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그림으로 말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시각디자인 77) 동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릴 적, 동화책을 펴보면 글보다는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또, 신문을 펼쳐 기사를 읽으며 그 기사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을 보고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까지 모든 연령층이 접하게 되는 그림으로 항상 우리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 동문은 본교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하고 싶은 말 있니?』(2016), 『모두 나야』(2015), 『런치타임』(2009)등의 그림책을 출간하였다. 이외에도 책, 신문, 잡지, 광고, 전시를 통해 30여 년간 자신만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이며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림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말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 동문을 만나보았다.

 

▲이성표(시각디자인 77) 동문
▲이성표(시각디자인 77) 동문

Q.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사회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생소한 분야였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홍대학보에서 권명광 교수의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읽게 되었다. 신문 한 면을 모두 차지한 글이었는데, 그것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너무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자료도 찾아보며 일러스트레이션에 빠지게 되었다. 3학년으로 올라가며 권명광 교수를 전공 교수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해에는 원래 맡으신 광고디자인 대신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강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1년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에는 취직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에서는 과제를 받으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작업을 하고 어원, 역사와 같은 그 자체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며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Q. 일러스트레이션을 ‘말하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말하는 그림이란 무엇인가.

A.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면 추상화조차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안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그림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일러스트레이션은 특히 더 그렇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어원을 살펴보자. 연설가들은 어렸을 적 이야기와 같은 예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쉽게 설명한다. 설명하기 위해 끼워 넣는 이야기인 삽화, 그것이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모르던 중세시대에 깊고 어려운 성서 말씀이 쉽게 전달되도록 그림으로 풀어 설명해주던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원이었다.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도해(圖解)라고 번역했는데, 그림으로 된 해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일러스트레이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나는 작업을 하며 종종 “너는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곤 한다.

 

▲굿모닝
▲굿모닝

 

▲달려요 파란 하늘
▲달려요 파란 하늘

Q. 작품에 파란색이 많이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최근 들어 파란색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예전의 그림에도 파란색이 많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아예 파란색만을 가지고 작업 해 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내게 있어 파란색은 끊임없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살아있는 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파란색을 슬픈 색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인 느낌이다. 파란 하늘을 보면 분명 깊이가 느껴지지만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 파란색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푸근하고, 따뜻하고, 동정적이고, 연민이 가득하다. 게다가 싱싱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멋진가. 그동안 파란색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올해에는 새로운 책을 맡아 미리 주조 색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며 파란색을 피하려고 노력중이다.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파란색으로 가득하다.

Q. 일러스트레이터가 좋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그림의 재능과 함께 ‘독서’도 중요하다. 작가가 가진 사고의 깊이만큼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경험은 유한해 모든 것을 겪어보기는 불가능하다. 독서를 통해 다른 예술가들, 사상가들, 역사의 현인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적 이력에 동행해야 한다. 작업 중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마다 나를 구해주었던 것도 바로 책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깊은 사유인데, 그것에 대한 준비로는 독서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또,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그리기 전 ‘이 그림을 보게 될, 이 책을 읽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은 ‘18세부터 22세까지의 여성’이 주된 독자인지, ‘3세부터 5세까지의 어린아이’인지에 따라 그림 표현의 수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적극적으로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이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적극적이고 따뜻한 접근이야말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Q. 사진이 대체할 수 없는 일러스트레이션만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작가만의 해석이지 않을까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이 좋아져서 사진도 많이 수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사진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사실(fact)를 기반으로 한다. 그에 반해 그림은 작가가 사물을 아무리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그 실제가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리면서 그림에 그 인간의 체취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연필을 쓰고, 붓질을 할 때 이미 그의 독특한 냄새와 해석이 그림에 스며들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공지능체(A.I.)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인간만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시를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창작은 인공지능체가 흉내는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제대로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Q. 작품을 살펴보면 단순하고 간략한 표현이 많은데, 그렇게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처음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았는데, 그것이 내게는 재미없게 느껴졌다. 글에 다 쓰여 있는 내용을 왜 다시 그림으로 그려야 하나 생각했다. 문장 속 상황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도 좋지만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메시지’를 정확히 그리는 것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림이 간결할수록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가느다란 먹 선으로 작업을 많이 했다. 같이 일 하던 기자들이 “대체 그림에 잉크가 몇 방울이나 들어갔느냐.”라며 놀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며칠간 고민해서 나온 아이디어의 값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여름이 왔다
▲여름이 왔다
▲눈물을 감춰보았지만
▲눈물을 감춰보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Q. 마지막으로 같은 길을 가려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A. 요즘 후배들을 보면 다들 예쁘고 건강해 보여 기분이 좋다. 개인적인 행동도 우리 때보다는 훨씬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편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소신껏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히 일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자신이 믿는 대로, 신념대로 길을 가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며 자신의 방향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볼 것이 많은 시대, 정보가 지천인 시대에 살다 보니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보다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자신의 그림이 다르면 자신의 그림을 먼저 의심한다. 귀가 얇다는 말이 있는데, 내 보기엔 눈도 얇아진 듯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견지하며, 장을 담그듯 오래 자신을 익혀보기 바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표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힘든 기간을 견뎌내고, 빛나는 꿈을 이루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