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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2009) 속 ‘서울특별시’를 찾아보다

우리의 ‘특별한’ 도시의 속, ‘평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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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인생에서 지하철역은 어느 곳이든 걸어서 10분 이내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새벽에도 버스가 다니는 일은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그래서 새내기 때, 다른 지역에서는 버스가 1시간마다 온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설마’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는 했었다. 이렇게 서울 바깥은 알지도 못하는 서울 촌놈이 대학까지 서울 안에 있는 곳을 갔으니, 기자에게 ‘서울’ 없는 생활은 뭔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허나, 그런 기자에게 누군가 왜 ‘서울’에 사냐고 묻는다면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다. 서울은 어디를 가던 시끄럽고, 곳곳의 건물은 오래되어 무너져가는 도시이다. 또한 물가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으며, 범죄가 판치고 매연이 가득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도시에서 굳이 왜 사냐고 물을 때면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것이다. ‘그래도 서울이잖아.’라는 짤막한 답변만 입안에서 맴돌 뿐이다. 사람들은 서울에 대해 화려한 불빛과 높은 유리 건물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그 건물 안에는 기자와 같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당신이 만약 정계(政界)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재계(財界)의 화려한 모습만 서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서울특별시의 진짜 모습을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빛나는 빌딩에 가려진 누구보다도 평범한 특별시민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근데 기분이 이상해……. 아끼느라고 신지도 못하고 방에서만 신어보던 새 구두에서 긁힌 자국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야.” ― 이혜경, 「북촌」 중에서

 

  첫 여정은 북촌으로 결정했다. 소설집 또한 사업가 친구 J의 배신으로 전 재산을 잃은 한 남자의 연애 이야기인 이혜경의 「북촌」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북촌은 조용하고 아늑한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기자가 방문한 때는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는 낮 시간이었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가득한 북촌은 시끄러운 서울 속의 또 다른 공간처럼 보였다. 이 거리를 손을 맞잡고 걷는 두 남녀를 보며, 주인공 또한 잠시 저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름다운 북촌의 풍경과 다르게 소설 속 두 사람은 몇 개월간의 만남 뒤, 이별한다. 여자가 경제적 격차로 헤어졌던 첫 애인과 재회하면서 어중간했던 남자와의 관계가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만남도 첫 순간의 설렘도 삭막한 도시의 현실에서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소설을 덮고, 자리를 이동하고자 일어났다.

 

  “한순간이야.” / “…….” / “알았어?” / “…….” / “조심해, 조심하라고!” ― 김숨, 「내 비밀스런 이웃들」 중에서

 

  북촌을 빠져나와 망원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지하철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모두들 다음 할 일만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매일 보았던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때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와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의 배경인 주택가를 찾아갔다. 똑같이 생긴 붉은 벽돌이나 살짝 반짝이는 돌 판을 이용해 마감한 엇비슷하게 지어진 빌라가 늘어서 있었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서 김숨은 해체되어가는 이웃과 가정의 모습을 그렸다. 문제가 터지면 서로를 의심하는 이웃들부터 영혼이 빠져나간 듯 서로에게 관심 없는 부부까지 현실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으로 그려지는 그들의 행동은 어딘가 익숙하기만 하다. ‘조심하라’라고 주인공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집주인 할머니가 어딘가 숨어있을 듯한, 판박이처럼 똑같이 생긴 빌라가 가득한 동네에는 설거지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기자의 구둣발 소리만 골목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결국 그 적막함을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동네를 빠져나왔다.

 

  절벽 아래에는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부분 단층 건물로 붉은 기와를 얹은, 삼십 년도 더 된 집들이다. 딱 봐도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처음 이 땅에 대들보를 세운 이들의 가슴엔 긍지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출렁였을 것이다. ― 김애란, 「벌레들」 중에서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에는 서울로 향하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달콤한 꿈을 가지고 서울로 향하지만, 서울이 그들을 거부하기라도 하는지 가족들은 계속해서 장애물을 만난다. 안타깝게도 현실 속 서울 또한 안정적인 직장과 여유로운 자본이 없다면 함부로 살아가기 어려운 도시이다.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시켜주려는지, 서울은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기자에게 도시 한 가운데의 재개발 구역을 보여주었다. 증축되는 고층 아파트와 철거되는 낮은 주택가가 대비되었다. 윤성희의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추억 속 동네처럼 기자의 기억 속 서울도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시뻘건 색으로 철거에 항의하는 글씨는 아마도 서울시민으로서의 마지막 항변이었을 것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김애란의 「벌레들」에 나오는 재개발 구역의 낡아빠진 빌라에서 매일같이 남루한 삶을 버티며 성공을 꿈꾸는 가난한 신혼부부는 과연 바라던 안정적인 삶을 얻었을지 문뜩 궁금해졌다. ‘가난한 자는 밖으로, 버티지 못한 자는 밖으로.’ 서울이 사람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 했다.

 

 

  마지막 목적지인 남산에 도착하자 해가 내려앉았다. 잠들지 않는 도시 속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태양을 대신해 형광등이 곳곳을 밝히기 시작했다. 하성란의 「1968년의 만우절」은 오랜 병간호 끝에 노쇠한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딸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추억은 남산에 어려 있다. 언제든 그녀를 데리고 항상 남산을 올랐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서울은 만원이다.’라고 말한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타워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견학을 나온 학생들, 관광을 나온 외국인, 운동 삼아 나온 시민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몸을 돌려 서울의 중심, 그 꼭대기에서 서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은 정말 만원이었다. 수많은 불빛에 눈이 시려왔고, 머리는 그 아찔함에 핑하고 도는 느낌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도 한참을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기자는 씁쓸함을 느꼈다. 기자가 나고 자란 도시의 어두운 뒷모습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소설을 통해 바라본 서울은 더할 나위 없이 삭막한 쓴 맛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파트와 빌딩 속 반짝이는 불빛이 각자의 삶을 위해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태롭게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처럼 흔들거렸다. 눈부시게 잔혹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정재림 기자 bigheadjerry96@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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