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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바치는 경애의, 친애의, 성애의 전언

입맞춤, 두 입술이 전달하는 영혼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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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모든 역경을 극복한 남·여주인공은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본다. 이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화면은 페이드아웃. 그리고 서서히 올라가는 스태프롤과 함께 영화가 끝난다. 로맨스 영화 에서 입맞춤 장면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다. 굳이 로맨스 영화가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입맞춤 장면으로 끝나는 엔딩은 창작물 전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리셰(Cliche)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들은 입맞춤에 열광한다. 그것이 희극에 서의 달달한 입맞춤이든, 비극에서의 애절한 입맞춤이든 말이다. 아무래도 ‘입맞춤’이라는 행위에는 인간을 매료시키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입맞춤은 인류사에서 연인에게 표하는 ‘애정’, 존경하는 이에게 표하는 ‘경애’, 혹은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복종’ 등 다양한 의미로 존재해왔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입술과 입술, 혹은 입술과 신체의 다른 부위를 맞댈 뿐인 이 행위가 어째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것일까. 이제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입맞춤에 대한 이야기와 고찰이 이어진다.

사진 출처 Pixabay
사진 출처 Pixabay

입맞춤의 두 가지 기원: 본능, 혹은 학습 
1992년, 인류학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168개의 민족과 문화들 중 약 90퍼센트의 문화권에서 입맞춤을 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10퍼센트의 문화권에 서는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인류학자들은 이와 같은 결과를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으로 해석한다. 첫 번째는 입맞춤이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나타났으므로 입맞춤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적인 행위라는 해석. 그리고 두 번째는 입맞춤이 등장하지 않은 10퍼센트는 결코 무의미한 수치가 아니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입맞춤은 학습으로 인해 발현되는 행위라는 해석이다. 즉 입맞춤이 전혀 발현되지 않은 10퍼센트의 인류를 ‘본능’에서 벗어난 예외로 규정할지 혹은 보편적인 ‘학습’에서 벗어난 예외로 규정할지의 딜레마인데, 이러한 ‘입맞춤은 본능인가, 학습인가’라는 명제는 아직까지 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듯 입맞춤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입맞춤의 역사가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입맞춤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단순히 입과 입을 맞대는 행위 그 자체로서의 입맞춤은 인류라는 종(種)의 역사에 버금가는 길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 리버풀 대학 (The University of Liverpool)·호주 애들레이드 대학(The University of Adelaide)· 시드니 대학(The University of Sydney)으 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현생인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H.neanderthalensis)의 치아 화석을 분석한 결과 입맞춤을 통해 서로의 타액이 교환된 흔적을 발견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원인류들이 자식에게 먹이를 줄 때 입을 통해 전달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서 입을 맞추지 않는다. 인류가 지식을 갖추고 사회를 형성하게 되면서 ‘우리는 왜 입을 맞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라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H.neanderthalensis)의 복원도(막스플랑크 연구소 제공)
네안데르탈인(H.neanderthalensis)의 복원도(막스플랑크 연구소 제공)

소셜 키스(Social Kiss): 우리는 입을 맞춘다 
“키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는 순간의 경험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Plato, BC428-348)의 명언이다. 당대 최고 의 철학자였던 그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고대 국가에서 입맞춤은 영혼, 혹은 생명을 교환하는 신성한 행위였다. 그들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영혼이 조금씩 빠져나간다고 믿었던 것처럼 입맞춤을 함으로써 서로의 신성한 힘이 옮겨간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종교 의례를 행할 때마다 신전 의 입구와 제단, 신상에 입을 맞췄으며, 이집트에서는 그들이 신과 동일시 여겼던 파라오의 양발에 입을 맞추었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이의 입맞춤으로 인해 살아난다는 수많은 신화 및 설화의 전개 또한 이 믿음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 사회로 부터 큰 역할을 해왔던 입맞춤은 인류사의 중심이 ‘신(神)’에서 ‘인간(人間)’으로 옮겨 감에 따라 그 대상과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입맞춤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로, 모호 하고 영적인 숭배가 아닌 보다 일상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형태로 변했다. 즉 먹이를 주는 행위였던 초기의 입맞춤이 숭배의 행위로 변했듯 다시금 입맞춤이 사회적 표현 수단으로 변화한 것인데, 이러한 사회적 표현 수단으로써의 입맞춤을 ‘소셜 키스 (Social Kiss)’라고 부른다.

뺨이 아닌 어깨에 입을 맞추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사진 출처 조선일보)
뺨이 아닌 어깨에 입을 맞추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사진 출처 조선일보)

  소셜 키스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인사로서의 입맞춤이다. 현대에서도 수많은 문화권은 볼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인사를 하며, 특히 중동 문화권은 입맞춤 인사가 매우 흔한데, 레바논에서는 인사를 할 때 뺨에 3번 입을 맞추며, 각각의 입맞춤에는 ‘안녕’, ‘보고 싶었다’, ‘어떻게 지내는가’의 의미가 담겨있다. 인류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성경에서도 입맞춤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친밀함을 표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소셜 키스는 일상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로마 시민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황제에게 입맞춤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정해져 있었으며, 발에 입을 맞추며 죄를 회개 하거나,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은 고전 문학이나 명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손등, 뺨에 하는 입맞춤은 중세-근대 시대를 넘어 현재에 와서도 경애와 친밀함의 표시로 사용되었다. 이란의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Mahmoud Ahmadi-nejad)가 이란의 최 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에게 입맞춤을 거부당하자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를 비롯한 세계 언론이 두 사람의 ‘냉랭한 사이’를 분석한 일화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입맞춤은 문맹(文盲)들을 위한 서약의 표시로써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관용구인 ‘키스로 서약하다(to seal with a kiss)’와 점선 위에 ‘X’를 표시한 기호는 여기에서 유래한 바 있다. 입맞춤은 그 의미와 상징이 시대에 따 라, 사람들의 사고관에 따라 변화해왔지만 그 중요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는 곧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상징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다시금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우리는 왜 입을 맞추는 걸까?

Seal with a kiss 에 대한 사진.
Seal with a kiss 에 대한 사진.

우리는 왜 입을 맞추는 걸까? 
우리는 입을 맞춰왔다. 먹이를 나누기 위해서, 위대한 존재를 숭배하기 위해서, 가까운 이에게 감정을 표하기 위해서. 초기의 입맞춤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식량 전달을 목적으로 했었음을 생각했을 때 이는 꽤 의아한 변화이다. ‘식량 전달’이라는 요소가 없어진 입맞춤은 생존에 전혀 필요치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입맞춤을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의식주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생존에 도움이 되는 부수적인 생산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행위의 등장은 인류사에서 새로운 면면과 함께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교감 행위의 등장과 발달은 인간이 단지 ‘생존’에 집중할 뿐인 존재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인 입맞춤은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의미를 가지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Frank Dicksee, 1884>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Frank Dicksee, 1884>

  모든 행위는 이유 없이 발생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없으면 존속되지 못한다. 길가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 발명되었고, 더 효율적인 운송을 위해 바퀴가 발명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입맞춤이라는 행위를 발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금까지 입맞춤에 다양한 상징을 부여해 온 이유를 말해준다. 입맞춤은 단순한 피부 접촉 행위가 아니다. 입맞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 든, 인간이 다른 짐승들과는 다른, 본능이 아닌 ‘감정’이라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입을 맞추고, 감정을 나눈다. 그런 의미에서 입맞춤은 그 기원이 본능에 의한 행위였을지언정, 그 발전 양상은 철저하게 비(非) 본능에 의한, 본능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존재가 되고자 했던 인간의 바람에 의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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