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역, 현실문화, 2015

<미술의 이해> 이수진 교수가 추천하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미술이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미술’이라는 개념과 제도의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특별한 책이다.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 제프스키(Mary Anne Staniszewski, 1960-)의 견해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지만, 뒤샹이 모나리자 얼굴에 콧수염을 그려 넣은 <L.H.O.O.Q>는 미술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라는 개념이 르네상스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가 그렇게 정의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이렇다. ‘미술’은 근대, 즉 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으로 분류되며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과 작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이란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무언가를 말한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

  저자는 미술을 다소 좁게 정의하고 있고 다양한 반론과 비평의 여지를 남기지만,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 제도들의 영향력이나 작동방식을 고려하면 위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2만 5천년 전 누가, 왜, 어떤 목적이나 용도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석상을 우리는 미술사책에서 접하며 ‘미술품’으로 배우고 있지 않은가.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나체 여성 조각상을 미술사가들은 박물관에 전시하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책에서 저자의 비평 대상은 현대미술 제도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어낸 서구 근대 자체라고 볼 수 있다. 1장에서 미술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논의한 후에, 2장에서는 18세기 말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패러다임 확립이 개인 혹은 미술가의 주체성 인식과 문화사회 내 역할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3장에서는 ‘예술’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하고 4장에서는 18세기 말 등장한 미학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5장에서는 백인 남성 위주로 형성된 서양미술사를 비판하고 있다. 6~8장에서는 각각 아카데미, 박물관, 미술사 제도의 역사를 다루고, 마지막 두 장에서는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의 관계, 그리고 1990년대 공공문화사회 속 미술과 미술가들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탄탄한 연구와 예리한 분석을 바탕으로 내용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설명도 명쾌하고 이미지 자료도 풍성하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미술과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봐야 하는 책이며, 평소 아무런 이유 없이 현대미술이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필자는 미술 공부를 막 시작한 20여 년 전 이 책의 초판을 처음 읽으면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미술에 대한 편견과 환상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미술사 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 원서의 제목은 ‘Believing is Seeing(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인데,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번역을 한국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미술가이자 이론가 박이소(1957-2004)가 맡아 더 큰 의미가 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