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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의 소감은 3번에 있습니다.

1. 신문은 가장 대중적인 글이라야 한다. 누구든지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장들이어야 한다. 신문이 담아내는 것은 사건 하나만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이자 민중의 소리이며 하나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신문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 수 있는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언론이 되는 세상, 그것이 진정한 언론의 자유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처음 신문사를 들어온 계기는 ‘홍대전’에 올라온 홍대신문 아카이브 전시 홍보였다. 대학언론의 위기를 설명하며 전시 목적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짜장면 받침대로나 쓰이는 현재 대학 신문의 위치’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홍보 내용에서는 이런 대학 언론의 위치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겹쳐진 신문들 사이로 글자를 읽는다, 이보다 대중적이고 심지어 서민적인 글이 있을까. 실제로 기자에겐 이것이 어릴 적 신문을 접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굳이 책상에 앉아 정갈히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언론이란 게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언론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진정한 위기는 ‘짜장면 받침대로도 쓰이지 않는’ 때일 것이라 생각한다. 

2. 글이란 제련하는 것이다. 철을 다루듯 뜨거운 가슴으로 녹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식힌다, 망치질로 불순물을 털어낸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수많은 생각들을 녹여 만든 기구는 사람을 찌르는 무기가 될 수도, 곡식을 수확하는 농기계가 될 수도 있다. 감동과 촌철살인의 파급력을 가지는 글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신문은 그 어떤 매체보다 문자적이기에 기자는 그런 신문의 힘을 믿는다. 만약 신문을 어떤 종류의 글이냐 묻는다면 객관적이지만 그보다 주관적일 수 없는 글이라 말하고 싶다. 매주 토요일마다 다음 주 신문에 실릴 보도 내용과 헤드라인 내용을 선정하고 보도방향을 설정하는 회의를 한다. 회의 중에는 수많은 보도와 헤드 주제가 제기되지만 단신거리로 옮겨지거나 주제가 부적절하여 선정되지 않는 경우, 보도방향이 변동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도방향을 통해 독자들에게 기사를 읽고 생각할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 신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보도하더라도 글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글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지고, 그래서 때로는 편향되기도 하는 신문은 어떤 글보다 매력적이다.  

3.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컸다. 그간 써오던 보도들과는 달리 완전한 내 생각들로 글을 쓴다는 것,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독후감이니 논술문이니 닥치는 대로 썼지만 1년 넘게 안 써오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부담이었다. 원고지 9장을 꽉 채워 쓸 만큼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나 주까지 지각을 해오던 기자가 선배기자들의 글처럼 기자로서의 신념, 고충, 보람 등을 논하기에도 아직 부끄러울 때다. 수습기자가 하는 일이 선배기자들만큼 힘들지만도 않다. 다만 내가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기자가 신문사에 들어간다 했을 때의 반응은 ‘그런 것도 있었나.’정도였다. 어쩌면 대학언론은 ‘짜장면 받침대로도 쓰이지 않는’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의 생활이 즐겁다. 매주 초고를 들고 빨갛게 색칠된 수정안을 되받아 고치는 일도, 금요일과 토요일은 매주 버리다시피 하면서도 괜히 즐겁다. 글이라는 것에 다시 감각을 붙여가는 것도 즐겁다. 시간이 지나 내 신념이나 보람 등이 바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강인 날 기사를 쓰고 두 시간씩 이 글을 붙들고 있는 지금도 나에게 열정이란 것이 있구나,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져 또 즐겁다.

염진호 기자  duawlsgh77@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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