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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눈으로 마주한 서울의 하늘과 바람과 ‘스무 살’김연수 『스무 살』에 담긴 청춘의 문장들

스쳐 불어오는 봄바람은, 단지 봄이라는 이유로 마냥 향긋하지는 않다. 스무 살 또한 그러하다. 봄과 스무 살은 동의어(同義語)는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 때’라서 두근두근 설레고, 낯선 새로움과 익숙한 권태로움 앞에서 갈팡질팡 헤매지만, 그럼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때’이기 때문이다. 김연수 작가(1970-)의 『스무 살』은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주인공이 스무 살에 겪는 여러 경험과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 주인공이 1989년에 스무 살이 되는 점, 서울 소재 대학의 영문과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점 등을 비추어볼 때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히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 있어 한 대학생의 일기장을 몰래 엿보는 것과 같은 기분도 든다. 봄바람이 나른하게 불어오는 5월의 어느 오후, 소설 속 주인공의 스무 살 발자취를 따라 서울 곳곳을 걸어보았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놓고 저희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의 시작은 푸르른 봄, 즉 ‘청춘(靑春)’의 시작이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겪은 후에야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어마무시한 대학 입시가 끝나고 나서야 캠퍼스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주인공은 천문학과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영문학과에 진학한다. 1989년은 극에 달했던 것들이 적지 않았던 때로,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산 동의대 경찰관참사·학원자주화투쟁 등 여전히 급진성을 띠었던 학생운동을 마주한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나’는 ‘시위 대열의 중간쯤에서 적당히 팔을 흔들며 구호나 외치다가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놈’이었다.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대학 캠퍼스 안팎에서, 시청 앞 거리에서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의미와 가치를 힘주어 외치는 ‘스무 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 곳곳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났고 ‘나’ 또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스무 살인 주인공은 ‘동물원이나 변진섭 신작 앨범’보다 강렬하고 뜨거운 삶을 바랐다. 그러나 때때로 비관주의에 빠지고 운명의 힘에 굴복한다고 생각했으며 무미건조하고 뜨뜻미지근한 일상에서 부질없음을 느꼈다.

 

“나는 그딴 것들이 아니라 더 강렬한 삶의 경험을 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온몸을 불태우는 강렬한 사랑이라든가 열정이나 광기 같은 것들. 하지만 그게 내 앞의 현실이었다. 실제 생활에서 나는 무엇 하나 강렬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나는 스스로 뜨뜻미지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인공의 스무 살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었다. 외국에서 날아온 잡지들을 배달하는 일, 서점에서 서가에 꽂힌 책들을 분류하고 요약하는 일 등의 아르바이트를 한 ‘나’는 그해의 마지막 아르바이트로 합정동에 있는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여는 바자회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 평소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 통학하는 기자에게 합정동은 매우 익숙한 곳이었지만 홀트 아동복지회 건물은 버스 안에서 잠깐 시선을 두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합정역에서 양화대교 방면으로 가는 길에서 홀트 아동복지회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건물 출입구에 붙어있던 ‘상반기 바자회 공지문’이었다. 주인공 ‘나’는 하반기 바자회에서 일했을 것이지만 1989년에도, 그리고 2017년에도 홀트 아동복지회 주최의 바자회가 열린다는 것만으로 주인공에게 한 발짝 다가간 듯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출입구부터 1층 복도까지 각종 바자회 물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경비 아저씨께 여쭤보니, 모두 바자회를 위한 물품들이라며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바자회가 열리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온다고 대답해주셨다. 주인공 또한 아르바이트 당시 많은 인파와 힘든 업무로 고생했다. 각종 물품을 옮기는 일부터 직접 물건을 팔고 재고를 정리하는 일까지, 분명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지만 정작 주인공을 힘들게 한 것은 실연(失戀)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 바자회

 

“스무 살의 가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차다고 생각하며 창문을 닫기 전까지는 나는 가을인지도 몰랐다. 이번에도 나는 뒤로 빠진 채, 어떤 손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 손은 내게 ‘그녀는 아니다’라며 팔을 저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를 사랑하는가?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하는가····· 자문자답은 거기서 멈췄다.”

 

‘나’는 죽도록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고, 죽도록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귀던 ‘그녀’에게 그토록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지 못했고 결국 이별한다. 아르바이트 도중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이후 그의 발걸음 자연스레 절두산기념관으로, 양화대교 아래쪽 고수부지로 향한다. 기자 또한 그를 따라 양화대교 아래쪽 고수부지로 향해보았다. 맑은 날씨, 양화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석양 모습에 마음이 들뜨는 한편 차분해졌고 달콤한 가운데 씁쓸함을 느꼈다. 주인공 ‘나’의 스무 살과 기자의 스무 살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스무 살의 모습보다 스물다섯 살 현재의 모습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상념에 젖어서 그런 것 같다. 최근에도 소중한 인연을 잃고 한없이 아파하는 중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 모른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의미’를 찾았지만 의미는커녕 무엇을 위한 ‘의미 찾기’인지조차 잊어버릴 것만 같다. 인연을 잃고 의미를 잊어가는 가운데 사랑, 열정, 광기와 같은 강렬한 것들로 허전함을 채워가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한강 고수부지

 

“그 기억들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제멋대로 삐걱대며 굴러갈수록 더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빛을 통해 나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이지 않는 법을 알게 됐다. 그건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면 모든 게 또렷하게 들린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주인공에게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재진’이 다가온다. 그동안 왠지 모르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재진’과 어릴 적 꿈에 대해,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교감한다. 기자 또한 동행한 친구와 함께 스무 살, 스물다섯 살 그리고 너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정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방향은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강물은 까맣게 물들고 따스한 햇살은 은은한 달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물여섯 살이 된 ‘나’는 스무 살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합정동, 상도동, 동부이촌동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처음’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스무 살의 시간은 각인(刻印)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처음’이다.

양화대교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 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 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 모두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가까워졌다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추억하며 한강공원을 따라 주인공이 처음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동부이촌동 근처에 다다랐다. 뚜벅뚜벅 몇 시간 걷는 동안, 다들 부디 잘 살기를 꿈꾸고 기도할 따름이었다.

동부이촌동 아파트 전경

김나경 명예기자 onsaemirosy@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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