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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밥 딜런식으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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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밥 딜런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의 자부심이라는 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를 더 매료시키는 것은 진정으로 영원한 것이다.”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수긍하는 말이 있다. “지구가 살아야 인간도 산다”는 것. 하지만 인간이 지구를 위해 한 일은 무엇일까?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 유지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역사를 살펴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아도 답변이 긍정적이긴 어렵다. 소위 “인간을 위한 자연의 정복” 운운은 눈앞의 이익에 눈 먼 인간의 ‘자연 파괴’를 이르는 다른 이름일 뿐, 그 결과 인간이 과거보다 더 큰 행복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파괴되었을 뿐이다. 위험한 무지요 오만이다. 그리고 그런 무지와 오만은 전쟁을 통해 평화를 만든다는 억지와 그 실행의 현장에서도 반복된다.
  세계가 혼란과 갈등, 테러와 전쟁 속에 있다. 사실과 허위 사이 모호성, 가치관의 혼란, 세대 간, 지역 간, 빈부 간, 종교 간 갈등과 대립, 성의식과 역할 파악 방식에서 오는 갈등들도 모두 하나같이 극단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갈등 자체에 있지 않다. 갈등의 치유나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의 부재, 심지어 “divide and rule”의 술수가 지배의 용이성을 위한 수단으로 폭넓게 사용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서는 지금까지 최소한 4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그곳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정의와 평화를 외치며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선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20만-200만명 정도가 사망했으며, 이라크에서도 예멘에서도,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에서도, 프랑스 군이 깊이 개입하고 있는 말리에서도,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셀 수 없는 많은 군인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죽어간다. 하지만 이 모든 전쟁은 죽어가는 당사자들의 필요에 의한 전쟁도, 그들을 위한 전쟁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북한은 “정지 위성”을 쏘아 올린다며 로켓을 발사한다. 우리도 미국과의 훈련에서 포탄으로 위력을 과시한다. 일본도 그에 가세한다. 한데 상황의 위급성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일치하는 데도 그 해법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국제적으로도 용인되지 않고 특히 미국도 반대하는 핵 배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물론 미움과 갈등을 조장하기는 화해와 사랑을 일깨우기보다 어렵다. 사랑은 타인이나 공동체의 생존을 배려하려는 이타적 본능이기에 무너지기 쉬우나, 미움은 개체의 생존을 지키려는 자기 방어적, 이기적 본능이기에 훨씬 견고한 탓이다.
  2017년 3월 15일에 네덜란드 총선이 있었다. 4-5월 프랑스 대선과 9월 독일의 총선을 앞두고 난민과 경제 문제로 인한 “EU 극우 열풍의 분수령”으로 평가되었던 점에서 의미가 큰 선거였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누구보다 큰 주목을 받은 사람은 14석의 의석으로 제5당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30세의 녹색좌파당 대표 클라버였다. 모로코 출신 아버지와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를 둔 그는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화해와 포용을 내세우며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린 자유당 빌더르스의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에 맞섰다. 그는 “극우 포퓰리즘의 패배”로 평가된 선거의 결과가 발표된 16일 “가짜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같은 날 독일 메르켈 총리는 “오늘은 새로운 날”이라며 유럽인들의 화해와 포용적 태도를 향한 기대감을 표했다. 
  무력이 평화를 보장해준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국가적 내실을 다지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군사력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던 소련이 스스로 패망의 길은 간 것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도 있다. 분명한 것은 무력의 반작용은 무력이라는 점이다.
  밥딜런이 말한 “영원한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최소한 “미국의 자부심”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지금 같은 자국 이기주의나 패권주의는 아닐 것이다.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화해와 평화를 택하는 것, 평화를 위해 스스로 평화가 되는 것일 터이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코앞에 왔다. 고려할 것이 많다. 하지만 무엇을 하리라는 기대보다는 아주 단순하고 원칙적인 차원에서 하지 않아야 하는 걸 하지 않을 사람을 선택 기준으로 삼는 건 어떨까? 생명과 자연을 죽이도록 부추기지 않을 사람, 염치없는 짓은 하지 않을 사람 같은. 당장의 경제적 삶에 관심이 적어서가 아니라, ‘영원해야 할’ 지구촌의 공동체적 삶과 자연, 생명에 더 큰 관심이 절실한 요즘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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