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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 쿠시아 디아멍(Kuciia Diamant)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드랙퀸으로 산다는 것

  여기 낮과 밤이 뒤바뀐 섹시한 신데렐라가 있다. 자정이 되면 구두를 벗어두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동화 속 신데렐라와는 달리, 이 신데렐라는 12시가 되면 화려한 구두를 신고 등장해 누구보다 짜릿하게 파티를 즐기고 사라진다. 바로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의 이야기이다. 홍대 앞 클럽 좀 다녀봤다면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드랙퀸인 그는 무대 위에선 끝내주는 여왕으로, 카메라 앞에선 더할 나위 없이 도도한 모델로, 뮤직비디오에선 강렬한 임팩트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대중 앞에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조만간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 그를 만나보았다.

Q. ‘드랙퀸(Drag Queen)’이라는 직업은 기자에게도 생소한 직업이다. 처음 드랙퀸을 알게 된 이야기가 듣고 싶다.

A. 정확히 언제부터 특별한 이유로 시작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계기로 드랙퀸을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예쁜 옷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도 의류 관련 학과로 지원했었다. 그런데 막상 전공공부를 시작해보니, 나는 예쁜 옷을 만드는 것보다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공에 흥미를 잃어버리면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즈음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렇게 군대를 다녀오고 이태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동네의 한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드랙퀸에 대해서는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던 게 없었다. 내가 일하던 클럽 무대에서 종종 드랙퀸 공연을 했던 친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랙퀸을 이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이태원이라는 동네의 특성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봐왔던 일이었는데, 어느 날 클럽에서 할로윈 파티를 준비하면서 드랙퀸 분장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마 그게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의 첫 무대였을 것이다. 그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드랙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Q. ‘쿠시아 디아멍(Kuciia Diamant)’은 어떻게 탄생한 이름인가.

A.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런데 기대하는 것만큼 거창한 뜻을 가진 이름은 아니라서 매번 답할 때마다 괜히 미안하다. ‘쿠시아(Kuciia)’는 어릴 적부터 즐겨 써오던 내 인터넷 이메일 주소이다. 왜 다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자주 사용하는 아이디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무작위 같지만, 발음이 예뻐서 더 자주 사용했던 아이디였다. 드랙퀸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름을 지으려니 이상하게 이 ‘쿠시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본명 다음으로 나를 표현해왔던 또 하나의 이름인 ‘쿠시아’에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불어 ‘디아멍(Diamant)’을 더했다. 그렇게 쿠시아 디아멍(Kuciia Diamant)이 탄생했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처럼 무대에서 가장 빛나고 싶다는 나름의 뜻도 부여했다.

Q. 지금까지 올랐던 무대 사진들을 보니 헤어스타일도 화장법도 의상도 모두 다르다. 매 무대마다 어떻게 컨셉을 잡는지, 무대의상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A. 메이크업이나 헤어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 메이크업’같이 정해져 있는 루틴이 없기 때문에 아마 지금까지 했던 화장이 모두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의상의 경우에는 미리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그날 올라야 하는 무대의 취지, 성격이나 관람객들의 연령대 같은 것들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 성인들만 입장 가능한 클럽에서는 화끈한 무대를 통해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내 임무이다. 그런 경우에는 주로 파격적인 의상을 고른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럽 무대의상을 준비할 때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의상을 마음대로 골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신난다. 반면에 페스티벌과 같은 야외공연은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관람객의 연령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의상의 심의규제를 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무대준비를 잘했던 건 아니고,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쳐 노하우를 터득했다. 지금이야 베이스 메이크업부터 속눈썹까지 혼자서 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이라인 그리는 것조차 어려워 여자친구들이 공연 전에 찾아와 화장을 도와줬다. 그런데 그 친구들도 평소에 일상생활에서 하고 다닐법한 메이크업이나 할 줄 알았지, 화려한 무대 메이크업은 못 했다. 그래서 사실상 직접 그리면서 혼자 터득해 나간 게 크다. 의상 준비하는 것도 메이크업처럼 처음에는 꽤 엉성했었는데, 어느 옷가게를 가도 내가 원하는 무대의상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마 따로, 스타킹 따로, 구두 따로 모두 따로 준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지금은 아예 맞춤 의상을 따로 제작한다.

Q. 본인의 롤모델이 있는가.

A. 롤모델은 없다. 사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는 게, 대한민국에서 드랙퀸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손에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미국의 경우에는 드랙퀸 시장이 굉장히 넓다. 우리나라에서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드랙퀸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가 사랑받는다. 아마 지난 시즌8에서 우리나라 드랙퀸 김치(Kim Chi)가 출연해 잘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드랙퀸 시장은 너무 좁고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롤모델을 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기보다는 내가 우리나라 드랙퀸의 롤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직업에 임하고 있다.

Q. 개인 SNS에 올린 여러 게시물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본인의 인생에서 ‘사랑’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큰 것 같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A.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지 스스로 자각하진 못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이나 사회 전반적으로 불거지는 안타까운 사건·사고들,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문제까지도 서로 간의 사랑이 있다면 어느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도 바로 이 사랑이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최종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현재 대부분의 드랙퀸들은 주로 무대에서 기존의 음악을 립싱크하며 춤을 추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알려진 노래, 흔히 말하는 ‘떼창’이 가능한 노래를 선곡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대중적인 노래라는 선곡 조건에 갇히면 더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늘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서 내 최종 목표는 ‘나’의 노래로 드랙 공연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공연을 위해서 기존의 노래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리믹스하거나, 직접 노래를 부르는 등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최종 목표인 만큼 더 욕심부려서 내 앨범에 있는 내 노래로 공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Q. 홍대신문을 읽는 학우들을 비롯하여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A. 내 이야기를 읽는 독자 중에는 분명 남몰래 엄마 립스틱을 발라봤거나, 누나 원피스 입어본 남성분들이 있으실 것이다. 나도 어릴 적에는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을 따라 하겠다고 엄마 립스틱을 탐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어린 내’가 지금의 ‘진짜 나’를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거 잘 안다. 고민이 있다면 주저 말고 연락해주길 바란다. 여러분을 응원한다.

윤예본 기자  yoon9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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