 포스터
남성의 젖꼭지는 괜찮으나, 여성의 젖꼭지가 드러난 게시물은 심의에 따라 삭제한다는 모순적인 SNS 상의 심의 기준에 반발하여, 남성의 젖꼭지를 제공하니 부적합한 여성의 젖꼭지 위에 붙여 사용하라는 말을 담은 포스터

  최근에는 이제껏 여성의 신체에 지워져 왔던 각종 보이지 않는 선들을 없애고 여성 몸의 해방과 진정한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아름다움의 획일화된 기준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모두에게 색안경을 벗어 던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브래지어 착용 여부 관련 논란에 대해 브래지어 착용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개인의 선택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놓은 성, 젠더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보상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사회는 사회가 이상적이라 결론지은 행동, 의상을 하면 더 좋은 평가를 내리며 개인의 자유에 무언의 압박을 행사한다. 사회라는 큰 시선 아래에서 당장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 행동을 향하는 일정 색의 시선을 거두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끝으로, 지긋지긋한 쇳빛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던 안경의 색을 거둬버릴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모두의 아름다움이 찬란하게 빛날 그날을 기대하며 한 페미니스트의 말을 전한다. “관습이 만든 이상적인 의상과 신체 조건에 따르면 얼마간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죠. 하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행복은 당신의 성격, 재능, 고유한 아름다움에 가치를 두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는 달라요.”

<Free The Nipple>(2012) 스틸 컷
<Free The Nipple>(2012) 스틸 컷

참고자료:
에슬리 베어 외, 『브래지어에서 원자폭탄까지 잊혀진 여성들의 잊을 수 없는 아이디어』, 현실과 미래사, 2002
「한국의류산업학회지」, 한국의류산업학회, 2004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2008

정이솔 기자 dlthfrhkd@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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