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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실패에 대한 적절한 변명
  • 홍승상(자율1) 학우
  • 승인 2017.05.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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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치 앞, 아니 어느 순간이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스스로를 자별하다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존재가 그러하듯 ‘나’ 역시 나라는 개체를 특별하다고 여겨왔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를 반증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자존감에 기반을 둔 나의 존재 가치는 평균치로 끌려갔고, 그 공백은 내가 세워두었던 계획 중 몇 가지에 매달려 그들과 함께 내 손아귀를 벗어났다.

  인과율이 틀어지는 시발(始發)점은 중간고사였다. 벚꽃이 질 때까지 내게 이성과 인연을 맺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현실이었기에 별다른 타격이 없었으나, 중간고사를 못 본다는 것은 미래의 구상된 큰 그림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공부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이 과거를 지나왔기에 자연스레 형성된 자만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자만은 경쟁자들 역시 나와 같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뛰어난 학점을 통해 복수 전공의 기초를 다지고, 다양하고 화려한 경험으로 미래의 밑바탕을 그려 더 넓은 세상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부와 명예를 끌어안는, 또 그 외의 다양한 계획들은 잉태되기도 전에 돌연변이가 되었다. 물론, 공부를 안 하기도 했다. 과연 고등학교 시절 어떻게 수험 생활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집중력이 퇴화됐다. 수능 후, 다섯 달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암기를 전제로 하는 활자와의 만남에 어색함을 주기에 차고 넘쳤다. 30분 동안 앉아서 책을 보는 것도 힘들다. 한때 꿈꿨던 반수는 삶에 있어서 맥거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인생의 축을 바꾸는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나의 엉덩이는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더 이상 의자와의 친밀도를 쌓으려 하지 않았다. 성인이라는 완장은 음주와 가무 같은 일탈의 합리화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환각을 만들어 시험의 개념을 걱정의 사정권 안에서 밀어냈다. 그 모든 것의 조화가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고, 나는 나와 같은 강의를 수강하는 학우들에게 한 없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무지는 안도를 유발하는 감정이다. 다가오는 위험에 있어 과거의 경험은 공포를 조성할 뿐이다. 또한 무지는 공포의 근원을 차단한다. 고지식한 불안보다는 약간은 멍청하지만 편안한 일생이 개인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잔에 들어 있는 술에 독을 탔는지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 그저 한 잔 들이키는 것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본능이 불완전한 삶의 형태에서 조금의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무지를 택해 공부를 거부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내 나름의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방식으로 진화의 과정을 더 겪는다면 이후의 시험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도출해낼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기말고사가 치르고 있을 때 나의 학업적 우수성이 발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C와 D로 버무려진 채, B라는 알파벳은 학번에서만 모습을 보이게 될 나의 성적표를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양날의 검을 쥔 채 나 자신과 싸우는 것과 같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기말 고사도, 그 후의 시험들에서도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안 하고 시험을 못 본다’라는 간단한 과정을 무시한 채 ‘시험 전에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시작한 후, 많은 투자를 통해 시험을 응시하여 괜찮은 성적을 도출한다’라고 복잡한 과정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끼며, 오컴 역시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변명이다. 나도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험 생활 이후로 공부에는 더 이상 정이 안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나는 그저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할 뿐이다. 내가 지금은 공부를 안 해서 이런 성적을 받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다. 단지 내 삶에 있어서 이제는, 또 아직은 공부가 우선순위에서 약간은 밀려있을 뿐이다. 삶의 지향점을 공부로 두는 순간 나는 엄청난 성적을 받아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슬프다.

  슬프다.

홍승상(자율1)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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